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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외)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 순례

by 세포네 2006. 3. 7.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 순례

 

예루살렘의 새벽입니다. 모든 것이 잠든 이 시간 저희들은 일어났습니다. 새벽에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를 밟기 위해서입니다. 낮시간에는 이 길이 온통 아랍상인들로 가득차 있어 묵상하며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새벽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올라가자는 김목사님의 제안에 모두 찬성하여 이 시간에 오게 되었습니다.
호텔에서 10분 정도 가니, 예루살렘 성안으로 통하는 다마스커스 문이 나타납니다. 이 문을 통과하여 5분쯤 걸어가니 '비아 돌로로사'라는 안내판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순례를 시작합니다.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라는 뜻인데 "예수님의 고난 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길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해 걸으시던 약 800 m의 길과 골고다에서의 십자가 처형과 매장에 이르기 까지의 전 과정을 순례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써 14세기 프란시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확정된 길입니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이 길에 마련된 14개 장소는 18세기에 와서야 확정된 것이며,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일부는 확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고고학적 확증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우리가 지금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감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운데 어디서 들리는 닭 울음소리 그 소리 가슴 찢어 나를 아프게 한다." 어느 무명시인의 새벽공기라는 제목의 시 한 구절이 앞을 스칩니다.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신 빌라도 재판정이 있는 안토니아 요새는 현재 회교도들의 학교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학교에 들어가는 계단에 앉으니 예배 드리기 참으로 좋은 장소입니다. 강성환목사님의 짧지만 큰 메시지를 들으며 예배를 마친 우리는 김진산 목사님의 선두로 조용히 찬송을 부르며 예수님의 무덤 교회를 향하여 갔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나 있는 고난의 길, 수 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며 올라갔을 이 길의 피울음이 솟아 오는 듯 합니다. 칙칙하기 이를 데 없는 골목길을 따라 십자가가 언덕 위로 오르고 있습니다.  

 

 1.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빌라도 법정.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정 (Praetorium, 마 27:11~14)으로부터 시작되며 예수께서 사형이 확정된 곳입니다. 헤롯 대왕이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를 위해 지은 안토니아(Antonia) 성채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수 당시의 로마 총독부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며, 당시 총독 빌라도는 유월절 기간 동안에 자주 일어났던 반로마 시위를 대비하여 예루살렘에 와 있을 때 이 성채에서 머무른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심판은 계속 되고 있지 않은가? 누가 누구를 심판하는가? 어쩌면 예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예수 대신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외쳤던 무지한 군중들 속에 누가 끼여 있는가? 예수님을 심판하도록 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비겁하고 위선적인 종교쟁이의 모습이 오늘 우리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을 향한 영적 순수성을 팽개치고 세속적 지위와 권위에 노예가 되어 관습의 허울에 빠져 사는 모습이 오늘 기도교와 무관한가? 오늘 나와는 무관한가?

 

 2. 십자가를 지신 자리.


빌라도 법정 맞은 편인 이곳으로부터 도시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로 향하셨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며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AD 135년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가 세운 에케호모 아취는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아치 뒤에 보이는 예배당이 기념예배당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는 정작 십자가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십자가 찬송도 많이 불렀으며, 십자가 설교도 많이 하였지만 우리는 그 십자가가 지금 예수님이 걸어가신 이 십자가와 같은 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노래하지만 정작 십자가 지기를 피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우리를 이 순례를 통하여 정결하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알게 하소서.
우리가 좀더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예배당 벽을 쓰다듬고 길을 따라 갑니다.

 3.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지신 곳.

 

 

1856년에 세워진 아르메니안 기념교회가 그날을 증언하기 위하여 서 있습니다. 수 많은 군중에 싸여 조롱을 받으며 갈 때 쓰러지는 예수님의 모습은 분명 수치며 치욕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오만한 힘 앞에 연약함과 무기력함을 보이시는 주님, 그 주님 앞에 살기 등등한 군병과 비웃는 구경꾼들을 생각합니다.

