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세례자의 설교>, 13세기 중반, 프레스코, 파르마 세례당 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있는 도시인 파르마의 대성당과 세례당은 12세기에 지어진 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파르마의 세례당은 성당과 분리되어 있다. 중세 사람들은 성당을 하느님의 집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성당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성당 바로 옆 세례당에서 세례예식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후에야 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따라서 세례당의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였다.
파르마의 팔각형 모양의 세례당 내부는 13세기 중반에 프레스코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문맹자가 많았던 중세 시대에는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미술작품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6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글이 읽을 수 있는 자들을 위해 있는 것처럼 그림은 글을 읽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며, 아무리 무식한 자일지라도 그림을 보기만 하면 그들이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가시적 형상을 통해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앙을 가르치고 기도를 격려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에서 세례당 내부 돔 전체에도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야기가 서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돔은 총 6단으로 나누어져 위에서부터 두 단은 천상을, 세 번째는 사도들과 복음 사가들을, 네 번째는 예언자들을, 다섯 번째는 요한 세례자의 생애가, 마지막 여섯 번째는 아브라함의 생애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림은 요한 세례자가 설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아래에는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 있을 때 세 사람이 출현한 장면이 있고, 위를 보면 모세의 모습이 묘사된 장면 사이에 위치한다. 그림 오른쪽에 요한 세례자는 짐승 가죽옷을 걸치고 설교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마태 17, 11)라는 말씀처럼 요한은 새로운 엘리야의 의미로 나타난다. 그의 왼손에는 말씀이 적힌 붉은 색 두루마리가 들려 있다. 붉은색은 엘리야의 말씀 속의 불과 같다. 카르멜산에서 엘리야가 기도로 불을 명하였을 때 하늘에서 주님의 불이 내려왔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림에서도 요한의 뒤에는 산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의 오른손은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고 있는 듯한 두 사람에게 설교하는 동작이다. 두 사람의 표정은 혹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배경을 보면 요한 쪽으로는 세 그루의 나무가 생생하게 서 있는 반면 두 사람 쪽으로는 나무가 어두운 갈색으로 이미 죽어버린 상태이다. 요한과 두 사람 사이에는 십자형을 한 싱싱한 나무가 서 있다. 그 옆에는 도끼가 희미한 형태로 남아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루카 3, 9) 이미 열매 맺지 못한 나무는 도끼에 찍혀 버려지고 새 나무가 자란 것이다.
그리고 요한의 뒤에는 싹이 트여 잘 정돈되어 자라고 있는 밀이 보인다. 장차 이곳에서 나온 좋은 열매의 알곡은 곳간에 들이게 될 것이다. 그림 아래 새겨진 말씀처럼 요한 세례자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Vox clamantis en deserto)”로 오래된 나무는 이미 잘려나가 새로운 나무로 태어난다. 요한 세례자는 ‘새싹’이다.
“내가 나의 종 ‘새싹’을 데려오려고 한다.” (즈카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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