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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

(20) 한국 최초 추기경 탄생

by 세포네 2006. 10. 29.

 

“김수환 대주교 추기경에 임명”

“김수환 대주교 한국 최초 추기경에
-수난 얽힌 2백년사의 결실

교황 바오로 6세는 28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스떼파노 47세) 대주교를 추기경(카르디날)으로 임명, 1백92년의 한국교회사상 최대 영광의 座를 한국에 부여했다.

바오로 6세는 이날 김추기경 이외에 다른 34명을 추기경으로 임명, 추기경단을 가톨릭 역사상 최대인 1백34명으로 늘렸다. 김스떼파노 추기경을 비롯한 이들 새 추기경들은 오는 4월 28일 비밀추기경 회의에서 교황으로부터 공식 추기경 임명을 받는다.” (가톨릭시보 1969년 4월 6일자 1면 중에서)

환호하는 한국교회

한국교회 최초의 추기경 탄생이라는, 한국 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경사이기도 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은 전국을 환호의 물결로 일렁이게 했다.

가톨릭시보는 추기경 탄생에 환호하는 한국 교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당시 김추기경은 일본에서 발표 소식을 들었으며 3월 29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당시 교황 바오로 6세는 아시아,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제삼세계 지역 추기경 수를 18명에서 29명으로 대폭 늘려 당시의 과감한 개혁 조치와 함께 가톨릭의 세계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교회는 전년도에 한국교회 초창기 순교자 24명의 시복식으로 모두 103위의 복자를 갖게 되는 경사에 이어 이날 최초로 추기경이 탄생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가톨릭시보는 당시 기사에서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40대 젊은 나이에 동양인으로서는 5번째로 추기경이 된 김수환 대주교는 교황의 자문이며 교황 선거권 및 피선거권과 제 성성 간 관청의 장관 및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3면에서는 ‘알렐루야!! 우리의 영광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제목의 톱기사에서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는 김추기경의 사진과 함께 감사와 감격의 전국 분위기를 전했다.

“새 추기경을 축하하기 위해 공항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은 노기남 대주교, 그의 노안에 기쁨이 가득했다.… 두개의 귀빈실은 꽉 찼고 광장엔 「환영 우리의 영광 김수환 추기경 탄생」이라고 쓰여진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한국 성직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토마(86세)신부는 「오래 살고 볼 일이다」고 그 기쁨을 표시하기도.”

한국사회 정신적 지도자

이후 김수환 추기경은 70년대와 80년대 정치 사회적으로 혹독한 시련기를 지내온 한국교회와 사회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정의의 실현, 민주화를 향한 끝없는 예언자적 자세와 목소리를 통해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헌신해왔다.

그로부터 37년 뒤인 2006년 2월 22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엄청난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는 제2의 추기경을 맞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월 22일 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인 정진석(니콜라오, 74)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한달 뒤인 3월 24일 추기경 회의에서 공식 서임했다.

보편교회 안에서 그 위상이 높아진 한국교회는 이처럼 2명의 추기경을 갖고 제삼천년기를 향한 복음화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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