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교회와 영성]/한국순교자245

<6> 죽산성지 잡혀가면 돌아오지 못한 박해시절 처형터… 박경진 프란치스코·오 마르가리타 부부 순교 1868년 9월, 절골(현 충북 진천군 백곡면)이 요란스럽다. 이곳에 숨어 신앙생활을 하는 ‘천주쟁이’들을 잡기 위해 죽산 포졸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포졸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은 한 가족은 필요한 것만 챙겨 필사적으로 산에 몸을 숨겼다. 얼마나 달렸을까. 급하게 도망치다 보니 누가 어디로 갔는지 모를 만큼 뿔뿔이 흩어졌다. 아직 스스로 뛰지 못하는 막내를 업고 산을 오른 아내 오 마르가리타(?~1868)는 보채는 아이를 달랠 겸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런데 누군가 오 마르가리타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포졸이었다. 포졸은 그 자리에서 그에게 온갖 쌍욕과 매질을 퍼부었다. 그는 매 맞으면서도 혹시 어린아이에게 생.. 2014. 7. 1.
124위 순교지를 가다 <5> 경기감영 터 진정한 주인인 천주님 섬기며 신앙 고백한 ‘순교지’ ▲ 19세기 제작된 작자 미상의 ‘경기 감영도’. 135.8㎝×442.2㎝ 크기의 이 작품은 보물 1394호로, 하느님의 종 조용삼이 순교했을 당시 경기감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 오는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이 열릴 것으로 보이는 광화문 광장. 이힘 기자 경기감영 터는 ‘잊힌’ 순교지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서울적십자병원 정문 앞 인도변에 표석이 하나 세워져 있을 뿐이다. 도로명 주소로는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9(평동164).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외려 그 앞에 있는 노천카페가 더 눈에 띈다. 6월의 햇살에 빛나는 젊은 남녀들의 아름다움은 200여 년 전 순.. 2014. 6. 14.
124위 순교지를 가다 <4> 새남터순교성지 조선교회 첫 미사 봉헌한 주문모 신부 순교터 ▲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성당 전경.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 14위 중 11위가 주교, 사제 등 성직자여서 '성직자들의 성지'로 손꼽힌다. 물론 평신도 지도자 3위를 포함해 이름을 알 수 없는 평신도들도 많이 순교했다. 오세택 기자 ▲ 새남터 기념관에 소장된 순교성인들과 순교자들의 동판 부조. 맨 오른쪽이 주문모 신부의 동판 부조다. 오세택 기자 ▲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성당에 세워져 있는 주문모 신부의 흉상. 서소문이 ‘평신도의 성지’라면, 새남터는 ‘성직자의 성지’다. 조선의 공식 처형장이던 두 곳의 성격은 천주교와 관련해서는 판이하다. 103위 성인 가운데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선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 41위와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 3위 등 44위.. 2014. 6. 14.
124위 순교지를 가다 <3> 당고개순교성지 애끊는 모정마저 하늘에 봉헌한 어머니 품은 성지 ▲ 2011년 9월 재조성돼 봉헌된 당고개순교성지 전경. 신계역사공원 내에 ‘어머니의 품’을 주제로 지하 성당과 전시실, 지상부 한옥 공간을 갖춘 성가족성지로 조성됐다. ▲ 서울 도성 지도와 당고개순교성지. ▲ 이성례 마리아와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14처 중 8처. ‘내포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집안의 4남 6녀 중 귀여운 막내딸, 남편 최경환(프란치스코)과 안양 수리산 교우촌을 일궜던 지혜로운 여장부, 장남 최양업(토마스)을 한국 천주교회의 첫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로 길러낸 신앙의 어머니, 매 맞아 죽어가는 남편을 감옥에서 지켜봐야 했던 비운의 아내, 피와 고름이 엉겨붙어 썩는 포청옥 멍석에 누워 굶어 죽어가는 젖먹이 아들을 지켜보다 못해 .. 2014. 6. 14.
