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후반 지방 건축기술 잘 보여줘
▲등록문화재 제141호 원주교구 삼척시 성내동성당 전경. 1957년 건립 당시 강원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성당 내부.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는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한다.
▲성당 앞마당에 있는 나무 탁자와 의자.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면 시간을 잊을 것 같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을 내처 달려 도착한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성당(주임 박호영 신부). 성당 건물도 문화재거니와 주변 환경 역시 문화재급이라 탄성이 절로 나왔다.
첫째, 위치가 너무 좋다. 성당이 동산 위에 있어서 삼척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지금이야 고층 아파트를 비롯한 높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선 까닭에 시내에서 성당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내 어디서든 고개만 들면 곧바로 성내동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 성당 가는 길을 따로 물을 필요가 없었다.
둘째, 넓으면서 나무로 잘 가꿔진 성당 구내는 곧 작은 공원이다. 고즈넉한 성당을 둘러싼 소나무들이 성당과 조화를 이뤄 적당히 묵은 김치 같은 은은한 느낌을 자아내며, 성당 입구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은-과장을 조금 보탠다면-울창한 소나무로 뒤덮인 산길을 걷는 기분이다. 성당 마당 한쪽 소나무 뜰 아래 있는 나무 탁자와 의자는 또 어떠한가. 점심 도시락이라도 펴놓고 먹을라 치면 봄소풍 나온 기분이 절로 들 것 같은 분위기다. 새 것만 찾는 세상에서 '오래된 것도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곳이 바로 성내동성당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성전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50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 성당을 처음 지을 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흥미진진하다.
성내동본당은 1949년 10월 지금의 성당 자리가 아닌 인근 남양리에서 출발했다. 설립 당시 100여명에 불과했던 본당 신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당시 주임이었던 강(姜) 디오니시오(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는 성전 신축 부지를 물색했고, 여러 군데를 둘러본 끝에 지금의 자리에 성당을 짓기로 마음을 굳힌다. 돌이 거의 없는 밭이기에 성당을 짓는 데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장소라는 점이 마음에 든 것이다.
실제로 신축에 나선 이는 강 신부 후임으로 1955년 11월에 부임한 고(高) 가비노(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였다. 당시 25살 젊은 나이에 매사 적극적이던 고 신부는 10명이나 되는 땅 주인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면서 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선뜻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성당 부지에 주민들이 매년 섣달 그믐날 고사를 지내는 성황당 고목(古木) 두 그루가 있는데, 성당을 짓느라 이 고목들이 망가지면 동네에 큰 재앙이 온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이 때 고 신부가 주민들을 설득한 논리가 재밌다. 당시를 기억하는 홍원표(빈첸시오, 75)씨는 "고 신부님은 고목에 제사 지내는 것보다 성당에서 매일 제사를 지내면 훨씬 더 큰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말로 두려움에 떠는 주민들을 달랬다"고 회고했다.
성전 신축 공사는 1957년 3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설계도는 원주교구가 춘천교구에서 분리(1965년)되기 이전인 당시 성내동본당을 관할하는 춘천교구장 구 토마스 주교가 보내왔고, 시공은 강릉 임당동성당과 묵호성당을 시공한 경험이 있는 중국인 신자 가(賈)씨가 맡았다.
공사는 쉽지 않았다. 공사에 들어간 지 4개월 만에 인부 몇 명만 나오고 대부분 나오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알고 보니 돈이 많은 외국인 신부가 공사를 하니까 공사를 지연시키면 노임을 더 받을 수 있겠다는 욕심에 단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는 재개됐고, 공사 막바지에 자금이 모자라게 되자 교구장 구 주교는 갖고 있던 승용차를 팔아 공사비에 보탰다.
성당 봉헌식을 가진 것은 착공 9개월 만인 그해 11월 5일. 건평 133평의 성전과 30평의 사제관은 당시 춘천교구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성당 안에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는 구 주교와 친분이 있는 서울의 한 교우가 기증한 것이다. 입체감을 살린 14처는 지금도 외지에서 일부러 사진을 찍으러 올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고 신부는 성당을 지으면서 "높이 올라갈수록 하느님과 가까워지기에 성당은 무조건 높은 것이 좋다"고 농담처럼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성내동성당이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처럼 쾌활하고 활달한 고 신부의 노고 덕분이 아닐까.
성내동성당은 1950년대 후반의 지방 건축기술을 잘 보여준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아 2004년 12월 31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동안 성당 지붕을 한번 교체하는 수리를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끄떡없이 튼튼한 편이다.
성내동성당의 특이한 점은 대부분 성당은 구내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의 종탑을 바라볼 수 있는 데 반해 성내동성당은 후면으로 들어와 성당을 돌아야 종탑이 있는 정면 출입구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종탑이 성당 입구가 아닌 시내쪽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멀리 있는 사람들도 금방 성당임을 알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나온 발상일 게다.
그러나 종탑을 바라보면서 성당으로 올라올 날도 머지 않았다. 좀더 많은 이들이 성당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삼척시에서 재정 지원을 받아 성당 정면에 시내와 연결되는 계단을 만들고, 계단과 시내가 맞닿은 곳은 건물을 허물고 광장으로 조성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시내에서 성당으로 올 때 빙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 없이 계단을 통해 곧바로 성당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성당 입구에 광장까지 생기게 되면 성내동성당은 명실공히 삼척시의 명물이 되는 것이다. 전교에도 큰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본당 사무장 이선재(요셉)씨는 "영동지역에서 성내동성당만큼 운치 있는 성당도 드물다"면서 근처에 올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들러볼 것을 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여름에 동해안으로 피서를 떠난다면 시간을 내어 한 번쯤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남정률 기자njyul@pbc.co.kr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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