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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

(22) 원주교구 부정부패 추방운동 전개

by 세포네 2006. 11. 12.

 

“부정, 불의 규탄해 사회 약자 구해야”

“부정부패 규탄 데모

-1천여 원주 신자들 공동미사 후 지주교 선두로

원주교구 남녀 신자 1천여명은 5일 밤 7시30분 원동성당에서 사회의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한 후 시가행진을 벌이려다 급거 출동한 경찰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성당에서 농성을 벌인 후 6일 12시 30분 현재까지 계속 성토대회를 열고 있다.

이날 지학순 주교 및 교구 신부들이 집전한 합동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미사 후 부정부패 규탄 궐기대회를 갖고 국회, 정부 및 크리스찬에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한 후 부정부패 규탄 선언문을 채택했다.” (가톨릭시보 1971년 10월 10일자 3면 중에서)

원주문화방송국 부패 사태

1971년 10월 5일부터 연 사흘 동안 벌어진 원주교구의 부정부패 추방 운동은 교회 안팎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억압적인 정치 현실 속에서 폭압 아래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운동은 불의에 대한 저항이 현실을 개선하는 주요한 방법임을 일깨웠다. 하지만 이 운동은 교회 안에 사회 참여의 범주와 그 방식에 대한 논란을 불어일으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건의 직접적인 계기는 원주교구와 5?16 장학회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원주 문화방송국 내부가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교구장인 지주교가 직접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사회정의를 이룩하자고 앞장서 시위와 농성을 주도했기에 그 파문은 매우 컸다.

지주교는 5일밤 합동미사에서의 강론을 통해 당시의 부정부패 풍조를 신랄하게 비난한 뒤 “우리 크리스챤들은 정의를 위해 일어나 강자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는 농민, 서민 등 약자들을 구하는데 앞장서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주교는 또 사흘간의 시위를 마친 뒤 9일 가톨릭시보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 운동의 목적과 취지에 대해 상세하게 밝혔다.

“지주교는 원주 가톨릭 신자들의 데모에 언급 ‘어디까지나 부정과 불의를 규탄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목적 뿐’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계속 투쟁하겠다고 소신을 천명했다.

지주교는 문화방송과의 이해관계에 대해 모 측에서 교회의 이번 행동의 대의명분을 흐리게 하기 위해 고의로 관련시켜 선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그것은 ‘특정 정당의 정권 유지와 일부 특권층의 권익 옹호만을 위한 정보부라면 폐지하라’, ‘언론의 자유를 막기 위한 반공법이요 국가보안법이라면 이를 폐지하라’는 주장을 거두절미하고 보도했기 때문에 오해를 사게 됐다고 해명했다.” (가톨릭시보 1971년 10월 17일 1면 중에서)

교회의 사회참여 범주 논란

교구는 농성 끝에 상설 기구인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에 대해 교회 안의 반응을 크게 엇갈렸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교회의 사회 비판적 기능에 따른 당연한 행동이라는 반응과 함께 성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비현실적인 태도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연속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한국 크리스챤 사회행동협의회’ 소속 신부와 목사들이 침묵 시위를 벌였고 개신교 새문한 교회와 광주 대건신학대생들도 이를 지지하는 규탄 대회와 시위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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