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끓는 두 신학생 서한 163년만에 귀환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서 바라본 조바자츠성당과 교우촌 풍경. 아래로 김대건 신부 동상이 보이고, 성당 제대쪽으로 들어가는 동굴이 자리한 동산이 눈에 띈다.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 기념 및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기원 미사가 8월13일 진궈렌 신부 주례로 봉헌되고 있다.
▲김대건 신부 동상 앞에서 양팔 묵주기도를 바치는 신자들.
▲15일 아침 김대건 신부 동상 앞에서 영어성경학교를 마친 조바자츠본당 청소년들이 한국교회 순례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844년 5월17일, 창춘(長春)시 서남쪽 30㎞ 조바자츠(小八家子)성당. 동료 최양업과 함께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신학을 공부하던 김대건은 사랑하는 스승 리브와 신부에게 서한을 보낸다.
"조선 신자들은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으나 목자가 없어 암흑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금 계획으로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신자 가족을 의주로 이주시켜 조금 더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해볼까 합니다."
신학 공부에 여념이 없어야 할 김대건은 이처럼 조선 교우들 걱정으로, 조선 입국로 개척 문제로 노심초사했다.
이같은 신앙적 고뇌는 최양업이 이틀 뒤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동포들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탄식과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부모들과 형제들을 따라갈 공훈을 세우지 못했으니 제 신세가 참으로 딱합니다.…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당신 종들의 피가 아벨의 피처럼 호소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이처럼 애끓는 두 신학생 서한이 파리외방전교회, 서울대교구 고문서고를 거쳐 그 사본이 8월12일 마침내 조바자츠로 되돌아왔다. 무려 163년만의 귀환이었다. 8월12~14일 조바자츠본당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서 열린 '성 김대건 순교 160주년 기념 전시'를 통해서였다. 최승룡(서울대교구 고문서고 담당) 신부 배려로 제공된 두 서한 사본은 액자에 넣어져 현지 본당에 영구 기증됐다. 중국어 번역본 서한을 지켜본 지린교구 알바단춘(二八石村)본당 주임 진궈렌(金國聯, 요셉) 신부는 "하느님께 목숨을 바치려는 두 신부님의 순교영성이 두 서한에서 그대로 묻어난다"며 "양국 교회 신자들이 이 서한을 통해 신앙적 나눔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게 무척 뜻깊다"고 소감을 전했다.
조바자츠본당과 한국 신자들 나눔은 이뿐만이 아니다. 8월16일 조바자츠성당에선 중국 신자와 재중동포 200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성 김대건 순교 160주년 기념 및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기원 특별피정'이 진행됐다. 강사는 여진천(원주교구 성지 배론 순교자들의 집 주임) 신부와 김현욱(요한 보스코, 67) 한국외방선교회 후원회장. 백승애(베로니카, 48)씨 기타 연주가 곁들여지는 가운데 진행된 피정은 김대건, 최양업 신부의 삶과 영성이 두 나라 교회의 신앙적 나눔에 가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 8월12~14일 성당 내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서 열린 성령세미나를 통해서도 두 나라 신자들은 서로의 신앙을 돈독히 했다.
특별피정을 갖던 중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차로 5시간이나 걸려 피정에 참석한 재중동포 백동원(요셉, 50)ㆍ조련숙(마리아, 50)씨 부부의 판쓰(磐石)시 밍청(明城)진 집이 간밤 폭우로 수몰된 것. 저수지 둑이 터져 집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아들만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연락을 받은 부부는 동이 트자마자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이에 순례단은 즉석에서 성금 80여만원을 거둬 전하며 위로했지만 부부는 오히려 의연했다.
"집에 있었으면, 지난해 12월에 가스중독으로 쓰러져 지금도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는 남편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데 하느님께서 도우셨어요. 아들도 무사하다니 하느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만 의지하겠습니다."
