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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순례길 이야기29

청주교구 배티성지 ‘길에서 살았고 길에서 하느님 만난’ 가경자 최양업 신부 사목 중심지 안성의 너른 평야를 지난 것이 불과 10여 분 전인데 어느새 깊은 산 속에 들었다. 일대 가장 깊은 산골짜기라 하더니 자동차로 오르는데도 만만치 않다. 가파른 오르막을 서너 차례 힘겹게 지나 고개 정상에 올랐다. 경기도 안성과 충북 진천을 잇는, 돌배나무가 많던 이 고개를 예로부터 배나무 고개, ‘배티’(이치, 梨峙)라 불렀다. 도로가 나기 전에는 첩첩산중이었던 고개 바로 아래 청주교구 배티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배티성지는 박해시기 교우촌이자 복자 오반지(바오로) 등 유명‧무명 순교자들의 묘를 모신 순례지다. 무엇보다 배티성지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한국교회가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다. 1849년 사제품을 받은 후.. 2024. 6. 16.
수원교구 죽산순교성지 “끌려오면 죽은 목숨이라 했던 피 맺힌 땅…이제는 사시사철 꽃이 핀다”주막거리가 북적였다. 이곳은 용인과 안성, 원삼 등지에서 ‘천주쟁이’들을 잡아 온 포졸들의 중간 집결지, 죽산 관아가 지척이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취기가 오른 포졸 하나가 오라에 묶인 죄인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돈을 내. 네놈들은 저 고개만 넘으면 죽은 목숨이야. 돈을 내면 풀어줄게.” “안된다고? 돈이 없다고? 이 고약한 놈들. 너희 때문에 이 고생인데….” 몽둥이질, 발길질 온갖 매질이 시작됐다. 혹시 풀려날까 호송 행렬을 뒤따른 죄인의 가족들이 그 모습에 땅을 쳤다. 두드렸다. 죽산성지에서 6km 떨어진, 오늘의 안성시 삼죽면 덕산리. 죄인들이 두들겨 맞고 가족들이 안타까움에 땅을 두들겼다 해 ‘두둘기’ 마을이라 불린다. 장미.. 2024. 5. 19.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 경기 평택과 충남 아산을 잇는 아산만방조제를 지나며 올려본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구름은 어디 갔나 싶었는데 공세리성당을 들어서며 답을 찾았다. 진입로를 벗 삼아 선 십여 그루 벚나무에 구름이 내려앉았다. 벚꽃 구름 너머 야트막한 언덕은 꽃 잔디가 분홍빛 바다를 이뤘다.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이 봄의 절정 한 가운데서 순례자를 반긴다. 벚꽃이 만개한 공세리성당 입구 성가정상. 사진 이승환 기자 조선의 공세 창고, ‘복음의 창고’로 거듭나다 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성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 서남부 40개 마을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공세리라는 이름도 공세곶 창고지에서 비롯됐다. 이곳이 ‘복음의 창고’로 새로 난 것은 1895년 이.. 2024. 4. 15.
대전교구 갈매못순교성지 사형터였던 바닷가를 바라본다…믿음과 목숨 맞바꾼 선조들을 떠올리며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갈매못성지 ‘승리의 성모성당.’ 조개껍데기 모양의 성당 지붕은,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순교자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성지를 통해 순례자들이 교회의 진주로 거듭나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 이승환 기자 첫 칼은 다블뤼 주교가 받았다. 망나니는 잔인했다. 품삯을 더 받고자 칼에 힘을 덜 줬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다블뤼 주교를 두고 흥정이 다시 이뤄졌다. 삯이 오르고 나서야 두 번째 칼을 내리쳤다. 그리고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의 목이 차례로 떨어졌다. 다섯 순교자의 피로 모래사장이 물들었다. ‘다섯 분의 머리가 기둥 위에 내걸렸을 때 은빛 무지개가 하늘을 뚫고 내려와 주위를 놀.. 2024. 3. 24.
(3) 제주 새미 은총의 동산 십자가의 길 제주 새미 은총의 동산 십자가의 길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주는 변덕스럽다. 어제는 더없이 푸른 하늘과 옥색 바다가 맞닿은 자리에 유채꽃이 피어 탄성이 절로 나오더니, 오늘은 한치 앞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다. 검은 먹구름에 부슬비까지 더해 우중충하기까지 하다. 변덕으로 치면 그때, 예루살렘 군중들도 만만치 않았다. 예수님 향해 ‘호산나’라 환호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던 그들은 금세 돌변한다. ‘십자가에 못 박아라’ 소리친다. 조롱한다. 침을 뱉고 뺨까지 때린다. 인간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순 시기의 시작. 한라산 중산간 마을 금악에서 환호와 조롱의 두 얼굴 가진 예루살렘 군중과 수난의 길 걷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예루살렘 입성과 최후의 만찬, 그리고 겟세마니.. 2024. 2. 18.
