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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한국 수녀 5명 생활하는 캄보디아의 봉쇄수녀원

by 세포네 200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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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녀 5명 생활하는 캄보디아의 봉쇄수녀원

 

상처받은 곳에 복음 전파되길 끊임없이 기도

【캄보디아 우광호 기자】

옷깃을 여몄다. 바지와 신발에 묻은 먼지도 ‘탁탁’ 털어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나처럼 죄 많은 사람이 이곳에 들어갈 자격이 있을까.’

캄보디아 프놈펜 갈멜 여자 수도원.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는 그 봉쇄 수도원이다. 때 하나 묻지 않은, 맑은 영혼들의 거처.

한국 수녀 5명이 2005년 6월 25일부터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평소라면 근처에 얼씬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본격 봉쇄에 앞서, 수도원 건물 신축과 언어공부 등 다양한 이유로 봉쇄 준비 기간을 갖고 있는 중이어서 ‘특별히’ 면회가 허용됐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진흙 가득 묻은 신발 신고 하얀색 종이 위를 걷는 기분으로 문에 들어섰다. “어머! 기자님 오셨네요.” 종신서원을 마친 50대에서 30대까지의 한국 수녀들이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우물쭈물하는 기자를 식탁으로 끌어 앉혔다. 당신들 먹을거리도 제대로 없을 텐데 옥수수, 빵 등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내왔다. 그리고 바짝 옆으로 다가와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맑은 눈으로 기자를 바라봤다.

“캄보디아에는 왜 오셨어요?” “이곳에 와서 어떤 분들을 만나셨어요?” 질문이 이어졌다. 입이 굳어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여자 친구 앞에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심정이랄까. 마치 엄청나게 큰 바위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간신히 입을 떼서 물어본 질문.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멍청한 질문을 한 것 같아 이내 후회했다. 그런데 쾌활한 대답이 돌아왔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이 좁은 곳에서 뭐가 그렇게도 바쁠까.

먼지가 많은 나라여서 청소를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단다. 바느질, 빨래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 요즘에는 캄보디아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를 포함해 수시로 성무일도 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밤 10시 30분에 취침하는 반복적 일상 속에서 수녀들은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봉쇄 수도원을 ‘교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수녀들에게 “요즘 어떤 지향으로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한국처럼 캄보디아도 상처가 깊은 민족입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상처의 치유는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길, 그리고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이 퍼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봉쇄수녀원의 여건을 갖춘, 외부와 격리될 수 있는 시설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

“정말 조심스럽게 하는 질문인데요. 허락하신다면… 가톨릭신문 독자 분들께 수녀님들의 이 어려운 상황을 알려도 되겠습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실 수만 있다면…” 수녀들이 “어머~”하며 깔깔깔 웃었다. “뜻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거든요. 저희들은 지금도 이미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한 수녀가 빙그레 웃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소였다. 한국에는 ‘백제의 미소’가 있다고 했던가. 한국인의 미소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미소를 주신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 은총에 감사했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닐 수 있는지를 체험한, 행복했던 1시간. 수녀원 문을 나서며 옷깃을 다시한번 여몄다.

우광호 기자 woo@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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