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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순교자245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 (24) 궁녀 강경복 수산나ㆍ문영인 폐궁에도 신앙숨결은 전해지고, 순교의 피는 꽃으로 변해 흩날려 궁녀 강경복, 주문모 신부 숨겨줬다 들통 나 체포돼 21살 때 궁에서 나와 철저한 수계생활한 궁녀 문영인 1801년 강완숙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순교 숨 막힐 듯 엄격한 궁궐 안. 무덤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눈 감고 못 본 척, 귀 막고 못 들은 척, 입 다물고 모르는 척 살아야 했던 사람들. 궁녀였다. 역사의 뒤안길 그늘에 조용히 존재한 궁녀들은 그러나 왕과 왕비를 보필하면서 최상층 문화인 궁중 음식과 복식, 한글과 궁중 문학 등을 전승하고 보존해 왔다. 그 역할이 이처럼 컸음에도 권력자들의 치부와 연결돼 있기에 궁녀에 관한 기록은 지금까지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실재했지만' '가려져있던' 궁녀들 가운데 '하느님의 종'이 있다. 바로 강.. 2013. 1. 6.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 (23) 정찬문(안토니오,1822~1867) 신앙 지키려 매 맞아 순교... 죽어선 목마저 잘려 ▲ 경남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에 있는 순교자 정찬문의 묘. "무촌리 무두묘에 비가 오고 있다 /목을 내어 놓고도 /서럽지 않았던 순교자 정찬문 /그의 묻혀져 있는 자리 /눈대중으로 못찾았던 무촌리 사람들의 어깨 위에 내리던 그 비 /지금 오고 있다 /거기 파보아라 /사촌들이 머리 없는 시신 덮어 두었던 자리 /거기 파보아라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던 /구순 노파 텃골 마누라의 적중이 /오늘 사봉면 일대 무언의 풍경이 되어 /빗물에 화안히 씻겨지고 있다 /천주교 사봉공소의 십자첨탑 /거기 어린 녹물도 /하나로 화안히 씻겨지고 있다" 강희근(요셉) 시인이 순교자 정찬문(안토니오) 무두묘 앞에서 쓴 시 '무촌리 풍경'이다. 무두묘(無頭墓)는 머리가 없는 무덤.. 2012. 11. 11.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 (22) 이성례(마리아,1801~1840) 곤장에 용맹했으나 모성에는... 배교 뉘우치고 영광스럽게 순교 ▲ 이성례가 참수형으로 순교한 당고개에 있는 당고개순교성지(서울 용산구 신계동). "(저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조선의 유명한 이씨 가문에서 출생했는데, 그 가문에서 유명한 인사들이 여러 명 배출됐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단원 이존창이었습니다. 그는 첫 선교사 신부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조선에 오기 전에 시골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제 직분을 집행했던 분입니다.… 이존창 집안이 처음에는 모르고서 가짜 사제를 냈으나 나중에는 진짜 사제를 내는 영광을 갖게 됐습니다. 그 집안의 딸들에게서 사제 두 명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의 딸 멜라니아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조모이고, (모친은) 이존창의 사촌누이 멜라니아의 조카딸입니다.… 이 마.. 2012. 10. 28.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21) 박상근(마티아,1837~1867) 선교사 칼레 신부 피신시키고 순교의 월계관 받아 ▲ 박상근의 묘가 있는 안동교구 문경 마원성지. 박상근(마티아)은 한국교회가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하느님의 종 125위 가운데 유일한 안동교구 출신이다. 1984년에 시성된 한국 순교성인 103위 중에도 안동교구 출신은 없다. 박상근이 성인반열에 오르면 안동교구가 낳은 첫 번째 성인이 되는 것이다. 산세가 험해 구름도 쉬어 넘어간다는 문경새재로 잘 알려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박상근은 말단 관리인 아전 출신이다. 1837년 박상근이 태어날 당시 문경은 신유박해(1801)를 피해 숨어든 충청도지역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다. 박상근은 이들과 접촉하면서 천주교에 입교한 것으로 보인다. 교리를 착실히 지키며 살던 박상근은 아전으로서 신자들이 어려운 일을.. 2012. 10. 14.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20) 신석복(마르코,1828~1866) 생사를 초월해 복음 증거한 자유로운 그리스도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마태 13,33). 소금과 누룩이 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소금과 누룩과 같이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금이 짠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은 녹아 사라져야 한다. 누룩도 자신은 발효돼 사라져야만 빵을 부풀게 할 수 있다. 소금과 누룩은 남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 짠맛을 내고 세상을 부풀리게 하려고 산다. 그러려면 자신을 .. 2012. 9. 23.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19) 윤점혜(아가타, ?~1801년) 순결한 주님의 종, 우윳빛 피 흘리며 기쁘게 순교 ▲ 윤점혜가 동정을 지키기 위해 남장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한양으로 올라오고 있다. 그림=탁희성 화백 가톨릭 신자에게 세례명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례 때 받은 제 2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 이름, 즉 본명(本名)이라고 부르며 수호성인의 삶과 신앙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밖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내세울 수 없었던 한국교회 초창기 신자들은 더욱 그러했다. 신유박해 때 순교한 여러 동정녀 가운데 행적이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꼽히는 윤점혜(아가타, 1778?~1801)도 마찬가지였다. 3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아가타는 평생을 하느님께 동정으로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살던 중 순교한 성녀. 