(2) 제주교구 김기량길 제주 첫 신앙인 김기량, 그가 바라봤을 푸르른 바다를 마주하는 길 제주교구 6개 순례길 중 하나 조천성당에서 해안도로 따라 9.3㎞ 함덕해수욕장 전경.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 김기량은 제주 함덕 사람으로 그의 생가도 해변가 어디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교구 김기량길은 ‘산토 비아조’(Santo Viaggio, 거룩한 여행)라 이름 붙은 제주의 6개 순례길 중 하나로 2014년 6월 열렸다. 조천성당에서 출발해 조함(조천·함덕)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총 9.3㎞의 순례길에는 제주의 첫 신앙인이자 순교자인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의 얼이 서려 있다. 김기량길의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비석이 입구에 선 조천성당은 조천읍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성당 지붕 위 예수상과 마당의 성모상, 김기량.. 2024. 1. 29.
(1) 수원교구 은이·골배마실 성지 함박눈 내려앉아 눈꽃 핀 골짜기… 김대건 성인도 이 길을 걸었다 산 속 교우촌 은이에서 신학생으로 선발 9년 만에 귀국해 첫 사목활동 펼친 곳도 은이 함박눈 내린 은이성지 전경 함박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차 한 대 겨우 드나들 작은 길을 따라 닿은 한적한 터. 우뚝 선 큰 바위에 새겨진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은이(隱里). 언덕에 가려 숨은 동네라는 한자를 머리에 새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름 그대로다. 골짜기에 걸터앉아 한숨 돌린 안개가 막 걷히자, 눈꽃 핀 골짜기를 좌우 병풍 삼은 성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은이성지의 아침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소년 안드레아, 부르심을 받다 지금이야 영동고속도로 양지 나들목을 나와 차로 10분이면 닿을 거리지만, 박해시기 이곳은 용인의 교우촌 중 하나였다. 이름 그.. 2024. 1. 28.
‘1885 바다이음길’에서 한국 그리스도교의 처음을 만나다 ‘순교의 땅’ 조선에 하느님 전하려는 열정 하나로 내딛은 첫발 인천 개항 후 바다로 입국한 선교사들 활동 발자취 따라 한국 그리스도교 최초 담은 종교 문화 자원 이은 탐방길 첫 선교 수녀 도착지 기념비. 인천광역시 중구 개항장(開港場) 거리에는 일대의 다양한 역사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역사문화 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특히 ‘1885 바다이음길’은 1885년부터 바다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그리스도교 선교사에 의해 형성된 ‘한국 그리스도교 최초’의 종교 문화 자원을 연결하는 탐방로다. 천주교 첫 선교 수녀 도착지,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과 감리교회, 인천의 첫 성당인 답동주교좌성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갈라진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바라며 기도하는 일치주간, 그리스도교 형제교회의 최초와 선교사를 만날 수 있.. 2024. 1. 15.
인천교구 도보순례길 1코스 온유의 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과 교구설정 60주년의 기쁜 한 해를 보내기 위해 인천교구에서는 은총의 열매 아홉가지를 묵상하며 순례 할 수 있도록 순례길을 조성하였습니다. 제1코스 온유의 길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순례코스는 도화동성당을 출발하여 수도국산을 둘러보고 화수동성당, 제물진두 순교성지, 해안동성당, 답동성당을 거쳐 인천교구청 마련된 성모당에서 마치는 순례길입니다. 2023. 12. 17.
서울순례길 3코스 일치의 길 서울순례길 3코스 일치의 길은 중림동 약현성당을 출발하여 당고개성지, 새남터성지, 절두산성지, 노고산 성지, 예수성심신학교, 왜고개성지, 삼성산성지까지 이어지는 순례길로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고 실천하자는 취지로 ‘일치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고 합니다. 함께 걸으며 순교자들의 위로와 은총을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2023. 6. 13.
한국의 산티아고, 버그내 순례길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인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에서 시작하여 충남 최초의 본당인 합덕성당, 박해시절 처형지였던 신리성지를 잇는 버그네 순례길을 소개힙니다. 2023. 5. 24.
미리 가보는 이승훈 베드로 역사공원 산책길과 십자가의 길 이승훈 역사공원 산책로 및 십자가의 길이 세워질 길을 가보았습니다. 공사가 막바지를 향해 마루리 작업이 한창인 듯 하네요. 그 길을 걸으며 문득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께서 만수1동 본당에 부임하신 후 1994년 본당 레지오 단원들을 이끌고 낫, 삽과 곡괭이로 희미하게 흔적만 있는 이승훈 묘소 진입로를 정비하였으며, 이듬해인 1995년에는 본당 차원에서 이승훈 묘역을 성지로 조성하고자, 사목위원과 남성 레지오 단원, 빈첸시오회 회원들이 성지주변 정리와 진입로 확장 작업을 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성지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저도 그때 레지오 단원으로 참여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2023.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