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혜화동성당 오른쪽 벽에 걸려 있는 103위 순교 성인화. 문학진 화백이 1977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김대건 신부가 아닌 외국인이 가운데 서 있을 뻔한 사연을 안고 있는 작품이다.
2. 김세중 교수 작품인 성 베네딕도상. 성당터는 원래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자리였다.
3. 성당 오른쪽 창에 있는 성부(왼쪽부터)·성자·성령 유리그림. 엷고 단순한 색으로 제작된 유리그림은 굴절이나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빛의 효과를 한층 잘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4. 권순형 교수가 1979년에 제작한 제대 도자벽화. 성사(신비)를 주제로 하는 이 작품에서 황갈색은 풍요로운 밀밭을, 청록색은 심오한 우주 자체와 함께 주님의 포도밭을 상징한다.
하느님 숨결 녹아있는 가톨릭 미술의 '보고’
혜화동성당 터에 원래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힌트. 그렇다면 정답은? 짐작한 대로 '베네딕도'성인이다. 혜화동본당은 성당 정면 '최후의 심판도' 바로 왼쪽에 성 베네딕도상을 새겨 이를 기리고 있다. 1961년 김세중(프란치스코) 교수가 제작한 이 작품은 서방 수도생활의 스승으로 불리는 성 베네딕도(480?∼550?)를 단순하고도 기하학적 터치로 표현한 화강석 부조로, 성인이 들고 있는 지팡이와 책은 각각 착한 목자와 하느님 말씀을 상징한다.
성당 밖에서 최후의 심판도와 베네딕도상 부조를 감상했다면 실내를 둘러볼 차례다. 성전에 있는 미술품 치고 대가들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명실공히 가톨릭 미술의 보고(寶庫)라고 불리는 혜화동성당. 예술작품에 관한 전문적 식견이 없더라도 경건한 마음가짐과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작품 하나하나를 음미한다면 작가의 손을 빌려 드러난 하느님의 숨결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 200년 역사를 통틀어 대표적 성화 하나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바로 '103위 순교 성인화'(1977년, 285×330㎝)다.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103위 성인 시성식을 계기로 한국교회 공식 성인화가 되다시피한 이 그림이 걸려있는 곳은 혜화동성당 제대 앞 오른쪽 벽면이다.
1976년 박희봉 혜화동본당 주임신부로부터 '103위 순교복자성화'를 의뢰받은 문학진(토마스, 1924년∼) 화백은 10개월 동안 전례·역사·복식 전문가들에게서 자문을 얻고 한국적 주체성을 살려 103위 한분한분 표정을 특색있게 그려냈다. 시대와 신분이 각기 다른 순교자들이 기쁨에 가득찬 모습으로 천국 개선을 기다리는 이 그림은 보는 이에게 푸근한 감동과 평화를 안겨준다. 서울 도봉산의 아름다운 산세가 배경이 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이 처음 구상될 때는 명동대성당에 있는 '79위 복자(福者) 성화'와 같이 앵베르 주교를 중심으로 순교복자들이 좌우 대칭으로 호위하고 있는 구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문 화백은 "외국인이 중앙에 있으면 주체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박갑성 교수(문 화백 대부) 지적을 받아들여 원래 외국인 자리였던 가운데에 김대건 신부를 모시고 김대건 신부 자리에 외국인을 옮겨놓았다. 당시 '쿠데타'라고까지 표현된 이 사건은 한국교회 성미술이 토착화 단계에 접어든 것을 상징하는 큰 결실이었다.
혜화동성당 유리그림(스테인드글라스) 29점은 모두 이남규(루가, 1931∼1993년) 교수 작품이다. 1980년 1차로 오른쪽 창에 제작된 유리그림 4점은 각각'나는 길, 진리, 생명이다(332×518cm)''성부''성자''성령'(각 270×230cm)을 주제로 하며, 3cm 두께의 두꺼운 유리를 사용한 달 드 베르(Dalle de verre) 방법으로 제작돼 굴절이나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빛의 효과를 한층 잘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1980년 5월4일자 혜화동본당 주보에서 이 작품들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로부터 성부는 둥근 원으로 상징되었는데, 원 속에 파랑·노랑·빨강 삼원색을 배치했다. 이 삼색이 늘 움직이는 생동감을 갖게 함으로써 우주창조의 신비를 나타내려고 했다. 성자는 십자가와 가시관의 고통, 그리고 승리의 월계수로 되어 있다. 성령은 비둘기와 주변의 빛으로 구성했다. 성부·성자·성령은 특별히 성당 내 밝기와 순교자 성화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엷고 단순한 색으로 작업했으며, 가능한 한 강한 색의 효과를 피하였다…."
왼쪽 창과 좌우측 상단 조그만 창 유리그림 작업은 1989년부터 91년까지 진행됐다. 이 유리그림들은 성 베네딕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성녀 소화 데레사, 천지창조 등 매우 다양한 주제로 이뤄져 있다. 혜화동성당 유리그림은 천지창조에서 성령강림에 이르는 구세사를 일정한 선의 흐름과 색조의 조화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성당 전체에 해맑은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평가다. "예술가의 최종 목적은 신이 부여한 자신의 내면적 생명을 드러내는 일이다'라는 작가의 예술관을 온전히 맛볼 수 있는 걸작이 아닐 수 없다.
제대 정면을 바라보면 십자고상과 함께 좀처럼 그 뜻을 짐작하기 힘든 울긋불긋한 그림이 제대 벽면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냥 그림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조각(25×25㎝)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큰 그림을 이룬 도자 벽화임을 알 수 있는데, 작가는 국내 최정상급 도예가인 권순형(프란치스코, 1929년∼) 교수다. 권 교수는 1979년 도자 벽화를 제작하면서 가식적 손질이나 덧붙임 없이 아주 단순하게 처음에 구상한 그대로를 도판에 표현했다고 한다. 5개월에 걸친 각고의 작업 끝에 탄생한 벽화의 주제는 '성사'(또는 신비)로, 우주의 신비에서 시작해 성사생활을 통한 신앙의 성장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벽화에서 황갈색은 풍요로운 밀밭을, 청록색은 심오한 우주 자체와 함께 주님 포도밭을 상징하고 있다. 또 빛의 원천인 야훼 하느님을 상징하는 둥근 태양(원)은 작품의 생명이자 정점이다. 이 벽화는 보는 이가 묵상하는 가운데 그 뜻을 깨닫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기도하는 성전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뒀다. 아울러 이 작품은 성전 오른편에서만 자연 채광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 벽면 전체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간 돌려놓고, 색깔을 내는 데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등 단순한 평면작업이 아니라 포괄적 공간예술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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