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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지(국외)

[중국성모성지 순례]<하> 류허춘본당 공동체

by 세포네 2006. 8. 27.

마을 주민 8000명 중 7000명이 신자...경이로운 복음화율

 

<== (사진설명)
류허춘 본당 어린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 한국순례단이 아쉬운 작별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방학을 맞아 류허춘 본당 여름교리학교에는 매일 1200명의 어린이들이 나와 교리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 가톨릭 신앙이 류허춘(六合村)본당 공동체에서 빛나고 있다.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太原)시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류허춘본당은 한국에서 사제가 된 왕건공 신부(서울대교구 전농동 본당) 출신지역으로 현재 신학생이 20명이나 있다. 수녀는 15명, 신부는 20명을 배출했다.

 류허춘 마을은 부모를 모시고 3, 4대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어린이들 성가 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 본당 여름교리학교에 가는 어린이들이다. 여름교리학교엔 매일 1200여명이 나온다. 컴퓨터(PC)방 하나 없는 이 마을에 성당은 어린이들 구심점이다.

 마을 주민 8000명 중 7000명이 천주교 신자다. 그 중 2000명이 어린이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면 곧바로 세례를 받는다. 마을 신자들은 성당 종소리에 맞춰 일어나 성무일도로 아침기도를 바치고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 매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면 가족이 모여 기도(삼종기도, 대영광송, 사도신경)로 대신할 만큼 신심이 두텁다.

 이 곳 교우촌엔 유난히 어린이들이 많다.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치 못한 중국정부가 '한가정 하나만 낳기'(一家一人 幸福一生) 운동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신자들은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을 우리가 막을 수 있느냐" 며 어려워도 하느님 뜻을 실천하고 있다.

 이 마을엔 신앙의 뿌리가 내려오고 있다. 100년 전 외세를 반대하는 정부관리와 의화단은 타이위안대교구 신자 3000명을 거의 희생시켰다. 그 때 갓난아이와 일가족 18명이 몰살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순교자 594명만 이름이 밝혀졌다.

 하지만 류허춘 신자들은 이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로 뭉쳐 성당을 보호하고 폭도들을 쫓아냈다. 그 결과 희생자는 사제와 본당신자 등 12명에 불과했다. 성당 한 쪽에 세워진 기념탑이 선조들의 위용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류허춘 신자들은 1964년 문화대혁명으로 성당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1986년에 당시로서 큰 돈인 37만위안을 모아 지금의 성당을 다시 지었다. 신자들은 성당 짓는데 교대로 나와 노력 봉사도 했다. 자신들이 손수 지은 성당이라서 성당에 대한 신자들 애정은 각별하다.

 본당은 현재 장정해(루카) 주임 신부와 보좌신부 1명이 한꺼번에 5000명이 들어가는 대성당과 소성당 두 군데에서 동시에 주일미사를 집전한다. 평일에는 이른 새벽과 저녁 두차례 미사를 봉헌한다. 새벽 5시45분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만도 1500여명이나 된다. 미사 때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라틴어 성가로 부르는 모습에서 중국교회 굳건한 신앙을 엿볼 수 있었다.

 본당 사제들은 월요일에 쉬지 못한다. 일주일 내내 사목하고 휴가도, 안식년도 없이 1년에 한번 피정만 한다. 사제 월급도 따로 없어 10만원 정도의 신자들 특별 봉헌금에 의존한다. 사제들은 어린이 미사를 별도로 마련하고,  교리교사 수준을 높이고, 교리 교재를 확충하고 싶지만 여력이 미치지를 못한다.

 마을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진다. 성당으로 향하던 어린이들은 놀라 뛰어가며 비를 피한다. 한동안 퍼붓던 소나기가 그치자 이내 신선한 공기가 마을에 퍼진다. 지난 100년 간 모진 박해로 사라진 듯 했던 중국교회가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하게 굳듯, 미래교회 희망인 어린이에게 그 신앙 유산을 전해주고 있음을 올해 설립 166주년을 맞는 류허춘 본당공동체는 보여준다.

글ㆍ사진=전대식 기자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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