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사도신경이야기

추억의 물건과 성사

by 세포네 2006. 4. 23.

‘서울주보’에 실린 한 신부님의 이야기가 코끝을 찡하게 합니다.

<첫 주임신부로 사목했던 구파발 성당을 떠날 때입니다. 마지막 고별 미사가 있던 일요일 내내 4학년짜리 꼬마가 하루 종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그 녀석은 내가 성당에 처음 부임했을 때 꽃을 준 화동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유치원을 다니는 꼬마였는데, 어느 틈에 키도 훌쩍 크고 늠름해져 있었습니다.

막상 내가 떠난다고 하니 내심 섭섭했나 봅니다. 낮부터 집에 안 가고 내 주위를 서성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와서 “신부님과 헤어지는 것을 무척 섭섭해 한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밤이 되었는데도 집에 가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려, 나는 일부러 야단을 쳤습니다. “이 녀석아, 이제 집에 가야지. 하루 종일 공부도 안하고 성당에서 뭐 하는 거야?”

나는 녀석의 마음을 모른 척했습니다.

“신부님, 내일이면 다신 못 만나잖아요. 그래서….”

금방이라도 아이 눈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았습니다. 그 애의 눈을 보자 나도 하루 종일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난 눈물을 안 보이려 돌아서면서 짧게 소리쳤습니다.

“그래도 이젠 어서 집으로 가”하고는 사제관의 문을 쾅 닫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그 녀석이 서 있었습니다.

“신부님, 이제 집으로 갈 테니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신부님이 쓰시던 손수건 한 장만 주세요. 손수건 보면서 신부님 생각할게요.”


이윽고
녀석은 내 손수건을 받아 들고 기뻐하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난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그 녀석이 아직도 내 손수건을 가지고 있을까….>(2004년 3월 21일 서울주보에서)

 

 

사람은 정(情)을 지닌 동물입니다. 정 때문에 울고불고 하며, 그 정을 추억하며 흐뭇한 미소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 정을 길이 간직하기 위하여 정표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보이는 물건 속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담아 둘 줄 아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손으로 만지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사랑까지도 무언가 보이는 것을 통하여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사람의 욕구를 하느님은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사(聖事)입니다. 이제 성사의 은총에 대해서 배워 보겠습니다.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