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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좋아하며 사랑하며

by 세포네 2009. 1. 16.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원만한 가정은 상호간의 희생 없이는 절대 영위(營爲)되지 못한다. 이 희생은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을 위대하게 하며 아름답게 한다.(앙드레 지드)





좋아하며 사랑하며(‘좋은생각’ 중에서)

집에 열 살짜리 손녀딸이 있다. 외동딸이다. 태어날 적엔 한심할 정도로 못생겼다. 아이 아빠가 할머니를 닮아서 그러니 이다음에 손녀딸 개발비를 대 주어야 한다고 항의성 청구를 했다. 곱슬머리에 볼우물이 틀림없는 할머니 2세라는 거다. 여기까지는 항의를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코와 눈에 있다. 손녀딸이 할머니 코를 닮아 오뚝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눈은 쌍꺼풀이 없고 쪽 째졌다.

“얘는 크면 코가 살아날 테니 걱정 마라.”

나의 예언은 적중했다. 손녀딸은 일곱 살이 넘으면서 콧날이 오똑해졌다. 그뿐 아니라 쌍꺼풀이 없고 쪽 째진 작은 눈이 요즘 매력 포인트란다. 사람들은 김연아를 닮았다고 한다. 그 매력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말이다.

나는 손녀딸에게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부릴 만도 했다. 두 돌이 되면서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완벽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아이가 천재인 줄 알고 흥분한 나는 하루에 한 시간씩 아이를 앉혀 놓고 닦달했다. 삼 년이 지나자 아이는 피아노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피아노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아이와 놀아 주는 일도 하지 않았다. 손녀딸은 할머니와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만 피아노를 치지 않은 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나는 재능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말을 재미있게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중 한 가지만 있어도 매혹당한다. 나는 손녀딸을 내 스타일의 아이로 만들려고 작정했던 모앙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을 돌아보니 내 스타일이 아닌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십년 이상 우정을 쌓아 온 친구들이며 지인들, 가족까지 신통하게도 내 스타일인 사람은 거의 없다. 재능과 매력이 있으면 성격이 좋지 않아 죽도록 미운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기는 더 어렵다. 나는 풀이 죽었고, 세상은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스타일이 아니어도 사람들을 좋아하며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랑은 매혹당하는 것이 아니고 선택이고 노력이어야 한다. 재미없는 친구들을 사랑하고 개성이 강한 가족을 사랑하며 특히 내 손녀딸을 사랑한다. 그들을 좋아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이며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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