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대성전 전경--매년 1000만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다녀가는 성 베드로 대성전은 가톨릭 교회의 본산일뿐 아니라 인류가 자랑하는 문화 유산이다.
'상피에트리니'(성 베드로 대성전을 짓는 사람들).
오늘날의 성 베드로 대성전을 완공하는 데 1만명이 넘는 상피에트리니가 동원됐다. 올해는 상피에트리니들이 대성전 초석을 놓은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교황청은 이를 기념한 행사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인 6월29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한다.
성 베드로 대성전 정초(定礎) 500주년을 맞아 대성전 건축과정과 주요 시설물을 소개한다. 여기서는 사도좌가 갖는 신학적 의미는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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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베드로 무덤 위에 세워진 대성전
성 베드로 대성전은 로마 시내를 가로지르는 테베레 강 서쪽 바티카노(Vaticano) 언덕 위에 있다. 이 언덕엔 1세기경 로마 황제 네로를 위해 지어진 원형 경기장이 있었다. 경기장은 주로 그리스도인 처형장으로 이용됐다. 사도 베드로도 64~67년경 이 곳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순교했다.
그의 시신은 경기장 인근에 조성된 순교자 묘지에 안장됐고, 신자들은 박해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무덤 곁에 작은 누각을 지어 사도의 유해를 지켰다. 이 누각이 바로 바티카노 언덕 위에 세워진 사도 베드로를 위한 첫번째 기념 성당이었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누각을 헐고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를 지었다. 324년에 착공해 25년간의 공사 끝에 349년에 완공된 이 바실리카는 오늘날 성 베드로 대성전이 신축되기까지 1153년간 사용됐다.
▨ 세번째 지어진 성 베드로 사도 기념 성전
오늘날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사도 베드로 무덤 위에 지어진 세번째 성당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지은 바실리카는 1000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 위기에 처하자 1450년부터 새 성전 신축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던 중 교황 율리우스 2세(1503~1513 재위)가 "로마를 다시 세우겠다"며 1506년 4월18일 성 베드로 대성전 신축 공사에 착수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1513~1521년 재위)는 대성전 공사자금 마련을 위해 '대사'를 남용, 마틴 루터와 프로테스탄트 세력들에게 교회와 갈라서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은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천상 예루살렘(묵시 21,11-21)을 토대로 설계됐다. 첫 설계자인 브라만테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판테온'의 돔 양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정방형의 그리스식 십자가 모양으로 대성전을 설계했다.
이후 라파엘로, 안토니오 다 상갈로, 미켈란젤로, 마데르노, 베르니니 등 후임 수석 건축가들의 설계 수정을 거쳐 지금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완공했다. 대성전은 공사를 시작한지 120년 만인 1626년 11월18일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년 재위)에 의해 축성됐다.
▨ 성 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대성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성 베드로 광장을 거쳐야만 한다. 이 광장은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대성전 축성 이후 교황 알렉산델 7세(1655~1667년 재위)의 위촉을 받아 1656년부터 1667년까지 11년에 걸쳐 조성했다.
폭 246m, 길이 300m인 이 광장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거대한 회랑을 만들어 놓았다. 대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을, 회랑은 '그리스도의 팔'을 상징한다. 베르니니는 그리스도가 양 팔을 펼쳐 종교와 민족,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모든 이들을 하느님 성전으로 초대하는 구세주의 참 모습을 순례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전체 회랑에는 284개의 원주형 기둥과 88개의 사각 기둥이 각각 네 줄로 서 있다. 회랑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는 16m이며, 그 위에 성인과 역대 교황을 표현한 140개의 대리석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높이 25m, 무게 300t의 오벨리스크(기념비)가 서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군들이 이집트에서 약탈해와 바티카노 경기장에 세워놓았던 것으로 사도 베드로를 비롯해 수많은 순교자들의 순교를 지켜봤다. 교황 식스토스 5세(1585~1590년 재위)는 1586년 이 오벨리스크를 베드로 광장으로 옮겨와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아 박해로부터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했다.
오벨리스크 이전공사에는 도메니코 폰타나의 지휘로 인부 900여명과 말 140여 필, 권선기 47대가 동원됐다. 작업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일꾼이나 구경꾼이 한마디라도 소리를 낼 경우 사형에 처한다는 엄명이 떨어졌다. 한창 작업이 진행되던 중 마찰열에 의해 오벨리스크를 끌어 올리던 밧줄에 불이 붙었다. 이 광경을 모두들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데 선원 출신의 한 사람이 '밧줄에 물을 부으라"고 외쳤다. 그의 말에 따라 인부들은 즉시 밧줄에 물을 뿌려 대형 참사를 모면했다. 교황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고함을 지른 이 용감한 선원에게 사형 대신 성지주일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지(聖枝)'를 공급하는 상을 베풀었다. 그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 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
오벨리스크 양 옆에는 바로크 양식의 분수대 2개가 설치돼 있다. 대성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오른쪽 분수대는 대성전 정면을 설계한 카롤로 마데르노 작품이며, 왼쪽 분수대는 도메네코 폰타나 작품이다. 순례자들은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기 전 이 분수대에서 몸을 씻어 육신을 정화했다. 또 분수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검은 대리석 원반이 사방으로 박혀 있다. 이 원반 위에 서서 베르니니의 회랑을 쳐다보면 네 줄로 된 회랑이 한 줄로 보인다.
▨ 대성전 정면과 5개 입구
성 베드로 대성전 정면은 높이 45.5m, 넓이 114.7㎡나 된다. 정면에는 높이 27m, 지름 3m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 8개가 서 있고, 그 위에는 십자가를 든 그리스도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세례자 요한과 열한 사도들의 대리석상이 있다. 이들 석상의 높이도 6m나 된다. 정면 입구 양면에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대리석상이 서 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출입구 계단을 이용해 대성전에 들어서면 넓은 입구 회랑이 나온다. 이 역시 대성전 정면을 설계한 마데르노의 작품이다. 길이 71m,폭 13m,높이 20m의 이 회랑 천장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설립한 바실리카의 천장을 그대로 재현했다. 회랑 오른쪽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왼쪽에 카롤로 대제 대리석상이 있고, 바닥 중앙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념해 교황 요한 23세 문장이 천연 대리석으로 장식돼 있다.
입구 회랑을 지나면 5개의 문을 만난다. 이들 문은 각각 이름이 있는데 맨 오른쪽에서부터 '성문'(매 25년마다 성년을 기념해 열림) '성사의 문' '중앙문' '선악의 문' '죽음의 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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