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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하)

by 세포네 2005. 6. 24.

◀ 1. 혜화동본당 신자들이 성당 오른편 로사리오 기도 길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2. 우리 어머니와 누이를 꼭 닮은 성모상(최종태씨 작품)은 절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3. 제대 왼편 감실은 최봉자 수녀가 디자인한 것으로, 중앙의 빨강색은 성체등 즉 성심(聖心)을 나타낸다.
4. 1968년 권순형 교수가 기능적인 면을 최대한 살려 제작한 소화성당 감실. 
5. 혜화동성당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작가 작품인 성당 내부 '십자가의 길'[ 14처 중 3-6처.

 


혜화동성당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들 가운데 103위 순교성인화나 유리그림, 도자벽화 등 덩치가 큰 대작들을 중심으로 둘러봤다. 이번에는 나머지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앞서 여러차례 강조한 대로 어느 작품 하나 걸작품 아닌 것이 없으니 정신을 바싹 차리는 것이 좋겠다.

우리 어머니와 누이를 꼭 닮은 성모상(최종태씨 작품)은 절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혜화동성당 현관 문을 열고 성전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부활성수대다. 이종상(요셉, 66, 서울대 명예교수) 화백이 1994년 제작한 성수대 위에 예수 부활상(임영선 교수 제작)을 얹은 합작품으로, 그리스도 성혈을 상징하는 암적색 화강석 성수대 위에 황동으로 주조된 상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관을 쓴 채 못자국이 선명한 두 손을 포개 얹고 있는 모습이다.

 못자국이 있는 두 손을 크게 강조한 것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이요, 몸 전체를 상하로 가늘게 과장한 것은 승천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자세히 보면 못자국이 많이 닳아 손등이 반들반들하다. 예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얹어 그리스도의 고통과 부활에 동참하고픈 수많은 신자들의 손길 때문이리라.

 5000원권 지폐에 나오는 율곡 이이 영정을 그린 화가로도 유명한 이종상 화백 작품은 또 있다. 교육관 지하 소화성당(소성당) 입구에 있는 성녀 소화데레사상(1993년)이다. 작가가 처음 이 상을 제작할 때는 아주 독창적 작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도중에 강한 계시를 받고 겸손되이 모든 것을 성령의 뜻에 맡긴 채 손만 도구로 삼아 제작에 임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 이름도 '성녀 소화데레사 성령상'으로 정했다.

 1958년 김세중 교수가 청녹색 대리석으로 제작한 제대는 당시 본당 사목회장이었던 장면 박사가 본당에 기증한 것이다. 제대의 청녹색과 조화를 이루며 경건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제대 십자가 역시 1958년 김세중씨성전 입구에 있는 부활성수대. 이종상 화백이 제작한 성수대 위에 예수 부활상(임영선 교수 제작)을 얹은 합작품이다. 작품. 제대 왼편 감실은 1993년 최봉자(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가 디자인한 것으로, 중앙의 빨간색은 성체등 즉 성심(聖心)을 나타낸다.

 성당 내부 '십자가의 길'은 혜화동성당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작가 작품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에 부임한 남편을 따라온 조각가 핸더슨 부인이 1960년께 장발 교수 자문을 받아 황동부조로 제작한 이 작품은 변형되고 과장된 인체 표현을 통해 극적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과감한 남성적 터치로 예술성을 한껏 살렸다는 평을 듣는다.

 성전 바깥으로 나와 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왼편에 서 있는 성모상은 참으로 푸근한 인상이다. 대다수 성모상이 얼굴 갸름한 서구 미인형이라면 혜화동성당 성모상은 둥글둥글한 아줌마형이라고나 할까. 평소 한국교회 성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이 성모상을 제작한 이가 누구인지를 알아맞추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바로 최종태(요셉, 72, 서울대 명예교수)씨다.

 성미술 토착화의 선구자인 최씨가 1996년 화강석으로 제작한 이 성모상은 철저히 한국 국적을 가진 성모상이다. 성모 마리아가 서양 사람이 아닐뿐 아니라 작가 자신이나 신자 모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엄마와 누이 같이 친근한 성모 마리아를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그래서 여느성모상들과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아늑한 느낌이 절로 드는 교육관 지하 소화성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감실은 권순형(프란치스코) 교수가 1968년 제작한 것으로, 원래 대성전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성체 안전을 위해 기능적 면을 최대한 살려 견고하게 제작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물고기 세 마리를 새겨넣음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전달하고 있다.

 혜화동성당은 최봉자 수녀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의 작품이 많다. 성당 외부 및 소화성당 십자가의 길(1992년)과 소화성당 십자고상과 성체등, 성당 마당 로사리오 기도(1994년) 등이 최 수녀의 손을 빌어 세상에 선보인 작품들이다.

 주옥같은 성미술 작품이 한데 모인 혜화동성당 바로 앞은 젊음과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다. 가톨릭을 대변하는 성미술과 혼을 빼듯 열정적인 신세대 문화의 진수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혜화동 일대가 서울 강북에서 사통팔달 안 뚫린 데가 없는 교통 중심지라는 것.

 혜화동본당 김철호 주임신부는 "혜화동성당은 가톨릭 신자는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아와(상) 제대 왼편 감실은 최봉자 수녀가 디자인한 것으로, 중앙의 빨강색은 성체등 즉 성심(聖心)을 나타낸다.
(중) 1968년 권순형 교수가 기능적인 면을 최대한 살려 제작한 소화성당 감실. 
(하) 혜화동성당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작가 작품인 성당 내부 '십자가의 길'[ 14처 중 3-6처. 평화를 맛보는 명동성당과 여러모로 비슷하다"며 "혜화동성당을 문화와 신앙의 요람으로 가꿔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명동성당을 찾는 이들 가운데 명동본당 신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혜화동성당에도 오며가며 들러 기도하고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들이 참 많습니다. 이들이 좀더 스스럼없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김 신부는 또 혜화동성당이 지니고 있는 성미술품들을 널리 알리는 노력과 함께 젊은이들의 문화 공간과 함께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도 좀더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성당 마당을 공연장으로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게 김 신부 생각이다.

 서울에 사는 이라면 일년에 한두번쯤은 대학로에 갈 일이 있기 마련이다. 시끄럽고 번잡한 대학로에서 볼 일을 마쳤다면 머리도 식힐 겸 발걸음을 혜화동 로터리쪽으로 돌려 혜화동성당을 찾아가보자. 대학로에서 가까운 곳에 그토록 다른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성미술 걸작들을 감상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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