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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

[수원교구] 평택 성당

by 세포네 2005. 6. 21.

◀ 1. 평택성당은 나무가 반이라고 할 정도로 조경이 잘돼있다      
2.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평택본당 몰리마르 초대 주임신부 묘역. 그 주위로 14처 동판 부조와 십자가 예수가 기도를 돕는다
3. 성당 마당 나무 그늘에서 신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울창한 숲속 그림 같은 신앙정원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26일 밤, 대전 목동 프란치스코 수도원 건물 뒷산 기슭.
지옥이었다. 처절한 비명소리, 살려달라는 애원들…. 몰리마르 신부(Molimard, 한국명 모요셉, 파리외방전교회)는 그 가운데 서 있었다. 북한군이 신앙을 버리라고 말했지만 몰리마르 신부는 단호했다.

죽음은 이미 각오한 바다. 나이 53세. 프랑스에서 한국에 온 지 이미 25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국 신자들과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비명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이미 많은 숫자가 죽어 넘어 갔음을 알 수 있었다.

차마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몰리마르 신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평택본당 70년사 참조).
 
경기도 평택시 비전1동 626-31, 수원교구 평택성당에서 몰리마르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평안하십니까." 기도가 절로 나왔다. 몰리마르 신부 유해는 순교 직후 대전 프란치스코 수도원 묘지에 안장됐다가,

1960년 대전교구 천주교 공원묘원에 옮겨졌으며 지난해 5월 평택성당 내에 안장됐다.

"얼마나 두려우셨습니까.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처럼 얼마나 많이 하느님을 찾으셨습니까. 이젠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하느님 곁에서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즐겁게 웃으십시오. 당신께서 뿌리신 씨앗이 이렇게 큰 나무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1928년 4월14일. 손가락을 꼽아보니 설립 76주년이다. 그 평택본당의 맨 처음에 몰리마르 신부가 있다. 1897년 프랑스에서 출생한 몰리마르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를 졸업, 사제서품을 받은 후 1925년 낮선 이국땅 한국땅을 밟았고, 1928년 당시로선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험지(險地)'였다는 평택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후 몰리마르 신부는 20년 동안 평택본당 주임으로 재직하며 평택 지역 선교의 발판을 놓았다. 복사도 두지 않을 정도로 검약한 생활을 실천했으며, 기도와 영성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신 분으로 본당 70년사는 기록하고 있다.

몰리마르 신부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현재로 돌아왔다. 눈 앞에 푸르름이 펼쳐지고 있었다. 2583평. 76년간 이름모를 신앙인들이 가꾸었다. 성당 마당 돌 하나, 나무 한 그루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조영오 신부는 "비록 몰리마르 신부님이 지으신 초기 성당 건물은 이미 재건축으로 사라졌지만 성당 구석구석에서 몰리마르 신부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팽택성당은 건물 반 나무 반이다. 모두 몰리마르 신부의 손을 거친 생명들일 게다. 아름드리 나무와 묘목이 잘 조화 이룬 그 사이사이 공간에 대성전, 몰리마르 신부 묘지, 14처 동판 부조가 있는 골고타 언덕, 성모동산, 예수 성심상, 대강당, 교육관, 진복8단 휴식공간, 유치원 등이 짜임새있게 들어서 있다.

공기도 도시 공기가 아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내뿜어내는 향내에 가슴이 '찌르르'했다. 귀도 행복했다. 성당 구내 곳곳에 설치한 스피커에선 잔잔한 성가가 베이스, 바순, 바이올린, 첼로의 편안한 화음에 실려 흐르고 있었다.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서울 경기 지역에서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 이런 그림같은 신앙 휴식처, 신앙 정원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설까. 최근 몰리마르 신부를 추모하고, 또 휴식도 취하려는 타 지역 신자들의 방문이 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본당은 친절이 자랑입니다. 순박하고 마음 맑은 신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가 바로 평택본당입니다. 아마 오시면 내 본당, 내 성당 같은 친근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임신부는 본당 자랑이 대단했다. 그만큼 본당 신자들을 사랑하는 표현일 게다.

맑은 공기, 눈부신 녹색, 아름다운 성가, 좋은 사람들…. 아무리 세상에 찌들고, 상처받은 이라도, 평택성당을 찾으면 저절로 '어린 왕자'가 될 듯 싶었다.

성전 종탑 외벽에 조형된 성모승천 부조에 한참을 눈길 주다가 발길을 돌렸다. 몰리마르 신부를 다시 찾았다. 휴게실에서 책을 읽던 이름모를 신자,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 교재를 준비하던 교리교사들, 레지오 마리애 회합을 마치고도 미련이 남아 집에 가지 않고 성당 마당 의자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던 주부들, 이것 저것 자료를 달라는 구잘스런 부탁에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웃음으로 응해준 사무장님…. 짧은 인연들을 일일이 기억했다. 그리고 "너무나 편안하고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몰리마르 신부에게 감사했다.

평택역까진 성당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평택본당은 그래서 찻길보단 기찻길이 더 편안하다. 평택역에서 서울역까진 무궁화호로 '천천히'가도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발걸음을 빨리 하지 않아도 됐다. 모처럼 가진 기차여행의 행복. 가능한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성당 정원에서 성당 입구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성당을 방문할 땐 계단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여유 가득한 마음으로 계단을 세며 내려갔다. 의외였다. 33개였다.

(찾아오는 방법)
#경부고속도로 이용시= 경부고속도로 안성인터체인지에서 나와서 평택대 방향으로 약 1.5㎞ 진행, 우측으로 평택대학교 지나서 계속 직진. 평택 시내 진입.
 
#서해안고속도로 이용시=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인터체인지(안중)에서 나와서 평택 안성 방향으로 약 32㎞진행. 평택 시내 진입

#철도 이용시= 평택역 하차. 경찰서 방향으로 도보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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