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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임금 벨사차르의 운명

by 세포네 2016. 8. 7.


렘브란트, <벨사차르의 향연>, 1635, 캔버스에 유채, 167x209cm, 런던 국립 박물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인간의 내면적 심리를 자신의 회화에서 생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인간이 겪게 되는 갈등과 번뇌, 사색과 신앙심 등을 주로 표현했다. 그는 성경의 말씀을 한갓 그림의 소재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묵상을 통하여 말씀의 깊이를 헤아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성경 속으로 삽입시켰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멸망을 그린〈벨사차르의 향연>에서 렘브란트는 향락을 일삼는 벨사차르 왕에게 갑자기 불어 닥친 놀라운 광경 앞에서 왕과 주변 사람들의 내면적인 심리 상태를 표현했다.

 벨사차르 왕은 ‘바빌로니아 유수’의 주인공인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벨사차르는 지혜롭지도 않았으며 사치와 향락적 생활에 젖어 있었고, 하느님을 모독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벨사차르는 연회를 열면서 술기운이 퍼지자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들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고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 그릇에다 포도주를 따라 연신 퍼마셨다. 또한 그림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벨사차르는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자행했다. 그런데 갑자기 빛과 함께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어두운 벽에 불이 켜진 것처럼 글씨가 새겨졌다. 한창 취기가 오른 임금이었지만, 글자를 쓰는 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순간 향락의 웃음은 두려움과 공포로 바뀐다. 왼쪽에 노인과 여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고, 오른쪽에 술 시중을 들던 여자는 술을 따르려고 하다가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지면서 술병을 떨어뜨리기 직전이다.
 
 렘브란트는 광선(光線)의 화가답게 강한 빛과 어둠의 표현으로 주제의 의미를 한층 부각시키면서 순간적으로 느낀 인물들의 급격한 공포를 표현하고 있다. 왕권의 위력, 영광과 영화를 누리고 있는 벨사차르지만, 그는 상서롭지 못한 광경을 보고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칠”(다니 5,6)정도로 두려운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의 머리에 쓴 반짝이는 왕관과 터번, 화려한 망토에 몸을 치장한 보석들, 가슴에 달고 있는 황금 목걸이는 분명히 벨사차르의 높은 지위를 나타낸다. 그러나 임금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일이 무엇인지 다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지 않고, 향락적 생활과 하느님을 모독하는 데 지위를 사용한다. 그러기에 임금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신 하느님은 손을 보내셔서 임금 벨사차르의 운명을 예고하신다.

 벽에 새겨진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이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이고, ‘트켈’은 임금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이다. ‘프레스’는 임금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내용이다. 결국, 자만심에 빠져 하느님을 모독한 무능력한 임금 벨사차르는 그날 밤 살해당하고, 완전히 멸망한다. 하느님께서는 왕으로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간의 종말과 그가 지배하던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신 것이다.


“그대가 주님 안에서 받은 직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십시오.”(콜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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