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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특집

사순기획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상> - 베로니카 수건

by 세포네 2012. 3. 25.

하느님께서 직접 그리신 그림 - 진품 여부 떠나 믿음 굳건히 회복시켜주는 성화


 

사순절 한 가운데 서 있다. 예수께서 걸으셨던 수난의 길을 묵상할수록 참생명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을 상상하는 것만으론 그 고통을 실감할 수 없다. 예수의 수난은 실재했던 사건이다. 수난의 길에 남겨놓으신 예수의 자취를 통해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들은 성 십자가와 죄명패, 가시면류관, 못, 베로니카 수건 등이 현존하고 있다. 이 수난의 증거들을 모아 사순기획으로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 호에는 '베로니카 수건'에 대해 알아본다.

▨ 그리스도의 참얼굴
 '하느님께서 직접 그리신 그림'
 너무 놀랍고 신비로워 감히 그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아케이로포이에토스'(헬라어 αχειροποιτοζ-사람 손에 의해 그려지지 않은 그림)라 불렀던 성화. 바로 '베로니카 수건'이다.
 라틴말 '베로니카'(Veronica)는 베라(vera,참된)와 이콘(icon,인상)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참 얼굴'을 뜻한다. 따라서 베로니카의 수건은 '참 얼굴을 담은 천'이라 직역할 수 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는 것을 보고 한 여인이 마음이 아파 예수 얼굴을 닦아줬는데 그 얼굴이 그 천에 찍혔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 얼굴을 닦아준 여인이 바로 베로니카라고 하는데 여러 인물로 추정된다.
 베로니카라는 여인은 예루살렘 출신 신심깊은 부인으로 예수를 보고 통곡하는 여인들 중 한 사람(루카 23,27)이라고도 하고, 예수의 옷자락 술을 만져 혈루증이 나은 여인(마태 9,20-22), 또는 라자로의 누이인 베타니아의 마르타라고도 하고, 자캐오의 부인(루카 19,1-10)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베로니카는 이후 그리스도 얼굴이 새겨진 수건으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재위 14~37)를 치유시켰고 여러 기적을 일으켰다. 심지어 죽을 위험에 처한 이를 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임종 때 교황 클레멘스 1세(재위 90~101)에게 그 수건을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베로니카 수건은 역사와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94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확인됐다. 이전까지 에데사의 만둘리온에 보관돼 오다가 이 때 비잔틴 제국 황제 로마누스 1세(재위 920~944)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13세기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로마로 옮겨와 성 베드로 대성전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했다. 로마 순례자들에게 베로니카 수건은 '로마 7대 보물 중 하나'로 알려졌다. 1199년 제랄드 드 바리와 틸베리의 거베이스라는 두 순례자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베로니카 수건을 직접 보았다고 기록했다. 1297년 교황 인노첸시우스 3세는 베로니카 수건 앞에서 기도하면 대사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1300년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는 베로니카 수건에 감동을 받아 첫 성년(聖年)을 선포했다. 14세기 이후 교회는 행사 때마다 베로니카 수건을 내걸 만큼 대중적 신심을 불러 일으켰다.
 베로니카 수건은 15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용병들이 로마 대약탈을 저지르면서 역사의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그러다가 1616년 교황 바오로 5세는 교황청 허락없이 베로니카 수건 복사품을 절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1629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복사품을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복사품은 모두 회수해 파기토록 지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파문도 불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견해에 따라 진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베로니카 수건은 2개가 있다. 하나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보관돼 있다.
 성 베드로 대성전 베로니카 수건은 대성전 돔을 받치고 있는 남서쪽 기둥 발코니에 있는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돼 있다. 가장 최근에 검사한 것은 1907년으로 예수회 역사학자인 요셉 빌퍼트가 교황청 허락을 받고 수건을 덮은 2장의 유리를 옮기고 베로니카 수건을 본 것이었다. 그는 수건이 낡아 제대로 형상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교황청은 매년 수난 주일에 베로니카 수건을 담은 상자를 전시하고 있다. 수난 주일 오후 5시 저녁 미사 시작과 함께 수건에 대한 축복이 이뤄진다. 이후 성 베드로 대성전 내에서 간략한 행진이 거행된다. 수건에 새겨진 주님 얼굴 형상은 보기가 어렵고 다만 액자 테두리만 볼 수 있다.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의 '베로니카 수건'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이 1660년부터 보관하고 있는 베로니카 수건이다. 1999년 저명한 성미술 학자인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 교수 하인리히 파이퍼 신부가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 성당의 베로니카 수건이 진품이라고 주장해 2006년 9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방문하는 등 오늘날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17세기 도나토 다 봄바 신부가 작성한 「베로니카의 수건 입수 역사」 기록에 따르면, 1508년 한 순례자가 마노펠로 마을에 나타나 마침 수도원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자코모 레오넬리라는 의사에게 주님 얼굴이 담긴 수건을 건넸다. 이 수건은 레오넬리 집안 가보로 1608년까지 전해졌으나 군인 판크라치오 페트루치가 어느 날 몰래 훔쳐 달아났다. 몇 년 후 범인은 잡혔고 레오넬리 집안은 이 수건을 도나토 안토니오 데 파브리티스라는 의사에게 팔았다. 파브리티스는 이 수건을 카푸친 수도원에 기증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파이퍼 신부는 1506년 교황청의 대대적 보수공사가 진행될 때에 분실된 베로니카 수건이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첨단 장비로 조사한 결과 천은 1세기 때 것으로 예수께서 활동하던 시기 수건이며 사람 손으로 그린 흔적이 전혀 없고 토리노 수의에 찍힌 예수의 얼굴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수도원 중앙 제대 뒤편에 현시돼 있는 마노펠로 베로니카 수건의 예수님 얼굴은 왼뺨을 맞아 오른뺨보다 부어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마 위쪽 가운데와 관자놀이 쪽에는 가시관에 찔린 상처로 흘러내린 핏자국을 볼 수 있다. 또 오른쪽 눈두덩에도 폭행으로 인한 상처를 볼 수 있다. 얼굴이 한쪽으로 일그러질 만큼 폭행을 당했어도 예수님 눈은 바라보는 모두를 빨아들일 만큼 깊고 맑다.
 진품 여부를 떠나 현존하는 베로니카 수건은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로 하루 몇 번이고 나락에 떨어지는 우리 믿음을 굳건히 회복시켜주는 귀중한 성화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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