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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내)

진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성지를 찾아서<하>

by 세포네 201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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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피해 숨어든 신앙선조 산골 교우촌


전국 111개 국내 성지를 모두 순례한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성지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보통 2~3곳을 추천했다. 심지어 10곳을 추천한 이도 있다. 이번 호에는 순례자들의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성지 두 곳을 소개한다.

▲ 2009년 복원된 되재공소는 117년 전 처음 지어졌을 때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왼쪽이 공소, 오른쪽이 목재 종탑이다.


▨ 전주교구 되재공소 

 부산교구 죽림굴 다음으로 많은 추천을 받은 곳이다. 되재공소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국교회 첫 한옥성당이고, 한강 이남 지역 최초 본당이다. 또 서울 중림동약현성당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불에 타 소실됐던 되재성당은 59년만인 2009년 복원됐다. 되재공소에 가면 옛 성당의 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한옥성당과 나무로 만든 종탑, 사제가 신자들을 등지고 벽을 보며 미사를 봉헌한 옛 성당 형태를 되살려놓았다. 또 남녀 신자들을 분리하는 칸막이도 재현해놓았다.

 고산본당 초대주임 조조(Jozeau) 신부가 1891년 되재 인근 차돌배기에서 전교활동을 하면서 태동한 되재본당은 2대 주임 비에모(Villemot) 신부가 1893년 되재에 터를 마련해 건축을 시작했다. 1895년 공사를 마치고 이듬해 봉헌식을 가졌다.

 되재공소가 있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는 신유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교우들이 많았다. 이명서(베드로, 1821∼1866) 성인을 비롯한 순교자 110여 명을 배출한 신앙의 못자리이기도 하다. 1886년 병인박해 당시에는 이 일대에 교우촌이 56곳이나 됐다. 되재본당이 설립된 후 성당 주변에 큰 교우촌이 형성돼 1890년대 후반에는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400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대단했다.

 되재성당은 신자들 노력으로 2007년 5월 15일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됐다, 전라북도와 완주군은 2006년부터 되재공소 복원사업을 시작해 옛 성당 모습을 복원했다. 문의 : 063-262-4171

▲ 진목공소는 최양업 신부가 사목방문을 다녔던 곳이다.


▨ 대구대교구 진목정성지
 
 경북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도매산 중턱, 해발 350m에 있는 진목정성지는 '숨은 성지'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예부터 참나무가 많고, 또 참나무 정자가 있어 진목정(眞木亭)이라고 불렸다. 진목정성지는 김윤배(판크라시오)씨를 비롯한 순례자 3명이 추천한 곳이다.

 진목정은 1860년대 초부터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대표적인 교우촌이다. 진목정에 있는 바위굴(범굴)에 허인백(야고보, 1822~1868)ㆍ이양등(베드로, ?~1868)ㆍ김종륜(루카, 1819~1868) 등 순교자 3명이 숨어살았다.

 병인박해가 있었던 1868년 진목정 교우촌에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허인백은 포졸들을 보고 놀란 기색 없이 "오늘에서야 세상일을 모두 마쳤구나"라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세 성인은 1868년 울산 장대벌에서 군문효수형을 당하고 순교했다. 이들은 처형을 당하기 직전 십자성호를 긋고 "성모 마리아"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이들 시신은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가 수습해 진목공소 뒤편에 묻었다. 유해는 현재 대구대교구 복자성당에 모셔졌고 성지에는 가묘가 있다.

 진목정성지에 가면 순교자들이 숨어 지냈던 범굴을 비롯해 그들의 시신을 묻었던 묘지, 진목공소 등을 만날 수 있다. 범굴로 오르는 언덕길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현재 범굴은 입구가 무너져 내려 원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진목공소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가 사목방문을 다녔던 공소 8개 중 한 곳이다. 내일1리 마을을 지나 범굴, 진목 공소를 거쳐 순교자 묘지까지 이어지는 2시간 30분 정도의 진목정 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문의 : 054-751-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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