진리의 길이 이런 길입니까? 생명의 길이 이 죽음의 고통입니까?  예루살렘 입성할 때 호산나를 외치며 따르던 그 많은 군중은 어디로 갔습니까?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아들을 오른 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던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 쓴 잔을 받아 마시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 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쓰러지는 주님 곁에 누가 있습니까? 이 힘든 길 모퉁이를 돌아가는 이 길을 누가 따라옵니까? 이 많은 군중 속에서 당신의 사람이 따라오고 있습니까? 나는 오늘 이 길을 걸으며 당신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주님께 떠 넘기고 모른 채 구경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를 만난 곳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성모마리아를 생각합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던 그 때 그 충격,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아 길러야 하는 기구한 운명,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고 세상에 모든 사람이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오히려 주님을 찬양했던 순종의 여인. 낳자마자 헤롯의 광기어린 칼날을 피하여 먼 길로 피난을 떠나야 했던 여인, 사람들이 아들에게 귀신 들렸다고, 바알세불이라고 말할 때 마음 속으로 깔려오는 어둠을 이기고 여기까지 왔는데 군중들의 틈새로 아들의 고통을 눈물로 지켜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애절함을 알 수 있을까요?

자식의 치욕스러운 고난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 어머니를 만나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을 우리는 알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우리는 한번 쳐다보고 지나갑니다. 아들과 어머니가 흘리는 이 눈물의 의미를 가슴에 담으면서 말입니다.
 

5. 시몬 구레네가 십자가를  대신 진 자리.

 

구레네 사람 시몬 (Simon of Cyrene)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곳이 됩니다. 다시 한 번 모퉁이를 돌아서며 왼편에 있는 이 곳에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을 기념하여 1895년에 세워진 프란시스칸 교회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시몬의 아들들은 '알렉산더와 루포 (막 15:21)로 알려져 있으며,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 " (롬 16:13)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으로부터 계속되는  비아 돌로로사는 비교적 좁고 가파른 경사지를 따라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는데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집니다. 십자가를 같이 지고 갈 누군가가 옆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같이 져 주어야 할 이 가 내 옆에 있습니다. 나도 오늘 십자가가 내게 주어진다면 묵묵히 지고 가게 하소서. 내가 지쳐 쓰러질 때 내 곁에 십자가를 같이 져 줄 이가 있게 하소서. 오늘 우리가 서로의 십자가를 나누어 지게 하소서.

 

6.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곳.

 

베로니카 여인이 물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다는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성 베로니카(St. Veronica)가 예수님의 땀을 닦아드린 그 손수건에 예수님의 초상이 새겨졌다는 전승에 따라 1882년에 기념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베로니카라는 꽃 이름도 이 베로니카를 기념하여 지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이 외롭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구경꾼만은 아니었습니다. 애통하며 슬퍼하며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헌신을 잊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신 말씀이 오늘의 베로니카에게도 이루어지이다.

 

 

 

 7. 두 번째 예수님이 쓰러지신 곳 

 

천장이 덮여 있는 상가 골목을 오르다 보면 역시 좁은 길이 좌 우측으로 나 있는 십자로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가면 다마스커스 성문이 나오는 길입니다. 좌측으로 가면 골고다 언덕이 됩니다. 이 모퉁이에 1875년에 세워진 기념교회가 서 있습니다. 바로 이 곳이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입니다.
급경사 지역은 아니지만 맨 몸으로 올라도 쉽지 않은 골목 길입니다.
두 번째 땅 위에 쓰러짐은 누구로 인한 것인가? 주님! 나 때문입니다. 바로 이 죄인 때문입니다. 여기 저기에서 울음이 터저 나옵니다. 억누르는 울음을 견딜 수 없었는지 흐느끼며 울던 눈물은 강물이 되어 가슴에서 터져 나옵니다.
주님을 먼 발치에서 따르던 이들이 주님의 쓰러지심을 보며 얼마나 달려들고 싶었을까? 비겁하여 용기없어 다가서지 못하는 이 못난 모습으로 인해 주님은 쓰러지고 또 쓰러지신 것입니다. 십자가 조차 대신 질 수 없는, 세상의 조그마한 눈치에도 용기있게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지 못한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은 두 번째 쓰러지신 것입니다.

