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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추기경 김수환

1970년대 민주화운동

by 세포네 2009.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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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엄성 짓밟는 불의에 대한 저항은 교회 의무

 

어수선한 시국을 염려하면서 종교 지도자들과 얘기하고 있는 김 추기경. 왼쪽부터 이청담 스님, 조덕송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경직 목사, 김 추기경.(1970.12.23)

 이제부터 한동안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 시기에 가톨릭교회 또는 명동성당은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처럼 비춰졌다. 그리고 나는 본의 아니게 여러 사건과 사태를 겪으면서 인권 사회정의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다.

 당시 내 심경이 어떠했는지는 지금도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정부 압력은 물론 교회 안에서 쏟아지는 비판까지도 홀로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학순 주교 구속사건(1974년)이 터졌을 때는 교회 목소리가 일치했지만 이후 정의구현사제단이 출범하고 그분들이 모든 시국사건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교회 상층부에서부터 의견이 갈라져 서로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교회가 왜 정치문제에 깊숙히 개입하느냐, 교회 피해가 얼마나 큰 지 아느냐." "정부 공직에 있는 신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 줄 아느냐." "예수님과 복음을 빙자하여 얘기하지 말라."

 이런 비판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괴롭고 외로웠다. 외람된 표현이겠지만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예언자(루가 4,24)의 고독을 느꼈다. 정의구현사제단과 반대 성향을 보이는 신부들이 '구국사제단'을 결성한 것이 이때이다. 평신도 공화당원으로 구성된 '대건회'라는 단체도 있었다.

 교회의 현실참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와 빚는 마찰의 원인이 마치 나에게 있는 것처럼 여기고 교황청에 투서성 고발편지를 보냈다. 정부당국에서도 여러 차례 교황청에 사람을 보내 나를 문책할 것을 요구했다.(당시 교황청은 이런 정보사항을 수시로 내게 귀띔해주었다.)

   심지어 추기경이 정치를 좋아해서 정의구현사제단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얘기까지 들려왔다. 국제문화교류협력회라는 단체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왕가의 왕자를 초청, 나를 권력욕과 허영에 젖어 교회를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묘사해서 유럽 신문에 글을 싣도록 부추긴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라고 하느님께 물으면서 버텨왔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 가서 기도로 지탱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정치문제 때문에 기도회를 열거나 강론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는 것, 그래서 그런 세상이 오면 다리 뻗고 쉬고 싶은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준 이들은 수녀들이었던 것 같다.

 교회의 현실참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영향이 절대적이다. 공의회 정신을 요약하면 교회 기원이 세상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세상에, 세상을 위해서, 즉 인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신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공의회 문헌이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이다. 이 문헌은 이런 글귀로 시작된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여기에서 보듯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인간의 모든 문제, 특히 가난과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의 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 인간은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된 존재다. 따라서 우주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하며 세상 모든 것, 정치·경제·학문·과학발전 등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교회는 믿는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다.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존재는 무엇일까? 역시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객체나 도구로 전락될 수 없다. 또 교회는 인간 존엄성을 짓밟은 악과 불의에 저항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한 일이라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인간을 위해 자신의 삶과 전 존재를 바치는 모범을 보여준 스승이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신데도 인간을 위해서 당신을 낮추시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그리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하셨다. 내 생각을 지배하는 큰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는 특출난 사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충실히 따르려는 데서 얻은 것이다.

 어떤 이는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은 나라가 빈곤을 극복하고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부득이한 희생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경제 급성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희생이 막강한 권력에 의한 강요된 희생이었고, 많은 경우가 부당한 인권유린이었다는 점이다. 인권유린과 사회정의 부재는 많은 이들을 고통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 직전까지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스스로 권력을 내놓을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한 후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언론과 지식인들이 공포정치에 숨죽이고 있을 때 나는 인권과 정의를 위해서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거나 과격한 표현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없었다. 또 나름대로 지킨 원칙 중의 하나는 외국에 나가서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것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내 입을 주시하는 사람들과 언론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인데 다퉈도 국내에서 다퉈야지 그걸 갖고 밖에서 얘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시 내가 정의구현사제단의 대부라는 소문도 들렸다. 진실이 아니다. 난 시국기도회를 열려는 신부들을 말리고, 그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기도 했다. 시국기도회 주례를 부탁하는 것을 야단치고 돌려보냈는데 또 찾아와서 요청하길래 젊은 신부들의 기를 꺾는 것 같아 마지못해 가서 앉아있은 적도 있다.

 일전에 1971년 성탄 자정미사에서 박 정권의 비상대권을 비판한 얘기는 했다. 그런데 이듬해 8월 시국성명서 발표로 박 정권과 또 한번 충돌했다. 그 때문에 성모병원에 세무사찰팀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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