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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순례길 이야기23

수원교구 미리내성지 김대건 신부 순교 후 처음 안장된 곳…만추 숲길 따라 묵주기도 봉헌하는 순례길미리내는 은하수(銀河水)의 순우리말이다. 박해를 피해 모여 살던 신앙 선조들의 집에서 흘러나온 호롱불과 밤하늘의 달빛, 별빛이 시냇물과 어우러진 모습이 은하수 같다고 해 붙여진 예쁜 지명이다. 성지 입구에서 성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기념성당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20여 분. 색동옷 갈아입은 만추(晩秋)의 숲길 따라 묵주기도의 신비를 담은 커다란 조각들이 길동무처럼 안내한다. 묵주 꺼내 손에 쥐고 한 걸음 내딛는다. 미리내성지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 성당 우측으로 성모당과 성 김대건 신부 기념성당(붉은 지붕)이 자리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성인이 고향도 아닌 왜 이곳에 묻힌 것일까. .. 2024. 11. 24.
이승훈베드로 성지기념관 문을 열다~~~ 한국 교회 첫 영세자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 1756~1801)을 기리는 ‘이승훈 베드로 성지 기념관’이 지난 9월 인천시 남동구 무네미로 143 현지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인천교구는 9월 12일 오전 10시 기념관 축복식과 이승훈 현양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이승훈베드로는 한국 교회 창설 주역입니다. 동지사(사신)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가서 1784년 초 북경 천주당에서 예수회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귀국 후 그해 겨울 서울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권일신·정약용·이벽 등에게 세례를 주며 신앙 공동체를 일궜습니다. 그후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된 이승훈은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유해는 이곳 인천 남동구 평창 이씨 선산에 묻혔습니다. 그의 묘역(인천시 .. 2024. 10. 24.
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임 가밀로 신부의 간절한 기도로 1896년 묵주 기도 성월에 본당 설립 역사의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곳…성모신심·성체신심으로 가득한 한국의 루르드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전경. 이승환 기자 130년 전. 경기도 여주 부엉골에서 사목하던 임 가밀로 신부(Camille Buillon, 파리 외방 전교회)가 본당 사목지로 안성맞춤인 자리를 찾았다. 장호원과 이웃한 감곡 매산(梅山) 아래,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109칸짜리 집이었다. 그리고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당의 주보는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 거짓말처럼 목자의 기도는 현실로 이뤄졌다. 1896년 성모 성월, 임 가밀로 신부는 모든 집.. 2024. 10. 21.
대전교구 해미 순교자국제성지 박해시기 수많은 이 순교한 생매장 순교터와 묘 함께 있는 곳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의 국제성지…올해 디지털역사체험관 선보여해미읍성 내 호야나무. 박해시기 병영의 군사들은 잡혀 온 신자들을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 이승환 기자충남 서산 해미읍성. 매년 10월이면 축제로 들썩이는 관광지이지만 한편으로 조선 박해시기 내포 지역의 수많은 신자가 잡혀 와 고통받은 자리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1000여 명의 믿는 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때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읍성 남문을 지나 마주한 성안은 평온하다. 저 멀리 다른 나무보다 몇 배 키 큰 나무가 보인다. 학명으로는 회화나무, 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다. 300년 넘은 거목은 박해가 한창이던 그때도 저 자리에 서 있었다. 안내문은 이 나무가 감내한 박해.. 2024. 8. 25.
제주교구 ‘김대건길’ 제주교구 고산성당~용수성지~신창성당 12.6km 순례길 성 김대건 신부 일행이 첫 미사 드린 거룩한 땅을 걷다 ‘김대건길’은 2012년 9월 15일, 제주교구 6개 순례길(산토 비아조, SANTO VIAGGIO, http://www.peacejeju.net) 중 가장 먼저 열렸다. 제주의 서쪽 끝 아름드리 야자수가 이국적인 고산성당에서 출발해 신창성당에 이르는 11.5km 여정에는 바다와 섬, 포구와 산이 있다. 그리고 성 김대건 신부와 순교자들의 자취가 스며 있다. 그 흔적 찾아 첫걸음을 뗀다. 제주교구 용수성지에서 바라본 차귀도(오른쪽)와 누운섬(왼쪽). 중국 상하이에서 라파엘호를 타고 출항한 성 김대건 신부와 일행은 20여 일을 표류한 끝에 1845년 9월 28일 차귀도에 정박했다. 이승환 기자 제.. 2024. 7. 28.
대전교구 신리성지 담장 낮추고 힐링 공간으로 거듭난 대전교구 신리성지‘풍경 맛집’으로 SNS에서 인기…주말 방문객 70% 이상 비신자 개방성 높이고 기도 공간에 대한 설명 덧붙여…"천주교 정서 경험 자체가 큰 의미" 수녀원으로 사용되는 한옥 한채, 초가집 주교관과 성당, 단체 순례객 쉼터로 사용되는 임시 강당 한동이 전부였던 신리성지. 보잘 것 없고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순교성인의 숨결과 흔적은 그 곳에 머문 사람들에게 안식을 선물했다. 20년전 성지를 지켰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은 “신리성지가 아름다운 기도 공간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다. 2024년, 신리성지 옆에는 ‘핫플레이스’, ‘SNS 감성 맛집’, ‘아름다운 힐링 공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입소문이 난 덕분에 주말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24. 6. 23.
