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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교황 베네딕토 16세 즉위 1주년] 침착한 연설 속 ....

by 세포네 2006.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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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한 연설 속 핵심교리는 강하게 새겨

 

[교황 베네딕토 16세 즉위 1주년]

 

◀ (시계방향으로)
▶교황 선출 하루전- 2005년 4월 18일, 라칭거 추기경으로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하루 뒤 교황으로 선출됐다.
▶첫 회칙 서명-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1월 23일 서재에서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 서명하고 있다.
▶전임 교황 기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4월 7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1주기를 맞아 무덤에서 기도하고 있다.

 

 


교황 선종서 선출까지 화제
굴뚝 흰연기에 전세계 환호

전임 교황 노선 그대로 이어 ‘인권수호·생명존중’ 강조

인류 역사의 가장 격동기였던 20세기말, 26년 동안 세계교회를 이끌며 평화의 사도로서 이 세상에 평화와 복음을 선포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인간의 가장 나약함까지도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 인류에게 주고 세상을 떠나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뒤를 이어 보편교회를 이끌 막중한 책임을 맡은 교황 베네딕토 16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4월 2일 저녁 세상을 떠난 뒤 예상보다 훨씬 빨리, 4월 19일 추기경들은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그 후 1년, 엄격한 교리주의자로 오인됐던 라칭거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천년기에 걸맞는 새로운 모습의 교황으로서의 면모를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과 인류에게 보여주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즉위 1주년을 맞아 지난 1년 동안 교회 안팎에서 이뤄진 교황의 발걸음을 돌아본다.

전세계 관심속에 선출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전세계는 바티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선종으로부터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출까지, 불과 2주 남짓 했던 그 시간 동안 전세계 언론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눈은 바티칸을 향했고 성 베드로 광장에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모여들었다.

교황청은 교황의 선종부터 새 교황의 선출까지의 시간들을 은총의 시간들로 회상한다. 교황의 장례 예식을 거들었던 한 교황청 관리는 “우리는 온 세상에 부활을 진심으로 믿는 교회의 모습을 전해주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올랐을 때, 인류는 한 마음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함으로써 교회의 사건은 온 인류의 사건이 됐다.

다음은 그 역동의 순간들이다.

● 3월 27일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여전히 호흡 곤란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인류에게 부활축복을 주려 했다. 하지만 한 마디 말을 하지 못하고 깊은 숨소리만 들려줄 뿐이었다.
● 3월 30일 : 교황이 다시 창가에 나타나 베드로 광장의 순례자들을 축복했지만 그저 몇 마디 잘 들리지 않는 말을 했을 뿐. 교황청은 교황이 이제 튜브를 통해 음식을 섭취한다고 말했다.
● 3월 31일 : 고열로 인해 치료를 받았지만 패혈증과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다. 수천명의 신자들이 베드로 광장에 모여 철야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 4월 1일 : 침대에서 간신히 미사를 봉헌한 교황.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혈압이 떨어지고,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 4월 2일 : 교황은 의식을 잃기 시작했고, 저녁 9시 37분 마침내 교황은 그토록 사랑하는 하느님의 곁으로 떠나갔다. 인류는 눈물과 기도로 교황의 선종 소식을 맞았다.
● 4월 3일 : 교황의 유해가 역사상 처음으로 TV 카메라에 공개됐고 전세계 추기경들이 교황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바티칸으로 왔다.
● 4월 4일 : 교황의 유해가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광장에는 이미 수십만명의 추모객들이 몰려 들었다. 이후 며칠 동안 약 4백만명이 교황을 추모했다.
● 4월 5일 : 추기경들은 교황의 장례식과 콘클라베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 4월 8일 :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장례식이 거행돼 전세계에서 1백만명의 추모객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미사 후 교황의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묘지에 묻혔다.
● 4월 18일 : 115명의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콘클라베를 위해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섰다. 한 차례의 투표 후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 4월 19일 : 오전, 두 번째로 실시된 투표 후 새 교황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40분 뒤 한 추기경이 나타나 라칭거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됐음을 발표했고, 잠시 후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며,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베네딕토 16세의 일년

1년 동안 200회 이상의 강론과 연설을 통해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조용하게, 그리고 침착하고 점진적으로 가톨릭 신자들과 세상에 진리와 자유, 신앙과 인간 존엄성 등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가르침을 전했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노선들을 상당 부분 그대로 이어받은 새 교황은 지난 1년 동안 전임 교황의 유산을 간직하면서 새로운 모습과 스타일의 교황으로서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져왔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전임 교황 시절 이미 잡혀 있던 스케줄들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우선 8월에는 세계청년대회 행사를 자신의 고국인 독일에서 치렀고, 10월에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소집하고 성체성사의 해를 폐막했다. 몇 차례의 시성식을 집전하고 수많은 약속에 참석하고 미사를 집전했다. 새 교황에게서 엄격한 교리적 선언, 자유주의적인 주교들과 전례개혁의 부작용에 대한 강경책 등을 기대했던 이들은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교황이 지난 1년 동안 발표한 주요 문헌은 ‘하느님은 사랑’이심에 초점을 맞춘 회칙 뿐이었다. 사제직과 관련해 동성애적 경향을 지닌 이들에 대한 언급 조차도 이미 전임 교황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교황청 인적 구성의 대대적인 변화에 대한 추측들까지도 아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교황의 굵직한 인선에는 지난 5월 윌리암 J. 레바다 대주교를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하고 추기경에 서임한 것 등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신앙의 뿌리 공고히

교황의 지난 1년 동안의 행보를 보면, 교황은 우선적으로 행정적인 부분들보다는 신앙의 뿌리를 공고히 하는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각자의 개인적 삶의 초점으로 재발견하도록 촉구했고, 각자의 이기심과 자아를 자신들의 모든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경향에 대해 경고했다.

더욱이 교황에게서 우리는 이러한 촉구가 결코 날카롭고 단호한 경고가 아니라 따뜻하고 호소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초대의 모습을 띠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교황은 또한 ‘교사’로서, 교리보다는 성경에 더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황은 사도시대의 초기 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신앙을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현대인들 사이의 연관성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현대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과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강조한다. 즉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둔 인권 수호, 물질적 이익에 우선하는 인간 존재, 생명권이 단지 교회의 가르침에 그치지 않는 인간 본연의 권리라는 사실,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배제하는 것은 현대 사회를 부패케 하는 행위라는 신념.

교황은 또한 가장 중심적인 주제, 즉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 항상 회귀한다. “인간 생명은 관계입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관계는 바로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모든 관계는 깨어지기 쉽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며 하느님이 비워진 세상, 곧 하느님을 잊고 사는 세상은 생명을 잃게 되며 죽음의 문화로 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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