그러나 북방선교를 잇는 밀알은 영어성경학교였다. 8월12~15일 김대건 신부 기념관 4층 강당에서 여섯차례 진행된 영어성경학교는 미래 두 교회간 교류 물꼬를 트는 '작은' 계기가 됐다. 휴가를 내 순례에 함께한 김태우(미카엘, 56)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책임연구위원의 핵심을 찌르는 강의는 특히 현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매일같이 새벽 6시30분과 밤 8시에 2시간씩 두차례나 진행된 강의에도 60여명씩 참석할 정도. 「요한복음」 가운데 예수 일생을 탄생과 성장, 가르침, 기적, 죽음, 부활 등 주제별로 나눠 압축한 10개 성경귀절을 외우도록 하면서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 등 성가 및 팝송과 함께 가르친 게 주효했다.
장자쉬(張佳旭, 15)군은 "성경 귀절 10개를 통해 예수님 일생을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게 뜻깊다"며 "이번 영어성경학교를 계기로 신앙생활도 더 충실히 하고 영어도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잠시 짬을 내 김대건 신부 기념관 내 1ㆍ2층에 있는 양로원 이땐위엔(伊甸院, 에덴원)에 들렀다. 지난 6월 공식 개관한 이땐위엔에 입주해 사는 중국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 7명. 주변 환경도 좋을 뿐 아니라 신앙생활하기에도 안성맞춤인데다 생활비도 싸서(350위안, 우리돈 4만4000원) 중국 양로원 중 최고 시설로 평가받는다. 올해 아흔살인 옌밍사(閻明霞, 콘스탄시아) 할머니는 "집에서 아들, 딸이 보살펴주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며 "마치 천당에서 사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을 보살펴온 한 수도자는 "입주하려는 어르신은 넘쳐나고 방은 더 있는데도 양로원 운영이 적자여서 더 모실 수 없어 안타깝다"며 후원을 호소했다. 후원: 김대건 성인 성역화 추진위원회, 농협 170260-56-072781, 예금주 최선웅 신부
김대건, 최양업 두 사제의 선교 영성이 오늘 한ㆍ중 교회로 이어져 넓어져가는 신앙 나눔의 현장을 보는 일은 참으로 뿌듯하기만 했다. 지린성 조바자츠(중국) 오세택 기자
<<조바자츠본당 왕궈셩 신부 >>
"조바자츠성당 순례지 개발이 한ㆍ중 교회 협력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9월 조바자츠본당 주임으로 부임하기 전엔 김대건 성인을 잘 몰랐다는 왕궈셩(王國生, 요셉) 신부.
올해로 수품 10년차인 왕 신부는 "본당에 부임해서야 김대건 신부님과 저희 본당에 얽힌 교회사를 알게 돼 안타까웠다"며 한반도 넓이(22만2662㎢)보다 4만㎢가 작은 지린교구는 주민 2728만명에 본당 40개, 사제가 53명밖에 되지 않아 한국교회와 교류 가능성이 크다고 시사했다.
"김대건 성인을 알게 된 뒤로 성인호칭기도에 김대건 성인을 꼭 넣고 있습니다. 또 기회가 닿는대로 신자들에게도 우리 성당에서 신학을 공부한 김대건 성인에 대해 알려주고 함께 김대건 성인의 전구를 청하고 있습니다."
왕 신부는 또 "이번에 우리 본당에서 김대건 성인과 함께 신학을 공부하신 최양업 신부님에 대한 한국교회의 시복 추진 소식을 들어 기쁘고, 최양업 신부님께서 꼭 시복되시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왕 신부는 이어 "올해 들어 두차례나 전 신자 피정을 가질 만큼 뜨거워지는 저희 공동체 신앙 열기에 한국교회가 동참해 지린교구를 복음화하는 데 함께해주시길 바란다"며 "한가지 꿈이 있다면, 현재 바자츠소학(八家子小學, 초등학교)이 자리한 옛 성모성심회 수녀원 터를 인수해 신앙 요람으로 조성하는 것"이라고 희망을 전했다.
오세택 기자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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