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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교향곡 100선

교향곡 100선 [86] 말러 / 교향곡 9번 라장조 이별과 죽음

by 세포네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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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mphony no.9 D major
           말러 / 교향곡 9번 라장조 이별과 죽음
           Gustav Mahler (1860-1911)




말러의 교향곡 9번은 죽음에 관한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필악보에 남아 있는 수수께끼 같은 메모 덕분이다. 1악장 267마디에는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O Jugendzeit! Entschwundene! O Liebe! Verwehte!)라는 글귀가 적혀 있고, 독주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나오는 434마디에는 ‘안녕! 안녕!’(Leb'wol! Leb' wol!)이라 적혀 있다. 이별을 암시하는 말러의 메모로 인해 후대의 여러 음악가들은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죽음의 교향곡’으로 해석했다. 음악학자 파울 베커는 “이 교향곡에 표제가 있다면 아마도 ‘죽음이 내게 말하는 것’이 될 것”이라 말했으며,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이별(Der Abschied)이야말로 9번 교향곡의 제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열광적인 말러 팬이었던 윌리엄 리터는 이 교향곡의 의미를 ‘죽음과 정화’로 해석하면서 “이 작품에서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완벽한 표현과 그 감미로움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완벽한 표현과 그 감미로움
실제로 말러가 그의 교향곡 9번의 작곡에 착수한 1909년 당시 그는 심각한 심장병으로 고통 받으며 그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당시의 말러는 베토벤과 브루크너, 드보르자크 등, 몇몇 위대한 작곡가들이 9번째 교향곡을 작곡한 후 세상을 떠난 것을 의식하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던 것 같다. 그는 앞서 작곡한 교향곡에 9번이란 번호를 붙이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는 타이틀로 대신해 ‘9’라는 불길한 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교향곡 작곡에 착수하면서 그는 이 불길한 숫자를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예감은 말러의 교향곡 9번 곳곳에 배어 있다. 1악장에는 죽음에 대한 체념과 이별의 느낌을 암시하는 제1주제와 죽음에 대한 필사의 저항을 담은 제2주제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한 부정맥을 나타내는 독특한 리듬 형이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강렬하게 연주되며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2악장에선 저승사자의 깡깡이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3악장에는 삶을 조롱하듯 난폭한 푸가가 펼쳐진다. 4악장은 느린 아다지오의 찬송가 풍의 숭고한 음악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마치 죽어가듯 사라져간다. 이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의 서서히 꺼져가는 종결부와 매우 유사하다.

이렇듯 말러의 교향곡 9번은 몰락과 죽음의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 작품을 새롭게 보는 이들도 있다. 음악학자 피터 브라운은 교향곡 9번의 메모에 나타난 ‘이별’은 ‘젊음과의 이별’이지 ‘삶과의 이별’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키며 교향곡 1번 ‘거인’과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장 파울의 소설을 바탕으로 작곡된 교향곡 1번에는 젊은 날을 그린 활기찬 팡파르와 장례식 음악이 나타나는데, 이는 교향곡 9번 1악장과 유사하다. 또한 음악학자 스폰호이어는 말러의 교향곡 9번의 의미를 지나치게 죽음과 이별 쪽으로 몰고 가는 식의 해석은 ‘애매한 죽음의 신비주의’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하찮은 형이상학’이라 비판하면서 이 교향곡이 “이별과 슬픔의 분위기가 깔려 있는 작품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거대하고 구조적이며 건축적인 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신음악의 첫 장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지나치게 죽음과 관련시킨 기존의 해석 때문에 이 교향곡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음악인지 간과하기 쉽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은 ‘전통적인 교향곡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별은 교향곡이라는 장르 자체를 해체하거나 기존 조성 체계를 붕괴시킬 정도의 완전한 결별은 아니지만 말러의 교향곡 9번에서 우리는 기존의 교향곡 형식과 기법들이 서서히 부패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악장. 안단테 코모도 Andante comodo
필자로서는 말러의 9번 교향곡이 가지고 있는 많은 점들 중에서 가장 지적하고 싶은 것이 바로 곡을 여는 동기이다. 간단히 9번 교향곡은 '대지의 노래'가 끝난 바로 그 곳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지의 노래'를 끝맺는 바로 그 동기, 봄의 아지랑이와도 같은 나른함과 절의 풍경(風磬)과도 같은 내세적인 느낌을 주는 첼레스타의 살랑거림을 배경으로 위로하듯이 이어지는 그 동기, 해결음이 없는 두 음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ewig' 동기는, 비올라의 부드러운 웅얼거림을 배경으로 제2바이올린에서 등장하는, 우아한 슬픔을 가진 9번 교향곡의 첫 주제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이 'ewig' 동기와 함께, 곡을 여는 첼로의 붙점 리듬(윌리암 리터가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라고 표현한), 비올라의 웅얼거림이라고 표현한 '상승 단 3도-하강 장 2도' 동기는 1악장 전체를 지배한다. 왜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마친 바로 그 곳에서 교향곡 9번을 시작하고 있는지에 대해 작곡가 스스로의 설명을 찾을 수 없는 지금 그 이유를 제시한다고 해도 단지 추측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이 동기가 나타내는 것이 이별이라는 추측은 아주 설득력 없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못갖춤음의 동기는 '대지의 노래'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말러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6번 op. 81a '이별'이 1악장 '이별'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말러식 소나타 형식이다. 두 주제가 제시부를 구성하고 제2주제는 같은 으뜸을 단조로 등장한다. 말러는 이 두 주제와 함께 제시부의 종결부도 발전부에서 다루고 잇는데(이는 브람스가 자주 사용한 수법이기도 하다), 사실 종결 주제는 부분적으로 제2주제와 같은 소재를 이용한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장례 행진은 발전부의 마지막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팀파니가 '3도' 동기를 변형해 느린 장례 행진 분위기를 잡아가고 이를 배경으로 트럼펫의 기상나팔과 벨의 '3도' 동기가 울리는 듬 말러 특유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맛볼 수 잇다. 제현부는 '죽음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예의 붙점 리듬으로 시작하며 코다를 지나, 말러의 후기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인 '모렌도(점점 여리게)'로 끝난다.