윤점혜는 "나도 아가타 성녀처럼 살다가 순교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2012. 9. 16.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 <18> 조숙 베드로ㆍ권천례 데레사 동정부부 동정의 백합 들고 부부가 함께 순교의 월계관 쓰다 동정 지키며 몸과 마음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 신유박해 희생자 후손... 성 정하상 뒷바라지 수덕의 삶 살며 복음 전파와 애긍 실천에 헌신 하느님께 몸과 마음을 봉헌하기 위해 동정(童貞)을 지킨 동정부부는 교회사에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서양엔 스웨덴 성녀 비르지타의 넷째 딸 가타리나(1332~1381)와 남편,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헨리코 2세(973~1024)와 성녀 구네군다(975~1040) 등이 있다. 한국천주교회에선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중철(요한, 1779~1801)ㆍ이순이(루갈다, 1782~1802) 부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동정부부가 유중철ㆍ이순이 부부만 있는 건 아니다. 조숙(베드로, 1787~1819)ㆍ권천례 .. 2012. 9. 9.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17) 정산필ㆍ방프란치스코ㆍ인언민ㆍ이보현 정사박해로 내포교회 공동체 신자 100여 명 순교... 정산필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 받고 회장에 임명 사형선고 받자 천주와 성모께 감사 방프란치스코 인언민 가슴뼈 부러치는 고통 속에서 신앙 증거 혹독하게 매맞는 형벌에도 웃으며 순교 이보현 1797년 박해는 당시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한용화가 일으켰다. 임지 공주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도내 모든 수령에게 명을 내려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였다. 1799년까지 3년 가까이 충청도 남부지역을 주무대로 계속된 박해로 100여 명이 체포돼 순교했으며 내포교회 공동체는 와해되다시피 했다. 이 박해가 이른바 '정사박해'다. 하지만 정사박해로 피를 흘린 순교자들 이름과 행적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관변기록조차 거의 없다. 지금까지 기록을 통해 이름과 순교행적이 .. 2012. 8. 26.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16>최필공(토마스,1744~1801)ㆍ최필제(베드로, 1770~1801) 신해박해 때 굴복... 보배로운 피로 배교 기워갚아 최필공(토마스)과 최필제(베드로)는 사촌지간으로 둘 다 의원(醫員) 출신이다. 조선시대 의원은 중인 계급에 속했다. 초창기 한국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유난히 중인이 많았다. 조광(이냐시오) 고려대 명예교수는 '조선 후기 천주교 지도층의 특성' 논문에서 진산사건(1791년) 이후 신유박해(1801년) 때까지 천주교 지도급 인사 38명 가운데 21명(55%)이 중인이라고 분석했다. 신분 미상자(3명)를 제외하면 60%에 가깝다. 당시 중인은 사회 불만 계급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양반도, 평민도 아닌 중인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었던 정조 임금은 중인들이 천주교에 심취할 가능성이 크고, 그들이 천주교에 빠지는 것은 그들 잘못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 2012. 7. 29.
[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142, 끝) 유순지 라우렌시오 쌀가루에 대하여 유배지에서도 전교를 해 관헌의 미움을 산 유순지는 쌀가루와 소금을 섞어 만든 떡을 먹다가 끝내 절명하고 말았다. 그림=탁희성 화백 유순지(라우렌시오)는 1827년 전라도에서 시작한 정해박해가 경상도와 충청도로 확산될 때 충청도 단양에 살고 있었다. 외교인 친구의 고발로 그해 5월 20명 가량의 신자들과 함께 단양관아로 끌려갔다. 그는 혹독한 형벌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지만 함께 붙잡힌 이들의 원망이 극심해지자 배교한다고 고백해 풀려났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게 한 후 다시 관아로 가서 배교를 취소하고 형벌을 받았다. 충주진영으로 이송돼 그곳에서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은 유순지는 어찌된 일인지 함경도 무산으로 유배를 가게 됐다. 유배지에서도 전교를 열심히 해 관헌들의 .. 2012. 7. 29.
[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140)김도명 안드레아 신음하며 죽어감 1827년 정해박해 때 붙잡혀 전주 감영에 갇힌 김도명이 중병으로 감옥에서 숨을 거두고 있다. 그림=탁희성 화백 김도명(안드레아, ?~1833)은 면천(현 충남 당진) 출신이다. 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전라도 순창에서 붙잡혀 전주 감영으로 끌려온 김도명은 배교하고 교우들의 거처를 밝히라는 관형의 요구를 거부한 채 갖은 고문과 위협에도 꿋꿋이 신앙을 지켰다. 김도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오랜 옥중 생활을 견디가 중병으로 그만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1833년이었고, 그의 나이 52~53살쯤이었다고 한다. 2012. 7. 8.
[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139. 이 막달레나 묵주를 들고 선종 이 막달레나가 유배지 황해도 백천에서 꿋꿋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묵주를 들고 선종하고 있다. 그림=탁희성 이 막달레나(1778?~1830)는 전라도 장계(현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 살던 이 바오로의 누이다. 충청도 내포 출신인 이 막달레나는 17살에 이 안드레아에게 시집을 가 자녀 일곱을 두고 살았다. 1827년 정해년에 전라도에 닥친 박해로 곡성에서 붙잡혀 전주 관아로 압송됐다. 형리는 오라버니 이 바오로의 거처를 대라고 갖가지로 유혹하고 혹독한 형벌을 가했으나 이 막달레나는 끝까지 입을 다물어 마침내 황해도 백천군으로 귀양갔다. 그곳 사람들의 비웃음과 모욕 속에서도 꼬박꼬박 주일을 지키며 신앙 생활에 항구하던 이 막달레나는 4년간 유배살이 끝에 지병이 악화되자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를.. 201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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