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못드 공소 농장에서는 송아지를 포함해 20여 마리의 소를 키워 우유와 몽골식 요구르트 ‘타락’을 생산하고 있다. 이것을 팔아 환우와 빈민가정을 돕고 있다.
▶13~21세까지의 남학생 12명이 성당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저녁 기도와 모임 등에 공동으로 참여한다.
한끼 먹는 신자들 “그래도 나눠야죠”
송아지 키워 환우와 빈민가정 지원
봉헌금 모아 장학금 주고 성당증축
[몽골=주정아 기자]
몽골 울란바타르시 항올성당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종못드 공소에 닿을 수 있다. 공소까지 이르는 길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몽골의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울란바타르에서는 중심가만 벗어나면 도시를 둘러싼 빈민가옥들과 마주친다. 이후 곧바로 개발되지 않은, 아니 사람의 손때가 거의 묻지 않은 초원지대를 만난다. 지난 100년과 21세기 현재의 모습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몽골만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변 경치와 달리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덜컹거리는 중고차로 이동하기란 보통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항올본당 주임 김성현 신부는 매주 미사봉헌을 위해 이 길을 오가고 있다. 부서질 듯 큰 소음을 내며 흔들리는 차 안은 김신부에게는 오롯이 기도 공간이 되어 있었다. 김신부는 지난 2002년부터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몽골 현지인 본당의 주임을 맡고 있다.
종못드는 아이막(한국의 도청 개념) 소재지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황량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종못드 공소는 옛 샬트르수녀회가 운영하던 학교를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었다.
종못드 공소는 현재 몽골교회 스스로, 몽골인들을 위해 펼치는 ‘자립형 사회복지’를 펼치고 있어 관심을 모으는 신앙공동체이다.
종못드 신앙공동체는 2002년 정부로부터 정식 종교활동 허가를 받았다. 이 지역에서 종교활동이 허가된 경우는 종못드 공소가 처음이라고 한다.
평균 미사 참례자는 30~40명 정도. 이들이 펼치는 가장 큰 활동은 농장 운영과 지역 내 환우 돌보기이다. 농장에서는 현재 송아지를 포함해 20여 마리의 소를 키워 우유와 타락(몽골식 요구르트)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수익금은 전액 지역 환우들의 의약품과 빈민가정 생필품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공소에는 전문 사회복지사도 두고 있다.
종못드는 방직공장 정도를 제외하고는 생산시설이 거의 없는 지역으로 인구의 70% 가량은 절대빈곤층이다. 대개 7~8명의 가족이 월 3만원 이하의 생활비로 연명하는 수준. 때문에 이들이 먹는 식사는 하루 한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일의 먹거리를 걱정해야하는 삶은 신자들의 가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열악한 형편에서도 이곳 신자들은 바로 ‘나눔’의 삶을 펼쳐나가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몽골에 발을 내디뎠을 때 몽골인들은 ‘남을 위해 나누는’ 선교사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몽골인들은 가족 혹은 부족단위의 유목생활 영향으로 자신들의 가족과 친인척에게는 끔찍한 사랑을 베풀지만 타인에게 베푸는 삶에는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골 신앙인의 모습은 나누는 삶에서 더더욱 큰 가치를 발하고 있었다.
종못드 공소의 사회복지 활동은 또한 자발적인 신자들의 힘으로 시작, 운영돼 더욱 모범적이다.
가진 것 없지만 나누는 삶
항올본당 신자들은 다른 선교지에서와 달리 봉헌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인의식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김신부의 교육 덕분이다.
김신부는 “성당에 나오는 것이 구원받는 것임을 깨달아야하지만 실제 피부에 다가오는 것은 세상 삶의 구원일 때가 많다”며 “받으려고만 하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을 때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신자들은 크든 작든 정성껏 봉헌금을 준비한다. 봉헌금을 낼 수 없을 때는 한주 동안 실천한 선행들을 봉헌한다. 그마저도 없을 때는 앞으로 한주간 실천할 선행과 희생 등을 적어서 낸다.