2악장. 편안한 렌틀러 템포로, 조금 서두르고 매우 거칠게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Etwas täppisch und sehr derb
아도르노, 멩겔베르크 등을 포함해 여러 학자들이 이 악장을 일컬어 '죽음의 무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곡은 크게 세 가지 무곡 주제로 이루어졌는데, 첫 부분의 편안한 렌틀러(템포 Ⅰ), 거친 왈츠(템포 Ⅱ), 그리고 느린 렌틀러(템포 Ⅲ)이다. 이 세 무곡은 번갈아 가며 등장하고, 중간에는 왈츠 주제에 두 렌틀러 주제가 조금씩 섞여 나오기도 한다. 전체를 보면 '서투르고 거칠게'라는 지시로 시작되어 여러 무곡들을 거친 후에 매우 세심한 피아니시모로 종결되기 때문에, 브루노 발터는 이를 일컬어 '무도는 끝났다('잔치는 끝났다'이 말러 식?)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3악장. 론도-블를레스크(알레그로 아사이, 매우 완고하게) Rondo - Burleske. Allegro assai. Sehr tratzig
부를레스크는 '농담'을 일컫는 말이다. 장난스러운 음악을 얘기하지만 이 음악이 장르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형식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R. 쉬트라우스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크'가 가장 유명한 곡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말러의 부를레스크는 농담으로 들리기에는 너무 거칠고 그야말로 '완고'하며 무시무시하다. 또한 론도라고 붙어 있는 만큼 부를레스크 주제는 대주제 사이에 계속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중간에서 만나는 것은 세 번의 푸가토이다. 이들은 독립된 푸가 주제를 가진 것은 아니고 부를레스크 주제를 이용해 구성한 것이다. 대위 주제와 푸가 주제가 동시에 등장하다 보니 아마 이 부분만 듣는다면 무엇이 푸가 주제인지 혼동되어 3주제 푸가로 간주할 수도 잇을 것이다. 정교하지만 복잡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고, 특히 주제가 퉁명스러운 점 때문에 R. 쉬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 등장하는 푸가가 연상되기도 한다. 정신 없이 치고 빠지는 이 악장의 중간에는 4악장을 예고하는 고요한 부분이 놓여 있어 잠시 숨을 돌릴 수도 있다.

4악장. 아다지오 Adagio. Sehr langsam und naco zurückhaltend
웅변적인 이별을 다루고 잇는 이 악장은 대조된 두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주제가 소나타 형식처럼 발전하고 재현된다기보다는 모습을 조금씩 바꾸면서 번갈아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일일 듯 한데, 이런 형식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두 주제의 변주 형태로 쓰여진 4변 교향곡과 6번 교향곡의 느린 악장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중간에는 웅변적인 클라이맥스가 놓여있고 그 후에는 점차 규모가 줄어들며 실내악 형태의 현악 합주로만 끝난다. 역시 모랜도이다. 이 초월적이고 명상적인 마지막 부분에 대해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세상 구경을 다한 말러가 내려와 날개를 접는 것'이라는 묘사를 하기도 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예민한 몇 학자들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네 번째 곡이 숨어 잇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1바이올린은 다음 가사 부분을 조용히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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