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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덕장 운영하는 이용운씨

by 세포네 2006. 1. 23.

한겨울 황태 농사는 하느님이 짓는 농사

 

 이용운(프란치스코 하비에르, 54)씨는 횡계리에서 제법 큰 황태덕장을 갖고 있다. 올 겨울 2000평 덕장에 명태 120만 마리(60톤)를 내다 걸었다.

 올해로 20년째 '황태 농사'를 짓는 이씨는 "땅을 일구는 농부는 노력 여하에 따라 수확을 더 할 수 있지만 황태 농사는 하느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별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씨는 "인제에 있는  용대리 덕장은 골짜기 바람으로, 분지 형태인 횡계리 덕장은 바람과 햇볕으로 황태를 만들다"며 대관령 횡계리 황태가 으뜸이라고 자랑한다.

 대관령 황태영농조합 대표인 이씨는 횡계 읍내에 황태 건어물상과 농특산물 판매장을 갖고 있다. '그곳에 가면'이란 간판을 내건 황태전문 식당도 운영한다. 황태불고기를 비롯해 구이ㆍ찜ㆍ식해ㆍ무침 등 담백하고 감칠맛나는 각종 황태 요리를 푸짐하게 내놓는다.

 이씨는 횡계본당(주임 고봉연 신부) 전 사목회장으로 본당에 없어서는 안될 일꾼이다. 그의 사업장 종업원 13명 가운데 8명이 본당 신자라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일한다.

 이씨는 "외지에서 교우들이 찾아오면 황태 몇 마리 더 얹어주는 인심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황태 건어물상: 033-335-4027

 

매운 바람 타고 꽃피는 봄 오면 '황태자'로...

 

◀ 1. 대관령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과 포근한 햇살에 속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명태들. 덕장에서 얼고 녹기를 수십차례 반복해야 황태로 변신할 수 있다.

◀ 2.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미각을 돋구는 황태 요리 상차림.

 

 

 으으~ 추워라.

 안녕하세요. 저는 북태평양 깊은 바다가 고향인 명태라고 합니다.

 이 엄동설한에 왜 입 쩍 벌리고 줄줄이 코 꿰 챈 떨고 있냐고요?

 제 꿈은 황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당의 아침 속풀이 해장국, 보기만 해도 군침도는 찜과 구이에 이 한몸 바치려고 합니다. 그 꿈을 이루려면 이곳 평창 횡계리 벌판에서 설한풍 맞아가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주문진항에서 이미 배를 열어 알은 명란젓 공장에, 창자는 창난젓 공장에 넘겨줬습니다. 그리고 깨끗이 몸을 씻은 뒤 트럭 타고 대관령을 넘어왔습니다. 옛날에는 덕장 옆 개울에서 얼음을 깨고 몸을 씻었는데 요즘은 하천오염 때문에 아예 목욕을 하고 고개를 넘어오지요.

 저는 덕(통나무)에 매달려 꽃피는 춘삼월까지 얼고 녹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콧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매서운 추위에 얼고, 포근한 한낮 햇살에 녹고, 대관령 타고 내려오는 청정한 봄바람을 쐐야 속살 노릇노릇한 황태가 됩니다. 쩍 벌린 입으로 눈이 들어올망정 눈도 적당이 맞아야 더 담백한 맛이 납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황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그물 타고 올라오자마자 냉동고에 들어가 '동태'된 녀석도 있고, 얼지 않아 몸값이 좀 비싼 '생태'도 있습니다. 또 바닷바람에 몸을 말린 친구는 '북어'라고 불립니다. 북어 막내동생은 술 안주용으로 인기 좋은 '노가리'죠.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라고 해서 사람들이 조림용으로 많이 찾습니다.

 덕에 매달려 하염없이 눈보라 맞는다고 모두 황태되는 것도 아닙니다.

 날이 너무 추워서 허옇게 된 친구는 '백태', 날이 너무 따뜻해서 거무스름하게 된 친구는 '먹태'입니다. 머리 다치고 등에 상처난 친구는 '파태'가 됩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통나무에서 떨어져 눈밭에 파뭍힌 친구는 '낙태'입니다.

 이 정도면 황태는 명태의 '황태자'라고 뽐내도 되겠죠. 그러니까 깊은 바다에서 헤엄치며 놀던 녀석이 하늘 항해 입 벌린 채 처량하게 매달려 있다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

 이곳 횡계리 주민들은 "황태덕장은 하느님과 동업해야 망하지 않는 사업"이라고 합니다. 덕장에 걸어놓고 나면 나머지는 하느님이 알맞은 기온과 바람과 햇볕을 내려주셔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황태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하늘이 내려준 맛'이라는 이유를 아시겠죠.

 저희는 속살만 제공하는 게 아닙니다. 고개 넘어 거진항이나 주문진항에 가보세요.

 아낙네들이 새벽 2시부터 할복장(割腹場)에 둘러앉아 저희들 배를 가르고 하루 3~4만원을 받아갑니다. 또 저희가 매달릴 덕을 설치하고, 저희를 그 위에 얹는 인부들도 하루 5만원 벌이는 합니다. 겨울이면 손이 노는 산골 주민들에게 하루 몇 만원 벌이가 얼마인데요. 그러니까 저희는 고용창출에도 한 몫 하는 겁니다.

 또 요즘은 도시 사람들이 저희를 구경하면서 겨울 정취를 느낍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진부령 아래 인제군 용대리와 이곳 횡계리가 대표적이죠. 눈덮인 첩첩산중에 줄지어 늘어선 덕장 풍경이 이채로운가 봅니다. 요즘 도시에서는 겨울 정취를 찾아볼 수 없잖아요.

 그런데 저도 하나 물어볼 게 있어요. 남자들이 "명태와 여자는 두들겨 패야 한다"고 얘기 하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죠? 저는 좀더 부드러운 속살을 내어드리기 위해 방망이로 두들겨 맞을 각오가 돼 있는 몸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여자는 왜 패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차라리 저를 한번 더 두들겨 패주십시오.

 남성 여러분, 부인에게 화풀이하지 마세요. 속상하면 퇴근 길에 술 한잔 걸치고 들어가세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제 친구 북어 해장국으로 속 풀고 기분좋게 출근하세요.

 저는 이 겨울 부지런히 얼고 녹고, 봄바람 많이 쐬어 황태가 될 것입니다. 껍질과 속살이 노르끼리한 최상품 황태가 되겠다는 꿈을 꼭 이룰 것입니다.

 눈덮인 저 산이 파릇파릇해지면 친구들과 트럭타고 서울 나들이 가겠습니다. 여러분 식탁으로 많이 초대해 주세요.

 여러분도 올 한해 주님 안에서 꿈 이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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