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고무신에 담긴 비밀
/ 신 영
오르고 또 올라 높이 높이에만 서 있었습니다.
딛는 땅을 멀리 자꾸 밀어내고 살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가지런히 옮겨 놓으며
….키가 작아서 굽 높은 신을 찾았고,
예쁜 다리로 보이고 싶어서 높은 신을 찾았습니다.
나 자신보다는 늘 남의 이목을 더 챙겨야 했던 나,
그런 세월이 언 25년이 다 되었습니다.
지금 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키우질 못할 몸의 키였다면 차라리 '마음의 키'를 위해
열심히 마음공부를 할 걸 그랬습니다.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감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신어보지 못했던 '하얀 고무신'이
처음에 너무도 어색했고 한 이틀 정도 신고 있으려니
발뒤꿈치를 물어뜯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신발도 제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어릴 적, 유년 시절에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풀대며
엄마와 동네 친구분들을 모셔 놓고 아리랑 춤을 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색동 고무신을 신고 신바람 일렁이며 동네를
돌며 좋다고 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고무신'에 대한 기억들….
어른이 되어서 한복을 좋아하는 편이라 한복을 입을 때에도
늘 하얀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근사하게 보이려고 어찌 그리도 애를 쓰며 살았는지….
한복의 치마 길이도 키보다 길게 만들어 달라 주문을 하고
높은 굽의 구두를 찾아 신었습니다.
치마 속에 감추인 구두의 굽이야 얼마나 나 자신을
감추기에 좋은 친구인지 모릅니다.
속고, 또 속아주는 눈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을 테지요.
예쁘면 모두가 감춰지는 세상살이에 그만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발바닥에 닿는 땅의 느낌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할 무렵 세상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부족함을 감추는 연습을….
보여지는 것이 제일이라고 그렇게 자꾸 최면을 걸면서
세상에서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뿐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뒤지는 것인 줄 알고….
열심히 달리고 뛰면서 제일 앞장서 가길 원했습니다.
때로는 힘겨움에 버거워하면서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엊그제 처음으로 '하얀 고무신'을 신어 보았습니다.
뒷굽이 늘 높은 신(구두)을 신었던 탓에 뒤로 자꾸 넘어지는
느낌으로 불안한 반나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색한 신발에 뒤뚱거리는 내 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익숙해지며 신발바닥과 땅과 아주 가까이에서
닿는 느낌에 온몸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자갈길을 갈 때면 더욱이 돌멩이 모서리가 발바닥을 찌르며
아찔아찔한 느낌에 새로운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째를 맞으니 신발과 제 발이
하나가 되어 편안한 느낌으로 만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신비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짐승의 가죽을 벗겨 내 발을 씌우고 다니니 편안하고
내 몸을 보호할 수 있어 좋았지만, 그 편안함으로 우리가
잃었던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을 하나 둘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무신의 얇은 신발바닥에 혹여 지나는 벌레라도 밟힐까.
염려를 하며 걸었습니다.
높은 신발을 신고서 느끼지 못했던 또 하나의 깨달음이었습니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아래의 것들은 잊기 쉽다는 것을,
잃고도 잃어버린 것조차 잊어버린 감각에 땅에서 움직이는
작은 짐승들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앞만 보고 걷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무뎌진 내 '영혼의 감각'임을
깨달았을 때 소스라치듯 놀라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쉬이 내 뱉었던 말들이 어찌 이리도 부끄럽던지요.
"아, 그랬었구나!"
내 기쁨에 가려진 슬픔의 그림자들은 잊고 말았던 것입니다.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을 다른 이들의 아픔을 생각하니
새삼 나 자신에 대한 무책임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하얀 고무신'에서 나는 땅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고,
자갈들의 움직임에 깔깔거리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땅의 소리를 듣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음의 놀라움이고 신비이고 경이를 만났습니다.
숨 쉬고 있는 나와 땅과 만나며 나누는 또 다른 언어들….
서로가 서로에게 전해주는 얘기들은 끝이 없음을 말입니다.
잊었던 내 속의 깊은 나를 또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렸던 내 속의 깊은 비밀들을 하나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들려주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가 열리고,
보여주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나를 감싸며 보호하는 천사들의 노래들이 귀에 들리고….
하늘을 나는 듯 황홀한 올가즘은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흙냄새가 진동할 때에 견딜 수 없는 나를 만납니다.
나를 빚어 만드신 창조주의 손길에 호흡하는 나를.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
'참 나를 찾아가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08/20/2007.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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