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티스티 비카르, <나인 과부 아들의 소생>, 1806-1816, 캔버스 위에 유채, 125x81cm, 산 루카 아카데미아, 로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중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이야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죽은 자를 세 번 살리셨다. 첫 번째는 지금 보는 ‘나인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일’이고, 두 번째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이며, 세 번째는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라자로를 살리신 일’이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장 바티스티 비카르(Jean Baptiste Wicar, 1762-1834)는 나자렛의 작은 마을인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신 예수님의 기적 사건을 견고하고 엄중한 표현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 대장의 종을 고쳐주시고 제자들, 군중과 함께 나인으로 들어가시려던 중, 그 고을 입구에서 어떤 과부의 외아들 장례식을 목격했다. 커다란 화면 뒤에는 나인 고을의 모습이 멀리 보이고 성벽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예수님은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몹시 가엾이 여기셨다. 남편을 잃고 사랑하는 아들마저 곁을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슬픈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딱한 처지에 있는 그 여자를 외면하지 않으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가서 관에 손을 대신다. 율법에 의하면 죽은 자의 관에 손이 닿는 것은 죽음이 곧 죄의 결과로 여겨졌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관에 손을 대셨다. 이것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율법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이다.
애도하던 고을 사람들과 군중,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행동과 태도를 보고 궁금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을 본 사람들은 오래전에 실제로 부활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예수님께서 과연 그런 일도 하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른쪽에 붉은 옷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과부의 아들을 가리키며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죽은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강렬한 시선을 통해 이 말씀이 생명의 힘을 지녔음을 느낄 수 있다. 유한한 생명이 무한한 생명으로 전환되는 극적인 순간이다.
죽었던 젊은이는 몸을 감쌌던 세마포를 힘차게 걷어내며 일어나 앉아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떠져 있고, 입술은 조금 벌어져 있다. 죽었던 사람이 건장한 신체를 드러내며 새로운 숨을 쉬며 서서히 생명의 기운이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다. 예수님과 다시 살아난 과부 아들의 모습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 가운데, 하느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이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죽음을 이기시는 분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는 초자연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느님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은 몹시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표정과 행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은 젊은이가 실제로 살아난 것을 보고서 생명을 주시는 분인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과연 그 큰 죽음의 위험에서 우리를 구해 주셨고
앞으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께서 또다시 구해 주시리라고 희망합니다.”(2코린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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