청주교구 배티성지 ‘길에서 살았고 길에서 하느님 만난’ 가경자 최양업 신부 사목 중심지 안성의 너른 평야를 지난 것이 불과 10여 분 전인데 어느새 깊은 산 속에 들었다. 일대 가장 깊은 산골짜기라 하더니 자동차로 오르는데도 만만치 않다. 가파른 오르막을 서너 차례 힘겹게 지나 고개 정상에 올랐다. 경기도 안성과 충북 진천을 잇는, 돌배나무가 많던 이 고개를 예로부터 배나무 고개, ‘배티’(이치, 梨峙)라 불렀다. 도로가 나기 전에는 첩첩산중이었던 고개 바로 아래 청주교구 배티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배티성지는 박해시기 교우촌이자 복자 오반지(바오로) 등 유명‧무명 순교자들의 묘를 모신 순례지다. 무엇보다 배티성지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한국교회가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다. 1849년 사제품을 받은 후.. 2024. 6. 16.
수원교구 죽산순교성지 “끌려오면 죽은 목숨이라 했던 피 맺힌 땅…이제는 사시사철 꽃이 핀다”주막거리가 북적였다. 이곳은 용인과 안성, 원삼 등지에서 ‘천주쟁이’들을 잡아 온 포졸들의 중간 집결지, 죽산 관아가 지척이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취기가 오른 포졸 하나가 오라에 묶인 죄인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돈을 내. 네놈들은 저 고개만 넘으면 죽은 목숨이야. 돈을 내면 풀어줄게.” “안된다고? 돈이 없다고? 이 고약한 놈들. 너희 때문에 이 고생인데….” 몽둥이질, 발길질 온갖 매질이 시작됐다. 혹시 풀려날까 호송 행렬을 뒤따른 죄인의 가족들이 그 모습에 땅을 쳤다. 두드렸다. 죽산성지에서 6km 떨어진, 오늘의 안성시 삼죽면 덕산리. 죄인들이 두들겨 맞고 가족들이 안타까움에 땅을 두들겼다 해 ‘두둘기’ 마을이라 불린다. 장미.. 2024. 5. 19.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 경기 평택과 충남 아산을 잇는 아산만방조제를 지나며 올려본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구름은 어디 갔나 싶었는데 공세리성당을 들어서며 답을 찾았다. 진입로를 벗 삼아 선 십여 그루 벚나무에 구름이 내려앉았다. 벚꽃 구름 너머 야트막한 언덕은 꽃 잔디가 분홍빛 바다를 이뤘다.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이 봄의 절정 한 가운데서 순례자를 반긴다. 벚꽃이 만개한 공세리성당 입구 성가정상. 사진 이승환 기자 조선의 공세 창고, ‘복음의 창고’로 거듭나다 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성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 서남부 40개 마을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공세리라는 이름도 공세곶 창고지에서 비롯됐다. 이곳이 ‘복음의 창고’로 새로 난 것은 1895년 이.. 2024. 4. 15.
대전교구 갈매못순교성지 사형터였던 바닷가를 바라본다…믿음과 목숨 맞바꾼 선조들을 떠올리며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갈매못성지 ‘승리의 성모성당.’ 조개껍데기 모양의 성당 지붕은,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순교자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성지를 통해 순례자들이 교회의 진주로 거듭나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 이승환 기자 첫 칼은 다블뤼 주교가 받았다. 망나니는 잔인했다. 품삯을 더 받고자 칼에 힘을 덜 줬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다블뤼 주교를 두고 흥정이 다시 이뤄졌다. 삯이 오르고 나서야 두 번째 칼을 내리쳤다. 그리고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의 목이 차례로 떨어졌다. 다섯 순교자의 피로 모래사장이 물들었다. ‘다섯 분의 머리가 기둥 위에 내걸렸을 때 은빛 무지개가 하늘을 뚫고 내려와 주위를 놀.. 2024. 3. 24.
(3) 제주 새미 은총의 동산 십자가의 길 제주 새미 은총의 동산 십자가의 길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주는 변덕스럽다. 어제는 더없이 푸른 하늘과 옥색 바다가 맞닿은 자리에 유채꽃이 피어 탄성이 절로 나오더니, 오늘은 한치 앞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다. 검은 먹구름에 부슬비까지 더해 우중충하기까지 하다. 변덕으로 치면 그때, 예루살렘 군중들도 만만치 않았다. 예수님 향해 ‘호산나’라 환호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던 그들은 금세 돌변한다. ‘십자가에 못 박아라’ 소리친다. 조롱한다. 침을 뱉고 뺨까지 때린다. 인간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순 시기의 시작. 한라산 중산간 마을 금악에서 환호와 조롱의 두 얼굴 가진 예루살렘 군중과 수난의 길 걷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예루살렘 입성과 최후의 만찬, 그리고 겟세마니.. 2024. 2. 18.
(2) 제주교구 김기량길 제주 첫 신앙인 김기량, 그가 바라봤을 푸르른 바다를 마주하는 길 제주교구 6개 순례길 중 하나 조천성당에서 해안도로 따라 9.3㎞ 함덕해수욕장 전경.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 김기량은 제주 함덕 사람으로 그의 생가도 해변가 어디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교구 김기량길은 ‘산토 비아조’(Santo Viaggio, 거룩한 여행)라 이름 붙은 제주의 6개 순례길 중 하나로 2014년 6월 열렸다. 조천성당에서 출발해 조함(조천·함덕)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총 9.3㎞의 순례길에는 제주의 첫 신앙인이자 순교자인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의 얼이 서려 있다. 김기량길의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비석이 입구에 선 조천성당은 조천읍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성당 지붕 위 예수상과 마당의 성모상, 김기량.. 2024.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