124위 순교지를 가다 <2>포도청 순교지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져도 끝끝내 신앙 지킨 증거·순교터 ▲ 9일 좌포도청 터 표석 앞에서 기도를 바치는 서울순교자현양회 현양분과장 이영애(데레사) 분과장과 회원들. 오세택 기자 ▲ 홍근표 신부가 9일 포도청 순교자 현양관을 찾은 서울순교자현양회 현양분과원들에게 포도청 증거자와 순교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세택 기자 ▲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신사옥 앞 화단에 세워져 있는 우포도청 터 표석. ▲ 홍근표 신부가 9일 포도청 순교자 현양관을 찾은 서울순교자현양회 현양분과원들에게 포도청 증거자와 순교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세택 기자 서울 도성 내 포도청 순교지와 순교자 5위 “문초 때의 고통은 감옥에 갇힌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이 멍석을 썩어 들어가게.. 2014. 6. 14.
124위 순교지를 가다 <1> 서소문순교성지 124위 순교 영성 깃든 성지 찾아 순교 신심 키우고 깊이 새겨 오는 8월 시복될 124위 순교지는 총 29곳에 이른다. 이를 관구별로 보면, 서울관구가 서울대교구 5곳(38위), 춘천교구 1곳(1위), 대전교구 7곳(13위), 수원교구 4곳(11위), 원주교구 1곳(3위) 등 5개 교구 18곳(66위)으로 가장 많다. 대구관구는 대구대교구 1곳(19위), 부산교구 2곳(5위), 마산교구 3곳(4위), 청주교구 1곳(5위), 안동교구 1곳(1위)으로 전체 8곳(34위)이다. 광주관구는 전주교구 3곳(24위)뿐이다. 이를 관구별로 나눠 124위 순교자들의 순교지를 조명하게 된 것은 오는 8월 시복을 앞두고 더 많은 신자들이 124위가 순교한 성지 순례에 함께함으로써 순교신심을 내면화하고 이를 신앙 실천에 .. 2014. 6. 14.
[하느님의 종 125위]-<30·끝> 하느님의 종 순교자 124위와 증거자 1위 시복시성, 우리의 참다운 믿음살이로 완성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증거자 최양업 신부에 대한 시복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교회가 교황청 시성성에 시복 문서를 제출한 시점이 2009년 6월이니, 벌써 3년 10개월째로 접어든다. 그간 '예비심사 조서에 대한 법적 유효성 인정 교령'에 이어 '하느님의 종 124위 교령', 124위 시복 문서의 '법적 유효성 연구 결과물'에 대한 공인사본 같은 교황청 심사 결과 자료들이 한국교회에 도착하는 등 시복 절차가 차근차근 진행돼 왔다. 올해 12월 안으로 순교자 124위에 대한 법적 검토가 끝날 것이라는 긍정적 답변을 시성성 관계자들에게 듣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발맞춰 한국천주교회도 순교자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 2013. 4. 7.
[하느님의 종]-<29>홍낙민 루카ㆍ재영 프로타시오 부자 신유ㆍ기해ㆍ병인박해로 이어지는 3대 순교자 모두 시복 대상자로 ▲ 탁희성 작 제21도 '홍낙민 루카 형장으로 끌려감'. 3대에 걸친 순교자 배출의 영예는 시대를 초월한 삶의 고백이었다. 통회와 정개(定改)를 통해 진정한 믿음의 길로 들어서고, 예언자적 부르심에 투신하며, 사랑과 애덕 실천으로 나아간 삶이었다. 이로써 순교는 '죽는 이유를 증거하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믿음과 희망, 애덕의 순간이 됐다. 홍낙민(루카, 1751~1801)에서 비롯돼 홍재영(프로타시오, 1780~1840), 홍봉주(토마스, 1814~1866)로 이어지는 풍산 홍씨 3대 순교 또한 66년간에 걸친 과거에 대한 통회와 현재에 대한 고백, 미래에 대한 보속을 통해 신앙을 증거한 삶에 다름이 아니었다. 홍낙민ㆍ홍재.. 2013. 4. 7.