 8. 예수님이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말씀하시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 라고 말씀하신 곳인데 희랍수도원 벽의 라틴 십자가 표시를 만져봅니다. 베로니카만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자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예루살렘의 앞날을 위해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겪어야 할 비통한 세월은 AD70년에 예루살렘 멸망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울고 있습니까? 나와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닌 지역과 민족을 위해 흩어져 있는 한민족과 세상을 향해 더욱이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울어야 하지 않을까요?

 

 

 

 

 

 9.예수님이 세 번째 쓰러지신 곳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으로 곱틱교회가 서있는데 뒤에 예수님의 성묘 교회가 보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끝까지 짓누르며 처절한 절망으로 끌고 갑니다. 세 번 씩이나 주저 앉게 만드는 십자가 다시 지고 일어납니다. 반드시 져야만 할 십자가를 내가 사랑합니다.

 

 

 

 

 

 

 

 

 

 

 

 

 10. 예수님의 옷을 벗긴

 

십자가 처형을 위하여 옷을 벗기신 곳(요 19:23 ~ 24)이며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한(마27:33-36) 골고다 언덕입니다. 10번 째부터는 예수님의 성묘교회 내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절정에 달하는 골고다 언덕은 해골(Golgotha/Calvary, 골고다/갈보리)라 불려지는 당시 유대인 묘지 지역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로마에게 완전히 멸망 당한 후 이 곳은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으로 황폐화 하게 되었는데, 주후 135년경 당시의 하드리안 황제는 예루살렘의 이름을 알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바꾸었고, 동시에 기독교의 흔적을 말살하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 위의 비너스 신전을 건립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문에 골고다 언덕은 본래의 형체를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골고다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되고 오늘과 같은 성지로서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성묘 교회는 오래 되어 낡아 보이기는 하지만 거대한 돔과 지하로 내려 가면 드넓은 홀, 높은 천장, 화려한 문양의 그림 등으로 놀라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흔적을, 십자가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온갖 짓을 다 했지만 기어이 십자가의 흔적을 찾아내고 이날까지 보존해 오는 것은 신앙의 힘이요, 하나님의 은혜라 여겨집니다. 십자가는 영원하리라는 것을 성묘교회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11. 예수님 못 박히신 곳
 
12. 예수님 숨을 거두심

 

  11번 장소는 오른편에 12번 장소는 왼편에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천장에 장식된 모자이크 문양은 금빛 찬란하기가 이를 데 없는 비잔틴 식의 화려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서와는 달리

너무 지나친 장식에 향불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13.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린 곳 .
14. 예수 님의 빈 무덤


   13번과 14번은 11번 12번 아래 층에(낮은 곳) 있으며 이 모든 장소가 예수님의 성묘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 모든 자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며 보존하는 것입니다. 박해자들이 모두 뭉개 버린 그 자리에 2000년 동안 예수님의 죽음이 주는 의미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하 동굴이 주는 엄숙함이 있었습니다. 침묵이 있었습니다. 참회가 있었습니다.우리의 순례가 영적 순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

 

리의 지식과 우리의 견문이 넓혀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더 깊이 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루살렘 "비아돌로로사" 고난의 길, 수난의 길, 슬픔이 길이 지금도 총성이 멈추지 않은 채 슬픔과 탄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지를 두고 서로의 성지라 싸울 수밖에 없는 이 아픈 역사가 십자가의 길을 더욱 슬프게 합니다. 거룩한 땅 예루살렘이 참으로 거룩해지도록 우리는 아직 십자가의 길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여 평화의 깃발이 높이 오를 그 날을 위하여 내 지고 있는 십자가를 만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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