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 <율법학자들 가운데 선 예수> (65×80㎝, 1506년,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마드리드
요셉과 마리아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자 12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으나 아들을 잃어버리고 사흘 뒤 성전에서 찾는다. 성전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림은 온통 사람들로 빽빽하다. 뒤러(1471~1528)는 성전에서 어린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 열띤 논쟁을 펼치는 모습을 원근법적 공간 개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물 흉부의 인상과 동작에만 초점을 맞춰 표현한다. 인물의 성격과 감정은 얼굴 묘사와 손동작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그림 중앙에 위치한 건강하게 윤기 흐르는 모발을 가진 12살 소년 예수님은 마치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선생님처럼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자기 생각을 풀어놓는다. 예수님의 슬기로움에 율법학자들은 놀라움과 호기심을 보인다.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있는 율법학자들은 쭈글쭈글하고 주름진 피부의 기이한 얼굴로 표현되어 혼란스럽고 날카로운 인상이다. 율법학자들의 얼굴은 활기찬 모습에서 무기력함과 우울함, 날카로움까지 각양각색이다.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는 율법학자는 젊고 깨끗한 예수님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튀어나온 턱과 두꺼운 입술, 깊게 팬 주름투성이로 세상의 온갖 때에 찌든 모습이다. 그는 소년 예수님의 말이 한낱 어린아이의 말에 불과하다는 듯 오히려 예수님에게 무엇인가 말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손과 마주한 그의 손동작은 예수님의 지혜로움 때문인지 불안해 보인다.
이와 달리 다른 율법학자들은 소년 예수님의 말에 감탄하며 경청하거나 그 말이 옳은지를 확인하려 한다. 왼쪽 아래의 율법학자는 책을 완전히 덮고 예수님의 말만 경청한다. 성경 구절이 적힌 종이를 머리에 붙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율법대로 살아가는 경건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권위를 가질 법한 위치의 이 율법학자는 소년 예수님의 말에 푹 젖어 눈을 떼지 못한다. 소년 예수님 역시 맑고 티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말을 듣는 율법학자와 시선을 마주하며 교감한다. 오른쪽 아래의 길고 흰 수염을 가진 노장의 율법학자는 성경을 펼쳐 들고 예수님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맞은편 동료에게 눈길을 비춘다. 그의 얼굴에서는 내성적이며 우울한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이 율법학자의 우울한 빛과는 달리 왼쪽 위의 율법학자는 젊고 날카로운 눈으로 성경을 뒤적이며 소년 예수님의 말을 확인한다. 오른쪽과 왼쪽 구석에 있는 두 인물은 두려움과 경계의 눈빛을 띨 뿐 무관심한 표정이다.
또한, 그림 속의 손동작은 어느 한 손도 움직임이 헛되지 않으며, 등장인물의 마음 상태를 명확히 드러낸다. 제각기 다른 표정과 손동작이지만 그들의 일치점은 인생 경험을 나타내는 손마디이며 성경 내용과 성전의 신성한 공간을 신뢰하는 손이다. 노장의 현인들은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루카 2, 47)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Didaskalis)은 새롭고 권위가 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표정과 동작을 취할 것인가?
‘“너희는 내 얼굴을 찾아라.”하신 당신을 제가 생각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 (시편 2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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