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카타콤바' 죽림굴을 아시나요
▲ 38선 도보순례 참가자들이 이광재 신부가 걸었던 길을 순례하고 있다. |
지난해 9월 발간된 전국 성지 안내 소책자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를 들고 전국 111개 성지를 모두 순례한 신자 수가 1년 만에 30명을 넘어섰다.
이들 순례자들이 본지 인터뷰에서 입을 맞춘 듯이 한 이야기가 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이렇게 아름다운 성지가 많은 줄 몰랐다"는 말이다. 순례자들은 "아름다운 성지가 정말 많은데 신자들이 널리 알려진 유명 성지만 반복해서 찾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며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작은 성지'도 많이 순례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순교자성월을 맞아 전국 111개 성지를 모두 순례한 이들이 추천하는 '진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성지'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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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교구 첫 번째 본당이 설립됐던 명례성지는 성당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
▨ 마산교구 명례성지
지난해 9월부터 10개 월 동안 전국 모든 성지를 순례한 서울 구파발본당 연령회원들은 '마산교구의 요람' 명례성지를 추천했다.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 있는 명례성지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신석복(마르코, 1828~1866)이 태어난 곳이자 마산교구 첫 본당(1887년 설립)이 있었던 곳이다. 또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제품을 받은 강성삼(라우렌시오, 1866~1903) 신부 첫 임지이기도 하다.
낙동강변 언덕에 있는 명례성지는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으로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모여들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돼 대구감영에서 순교한 신석복은 눈을 감을 때까지 하느님을 굳게 믿었다. 대구감영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나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奉行)할 것"이라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순례자 신춘선(알렉스)씨는 "남녀 신자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따로 앉는 옛날식 성당 구조가 인상적이었다"며 "옛 신자들의 뜨거운 신심을 느낄 수 있는, 무척 아름다운 성지"라고 말했다.
본당 설립 당시 있었던 제대와 십자가, 성모상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성당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으면 120년이 넘는 명례공소 역사가 그대로 느껴진다고 한다.
신석복 순교자 묘소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에 있다. 순교자 묘소를 참배한 뒤 순교자가 체포된 장소로 알려진 한림면 가산리를 거쳐 명례성지까지 도보로 순례하는 것도 좋다.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2008년 명례성지조성위원회를 발족한 마산교구는 낡은 공소를 수리하고 인근 부지를 매입해 성역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의 : 055-39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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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본당은 한국전쟁 중 순교한 이광재 신부가 선종하기 전까지 사목했던 본당으로 '이광재 신부 기념관'이 있다. |
▨ 춘천교구 양양성당
전국 성지 111곳을 모두 순례한 첫 번째 완주자 김윤배(판크라시오, 대전교구 용화동본당)씨는 '영동지방 신앙의 모태' 양양성당을 첫 손에 꼽았다.
양양본당은 한국전쟁 중 순교한 이광재(티모테오, 1909~1950) 신부가 1939년부터 1950년 선종하기 전까지 사목했던 본당이다. 이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현재 성당이 있는 부지에 새 성당을 지었다. 이 신부는 걸어서 인제와 양구, 화천 등 강원도 일대 공소를 다니며 신자들을 돌봤다.
이 신부는 1948년 북한 공산정권이 들어선 뒤 북녘에서 자유를 찾아 남하하는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 평신도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38선을 넘나들며 그들을 대피시켰다. 한국전쟁 발발 하루 전날 인민군에게 붙잡혀(양양성당은 38선 이북지역) 원산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이 신부는 그해 10월 9일 인민군의 총에 순교했다.
김윤배씨는 "한국전쟁 중 순교한 '현대 순교자들'이 박해시대 순교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양양성당은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과 신자들을 사랑했던 이광재 신부님 삶과 신앙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 순교각과 이광재 신부 석상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이 신부의 유품과 91년 본당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광재 신부 기념관'이 있다.
춘천교구는 매년 10월 이 신부가 북녘에서 탈출한 이들을 안내했던 길을 따라 양양군 성 글라라수도원에서 시작해 양양성당에서 끝나는 '38선 도보순례'를 개최하고 있다. 3~4시간 동안 12㎞ 가량을 걷는 코스다. 문의 : 033-671-8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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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림굴은 신앙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했던 천연동굴이다. |
▨ 부산교구 죽림굴
죽림굴은 인터뷰를 했던 순례자 대부분이 "가장 찾아가기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성지"라며 "나중에 꼭 다시 순례하고 싶은 곳"이라고 입을 모은 성지다.
'한국의 카타콤바'(초기 그리스도교 지하묘지)로 불리는 죽림굴은 경남 울주군 간월산 정상 부근에 있는 천연굴이다. 박해시대 신앙 선조들의 피신처였고, 1840년부터 1868년까지는 공소(대재공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경신박해와 병인박해 때 대재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교우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100여 명이 넘는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공소는 폐쇄됐다.
경신박해(1859년) 때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가 3개월 동안 은신하면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마지막 편지를 쓰기도 했다.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순교자 허인백(야고보, 1821∼1868), 이양등(베드로, ?~1868), 김종륜(루카, ?~1868) 등도 한때 죽림굴에 머물렀다.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죽림굴은 1986년 언양본당 김영곤 주임신부와 신자들이 찾아내 세상에 알려졌다.
김윤배씨는 "비오는 날 길을 헤매다가 4시간 만에 죽림굴을 찾았는데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그날 아무도 없는 굴에 들어가 큰소리로 순교자 찬가를 부르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문의 : 052-262-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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