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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찾으려는 갈망 있을 때 하느님 만나

by 세포네 2009. 1. 18.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 10).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세례 받은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모두가 그 뜻에 동의해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정도가 아니라 그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토록 부르시는 주님 말씀에 응답하여 그분과 한 몸으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사도 성 바오로는 세례 받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확실히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 27).

오늘 안드레아는 자신의 형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 41).

그러나 바오로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분을 우리 모두가 옷 입듯이 입어 한 몸이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플라톤(B.C 429?~347?)의 중기 대화편인 ‘향연’에는 이 같은 글이 있습니다.

“신들이 인간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인간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현재 인간의 모습과 비교할 때, 그 때 인간은 두 사람을 합체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전후좌우 모든 방향을 볼 수 있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두 개의 얼굴, 네 개의 팔, 네 개의 다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 인간은 신을 모독하게 되어 신은 인간에게 그 벌로 몸을 둘로 나누는 형벌을 내렸다. 원래 한 몸이었던 사람들이 둘로 나뉘게 되자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여기서 원초적 욕구와 욕망의 문제가 생겨났다.”

어떻게 이 같은 말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믿음과 신앙으로 보자면, 인간은 분명 하느님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기에 만들어 주신 분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찾습니다. 우선은 내가 그분을 찾으려는 갈망이 있을 때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

그럴 때 우리는 복음의 제자들과 같이 물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요한 1, 38)

세상 욕망의 짝을 찾기 위한 허망함의 찾음이 아니라, 영원불변의 진정한 창조주를 찾아 나설 때 우리는 비로소 그분을 만날 수 있고 타인들에게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 41).

배광하 신부 (춘천교구 겟세마니 피정의 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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