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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내)

배티성지 다녀왔어요

by 세포네 2011. 8. 30.

최양업 신부의 사목 활동 중심지이며 치명자의 묘소가 모여 있는 곳

진천 배티 성지[鎭川 梨峙 聖地]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성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들은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1830년대에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한국 성명 安敦伊) 성인 주교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朝鮮敎區神學校)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두 번째 신부인 崔良業(1821~1861년, 세례명 : 토마스)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朴德老) 신부와 페롱(한국 성 權) 신부가 1853년부터 1864년까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聖堂) 겸 사제관(司祭館)으로 삼았고,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에는 수많은 순교자가 배티와 인근 지역에서 탄생하여 순교자묘(殉敎者墓)에 안장되었다.


배티 성지에는 배티 성당[梨峙 聖堂]을 비롯해 주변 지역은 천주교 박해기에 교우촌으로 형성되었으며, 순교자 묘들이 이 곳 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성지는 1958년부터 청주교구 관할이 되었으며, 1977년부터 청주교구장에 의해 성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1978년에 순교자묘가 단장되었고, 1997년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2001年 2칸 규모의 목조초가(木造草家)로 재현한 조선교구신학교(朝鮮敎區神學校)와 신학교(神學校) 우측에 순교자(殉敎者) 유데레사묘가 있다.


훼손되지 않은 박해기의 天主敎 교우촌 터인 삼박골 교우촌 터와 순교자 묘로 무명 순교자 14人 묘와 순교자 劉데레사 묘,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 무명 순교자 6人 묘, 데레사 남편 순교자 묘도 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 터와 무명 순교자 14인 묘 그리고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를 지정 범위에 포함하였다.

 

 

 

14인 무명 순교자 묘역

 

 

 

 

성당, 사제관 최양업신부님 사목하시던 모습

 

 

십자가의 길

 

 

성지 입구 왼쪽 아래쪽에 있는 양업전시관

 

 

 

 

배티 쉼터

 

 

 

 

배티쉼터 내부  소성당 제대 십자고상 소성당 왼쪽에 마련되어 있는 유해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

 

소성당 오른쪽에 마련되어 있는  성체조배실

 

 

 

 

 

 

최양업신부님의 사목하시는 발걸음...십자가의 길

 

 

 

성모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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