[하느님의 종 125위]-<28> 김진후 비오ㆍ종한 안드레아 부자 대를 이은 빛나는 순교 가문 김대건 신부에서 꽃 피우다 ▲ 신앙 선조 김진후와 김종한 부자, 김대건 신부 등이 대를 이어 살았던 신앙의 터전 솔뫼성지에 2004년 복원한 생가. 1998년 7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된 김대건 신부 생가터 1587.60㎡(450평) 대지에 정부 지원금 4억 2000여만 원을 들여 세워졌다. 생가는 전통 한옥 구조로, 당시 내포 양반층이 살던 집 형태를 근거로 건립했다. 최근엔 생가 일부를 성체조배실로 꾸며 순례자들이 성체신심을 다지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믿음은 대를 잇고 복음의 씨앗은 세상에 퍼져나간다. 김진후(족보명 운조, 비오, 1739~1814), 아들 김종한(일명 한현, 안드레아, ?~1816), 손녀 성 김 데레사(1779~1840.. 2013. 4. 7.
[하느님의 종 125위]-<27>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재산·명예·목숨까지 바치며 하느님 증거한 '호남의 사도' 요즘도 50마지기쯤 농사 지을 땅이 있으면 중농으로 친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6~1801)이 소유한 토지는 전주 인근 10여 개 고을에 걸쳐 자그마치 1만 5000마지기나 됐다. 1마지기는 지역별로 계산방법이 150평에서 200평, 300평 등으로 들쭉날쭉하지만, 전라도에선 300평으로 계산하니 이를 기준으로 하면 450만 평 규모다.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1487만633㎡(1488ha)이니 어마어마한 대부호였던 셈이다. '그집 땅을 밟지 않고는 열 곳이 넘는 동네를 못 지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자였던 유항검은 왜 호남의 첫 가톨릭 신자가 됐을까. 그 많은 땅과 재산, 명예, 심지어는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며 '호.. 2013. 2. 10.
[하느님의 종 125위] <26> 정광수ㆍ윤운혜 부부와 여동생 정순매 신앙으로 만나 주님 향해 나아간 아름답고 숭고한 부부 삶의 사표(師表) 우리는 찬미가 '떼 데움(Te Deum)'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순교자들의 무리가 당신을 찬미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순교자의 교회'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초대 교회에서 뿌려진 순교의 씨앗은 싹을 틔웠다. 교회는 이교도를 누르고 승리했지만 그 이후에도 교회 역사는 계속 흘렀다. 교회사 안에서 어떤 세기도 순교자가 나지 않은 때는 없었다. 선교 역사 안에서 순교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18~19세기 조선 교회사 또한 선교 역사이자 동시에 순교 역사였다. 정광수(바르나바, ?~1802)ㆍ윤운혜(루치아, ?~1801) 부부의 삶 또한 선교와 순교 역사가 엇갈려 교차하고 있다표 오빠 정광수ㆍ윤운혜 부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정순매.. 2013. 1. 27.
[하느님의 종 125위] <25> 김이우ㆍ현우,고성대ㆍ성운 형제 형ㆍ부모에게 신앙의 보화 물려받아 순교로 신앙 증거한 '믿음의 동반자' '하느님의 종' 125위 중엔 '형제'들도 꽤 많다. 같이 입교하고,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고,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며 '믿음의 동반자'로 살아간 혈육들이다. '한국천주교회 첫 희생자'로 기록되는 김범우(토마스, 1751~1787)의 동생들인 김이우(바르나바, ?~1801)ㆍ현우(마태오, 1775~1801) 형제와 부모에게서 교리를 배워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 된 고성대(베드로, ?~1816)ㆍ성운(요셉, ?~1816) 형제다. ▲ 역관 집안 출신인 김범우의 이복형제인 김이우ㆍ현우 형제는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함께 체포돼 형은 장을 맞다가, 동생은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림=탁희성 #김범우 못지않은 이복형제 김이우ㆍ현우 .. 2013. 1. 13.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