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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교향곡 100선

교향곡 100선 [85] 하이든 / 교향곡 88번

by 세포네 202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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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mphony No.88 in G major
 
           하이든 / 교향곡 88번 
              Franz Joseph Haydn 1732 - 1809 




하이든의 교향곡 88번은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 전 12곡과 더불어 하이든의 교향곡 중 오늘날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생기발랄한 주제와 참신한 유머 감각, 그리고 특히 독창적인 2악장은 현대인들에게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하이든은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이 교향곡을 완성한 후 악보 출판 문제로 골치를 썩기도 했다.

하이든의 작품이라고 속여 판 사건
교향곡 88번과 89번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상인인 요한 토스트의 의뢰로 작곡된 교향곡이다. 토스트는 하이든이 악장으로 있던 에스테르하지 궁정악단의 제2바이올린 수석주자 출신으로 하이든이 교향곡 88번을 완성한 이듬해인 1788년에 파리로 건너가 비즈니스맨으로서 그 자신의 야망을 펼치고자 했다. 당시 토스트는 하이든의 교향곡 88번과 89번의 악보를 들고 빈의 음악출판사 아르타리아와 파리의 출판업자 장 조르주 지버와 접촉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토스트의 일처리는 미심쩍은 데가 많았다. 토스트는 하이든의 교향곡 2곡뿐 아니라 현악 4중주 Op.54와 Op.55도 함께 가지고 당대의 유명 음악출판사로 갔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직 작품료를 받지 못한 하이든은 토스트가 이미 아르타리아 출판사에 하이든의 악보를 판매했다는 풍문을 듣자 초조해졌다. 참다못한 그는 1788년 9월 22일에 아르타리아 출판사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띄웠다. “며칠 전 친애하는 귀하께서 토스트 씨로부터 저의 새로운 현악 4중주 6곡과 2곡의 교향곡을 구입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로 저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부디 제게 소식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하이든은 또 토스트가 프랑스의 출판업자인 지버에게 그의 소나타 6곡과 4곡의 교향곡을 넘겼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1789년 4월 5일자 편지에 지버에게 “토스트 씨는 6곡의 소나타를 비롯한 작품들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토스트에게는 “당신은 내게 300굴덴을 빚지고 있소.”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상하게도 토스트가 지버에게 판매한 하이든의 교향곡은 2곡이 아닌 4곡인데, 이는 그가 아달베르트 귀로베츠의 교향곡을 하이든의 작품이라 속여 팔았기 때문이다. 토스트의 놀라운 행적에도 불구하고 하이든은 토스트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에게 새로운 현악 4중주 Op.64의 6곡을 헌정했다. 아마도 토스트가 하이든의 후원자 중 한 명이자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가정부인 마리아 안나 드 옐리세크와 결혼한 까닭도 있는 듯하다. 아무튼 1789년 하이든을 골치 아프게 했던 ‘토스트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고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교향곡 88번은 오늘날 하이든의 교향곡 가운데 매우 인기 있는 작품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느린악장에 트럼펫과 팀파니를 사용한 파격
영국에서는 한동안 하이든의 교향곡 88번을 ‘Letter V’라 불렀다. 이는 19세기에 하이든의 많은 교향곡들이 런던의 왕립 필하모닉 협회의 카탈로그에 있던 문자로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Letter V’라는 타이틀은 이 교향곡의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하며 독창적인 성격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하이든은 이 교향곡에 1대의 플루트, 2대의 오보에, 2대의 바순, 2대의 호른, 현악합주 외에 트럼펫 2대와 팀파니를 더 편성했는데, 그가 이 교향곡에 사용한 악기들 중 트럼펫과 팀파니의 용법은 주목할 만하다. 하이든은 놀랍게도 이 시끄러운 팡파르 악기들을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에 사용했다. 18세기 교향곡에서 느린 2악장에서 시끄러운 트럼펫과 팀파니가 사용된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하이든은 이런 관습을 깨고 과감하게 트럼펫과 팀파니를 느린악장에 사용해 매우 충격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1악장 아다지오 서주의 제스처는 매우 장엄하지만 악기 사용은 절제되어 있다. 보통 처음부터 강렬하게 등장하는 트럼펫과 팀파니는 1악장이 연주되는 동안 침묵한다. 아마도 화려하고 웅장한 도입에 익숙했던 당대 파리 청중이라면 트럼펫과 팀파니 주자가 한동안 잠잠한 것을 지켜보며 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이 연주를 하지 않는지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서정적인 2악장에서 갑자기 트럼펫과 팀파니가 폭발적인 연주로 쇼크를 주는 장면에선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하이든은 ‘놀람 교향곡’이라 불리는 교향곡을 작곡하기 이전에 이미 이와 같은 놀라운 교향곡을 작곡했던 것이다.
1악장의 느린 아다지오에 이어 빠른 알레그로의 주제는 시골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소박하지만 그것이 전개되는 방식은 매우 정교하고 지성적이다. 1악장 발전부에서 과감한 전조와 분위기 전환은 매우 인상적이며, 처음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는 재현부에선 현악의 소박한 주제에 플루트의 대주제(주제에 대하여 덧붙는 또 하나의 주제)가 덧붙여져 듣는 이들에게 기쁨을 준다.

2악장: 라르고
2악장의 느린 라르고는 마치 숭고한 찬송가와 같은 느낌이다. 첫 마디에서부터 독주 첼로와 독주 오보에가 옥타브 차이로 유려한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그 독창적인 악기 편성법은 특별히 돋보인다. 2악장은 하이든을 무척 존경했던 작곡가 브람스가 언젠가 이 음악을 듣고 “나의 교향곡이 이 악장과 같다면 참 좋겠다.”는 말을 남겨 더 유명해졌다.
하나의 멜로디가 새로운 멜로디를 이끌어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음악은 일종의 변주 형식을 취하며, 주제가 되풀이될 때마다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장식된다. 때때로 이 숭고한 노래가 트럼펫과 팀파니의 불협화음에 의해 방해를 받을 때마다 숭고한 노래와 갑작스런 충격이 하나의 음악 속에서 그토록 훌륭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3악장: 미뉴에트. 알레그레토
3악장 미뉴에트가 시작되면 3박자의 궁정무곡 선율은 돈 꾸밈음의 장식으로 다소 과장된 느낌을 전해준다. 중간 트리오 부분에선 비올라와 바순이 연주하는 음악이 마치 백파이프처럼 느껴져 인상적이다.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
4악장 피날레는 하이든이 작곡한 가장 생기 있고 즐거운 음악이다. 도입부의 주제는 하이든이 작곡한 선율 중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마치 즐거운 게임을 시작하듯 경쾌하게 시작된다. 4악장 중간 부분에 이 주제를 바탕으로 무거운 저음현악기들과 경쾌한 고음 현악기들이 서로를 모방하며 큰 소리로 캐논(canon, 한 성부가 다른 성부를 엄격히 모방하는 음악으로 일종의 ‘돌림노래’라 할 수 있다)을 연주하는 장면에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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