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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한 처음 .......

by 세포네 2009. 12. 26.


  

 

 


요한 복음서 시작부분을 들었다.
“한 처음에”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이 말씀은 창세기 첫 장에도 나오는 말씀이다.
그래서 요한 복음은 “새 창세기”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구약의 창세기가 세상의 생명이 움트고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했다면
요한 복음서는 초자연적인 영원한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는 모습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창세기 칠일간의 창조 이야기에 맞추어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칠일간의 사건을 통해 상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날, 반대자들에게 메시아가 이미 와 있다고 증언한(요한1.19이하) 세례자 요한은
둘째 날에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가리켰으며(요한1,29이하),
셋째 날에는 이 사실을 자기 제자들에게 알렸고,
넷째 날에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첫 번째 만남이 성사된다.(요한1,42)
다섯째 날에는 필립보의 부르심과 나타나엘의 신앙 고백이 있고(요한1,43이하),
여섯째 날은 별일 없이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서 카나로 여행하신 날이라고 추측되며,
일곱째 날에 예수님께서는 카나 혼인잔치에서 첫 기적으로 영광을 드러내신다.
(요한2,1절이하) <“거, 좀 읽어봅시다!” 백민관신부 저, 98쪽 참고>
 
어쨌든 요한복음에 사용된 “한 처음”이란 말씀은 창세기를 본딴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신 분인 것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한 처음”은 모든 것이 창조되던 때를 상징하고,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미 그 때 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오늘” 뿐이시기 때문이다.
 
한 처음, 그 날, 그 때 이미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섭리안에서 잉태되고 창조된 존재들이다.
그래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예레 1,4-5)
 
“한 처음”이란 말에 담긴 “한”이란 말은
우리 나라 말로만 생각해 보면,
하나라는 뜻, 크다는 뜻, 온전하다는 뜻 등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한 처음”은
하느님의 영원속에서 바라본
"통째로 오늘"인 “바로 그 날”, “그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나의 전부를
하느님게 바치며 살아왔던가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이미 그분의 것인데,
심지어 우리의 병까지도 이미 그분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 병 마저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며 살 수 있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우리를 위해 나약하고 보잘 것업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조그만 어려움에도 좌절하고 갈피를 못잡는
우리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분의 성탄이다.
그래서 참으로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나자렛에서의 가난한 삶,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흉측하게 살해된 모습속에서
그리스도교 성덕의 최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습,
참으로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그 모습 속에 하느님의 신성이 깃들어 있듯이,
우리의 나약한 모습 속에도 하느님의 신성과 거룩함이 숨어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이미 “한 처음”에 그분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마련하신 섭리인 것을 깨닫고 참으로 기쁘게 살아야 할 것을 느낀다.
 
“한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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