본당신자들이 그동안 정성껏 모은 봉헌금은 모두 종못드 공소 농장운영기금에 보태왔다. 구체적인 기금지원은 공소의 사회복지사가 직접 가정환경을 조사해 본당 사회복지회에 보고하고, 위원회에서는 지원 대상자를 심사, 확정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보통 심사를 하는 신자들도 복지지원을 받아야할 만큼 생계가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이들은 기꺼이 타인을 위한 지원을 선택한다. 가난한 이들이 더욱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놓는 매일의 기적 그 자체였다.
또 본당에서는 인재양성을 위해 유목대학(농업대) 입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13명의 학생이 대학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 나누는 삶을 가꿔가는 몽골신자들의 모습은 성당 건립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현재 항올본당 신자들은 성당증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신자 수 급증으로 옛 성당으로는 신자를 수용할 수가 없게 됐다. 마침 2004년 총회 때 신자들이 성당을 증축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김성현 신부는 이들의 제안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고민스러웠다. 실제 이들에게는 성당을 지을만한 경제적 여력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 자리에서 증축 기금 10%는 무조건 자신들이 책임진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즉석에서 한화 10만원 가량의 기금을 모았다. 주일헌금이 평균 5천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신자들은 그 종잣돈으로 모금카드를 1천장 만들어 한국교회에 보냈다. 그렇게 모금한 돈이 4천달러. 다시 그 돈으로 소 100마리분의 가죽을 사서 열쇠고리 등을 만들었다. 열쇠판매는 6~7월 한국을 방문하는 김성현 신부가 맡았다.
현재 본당 신자들은 묵주기도 60만단 바치기 기도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증축기금 6억원을 모으기 위한 정성의 하나이다. 겔성당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기도함에는 매일같이 묵주기도 횟수를 쓴 종이조각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항올본당의 몽골인 사제 양성 노력
몽골교회 자립 위해 시급한 일
사제관서 함께 먹고 자고 기도
몽골 선교사들은 몽골교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양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몽골인 사제 양성은 몽골교회의 시급한 과제이다.
항올본당 김성현 주임신부도 본당 설립 때부터 사제 양성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부임 초기 김신부는 학생들에게 매일미사를 권유하는 식으로 신앙교육을 더해나갔다. 그러다 한명씩 자신의 숙소에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대부분 본인은 공부와 신앙생활을 원하지만 가정형편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었다. 현재 13~21세까지의 남학생 12명이 성당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김신부는 “일종의 예비신학교를 지향하고 시작했지만 현재로선 가정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신앙교육을 보충하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한다. 비신자 가족들이나 성소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하는 가족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완충과정도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신부는 이들이 굳이 신학교까지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올바른 신앙을 갖추고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저녁 기도와 모임 등에 공동으로 참여한다. 다른 일상은 대체로 자유롭다. 때문인지 진로를 포기하거나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을 올바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다. 특히 김신부는 본당사목의 빠듯한 일정으로 개개인별로 영성상담과 학업을 돌봐줄 수 없어 안타까워 하고 있다.
본당에서는 새로 증축될 성당에 기숙사도 포함시켜 공사를 하고 있다. 기숙사는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꾸며 더욱 체계적인 성소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몽골인 사제는 빨라도 10년 후에나 나올 수 있으므로, 차후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김신부는 “몽골교회의 가장 큰 사목적 과제는 공동체 운영과 교육을 도울 수 있는 사제 파견”이라고 강조했다.
몽골에서 활동 중인 수도회들도 지역교회 사제양성에 공동의 힘을 모으고 있다. 일례로 각 수도회별 성소자 양성은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혹여 성소 지원자가 있더라도 몽골교회에서 활동하는 조건으로 각 본원에 교육을 보낸다.
몽골지목구는 올해 성소주일에 3개 본당 성소자 모임을 처음으로 열었다. 앞으로는 성소자 모임을 정례화하고, 지목구 차원에서 사제 양성에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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