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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3월 4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3. 4.

네스토르(3.4)

바실리오(3.4)

아가토도로(3.4)

아르카디오(3.4)

에우제니오(3.4)

에테리오(3.4)

에프렘(3.4)

엘피디오(3.4)

카피토(3.4)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4세기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성 아가토도루스(Agathodorus), 성 엘피디우스(Elpidius), 성 에프라임(Ephraem), 성 아이테리우스(Aetheriu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아르카디우스(Arcadius), 성 카피토(Capiton), 성 네스토르는 모두 주교로서 사목하다가 순교하였다. 성 네스토르와 성 아르카디우스는 키프로스(Cyprus)에서 순교하였고, 다른 주교들은 크림(Krym) 반도와 러시아 남부의 다른 곳에서 순교하였다.

 

로메오(3.4)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380년

지역 : 리모주

 

  프랑스의 리모주 태생인 성 아베르타누스(Avertanus, 2월 25일)는 겨우 말할 수 있을 때부터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행동은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주 기도하고 관상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천사의 환시를 보고 카르멜회에 입회하려고 마음을 먹고 부모를 설득하였다. 마침내 그는 부모를 설득하여 동의를 받은 뒤 카르멜회에 지원하였다. 수도원장은 그를 환영하였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그가 서원할 때에는 천사들의 노래와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고, 성모님께서 친히 이 평수사의 머리 위에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기도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수도원의 온갖 잡일을 하였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밤에는 수도원 언덕 위의 바위에 기어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한 번은 그가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동료인 로메우스(또는 로메오) 수사와 함께 출발하였다. 그들이 겨울 알프스 산을 넘어 이탈리아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루카(Lucca) 성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만 성 아베르타누스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성 아베르타누스는 그리스도와 천사들의 환시를 보며 웃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고, 로메우스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8일 동안 무작정 길을 가다가 운명하였다.

 

루치오 1세(3.4)

 

신분 : 교황, 순교자

연대 : 254년

 

   데키우스 황제가 일으킨 박해는 갈루스 황제 시대까지 계속되었는데, 교황 성 루키우스 1세(또는 루치오 1세)는 지명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유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교황 일행이 돌아올 때에는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는 축하 전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이단을 단죄했지만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재위 기간은 8개월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발레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무덤은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가 성녀 체칠리아(Caecilia)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바시노(3.4)

신분 : 수도원장, 주교

연대 : 705년경

지역 : 트리어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었던 성 바시누스(또는 바시노)는 독일 트리어의 성 막시미누스(Maximin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재임하다가 성 누메리아누스(Numerianus, 7월 5일)를 계승하여 트리어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당시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를 포함한 영국 선교사들의 후원자였다. 그는 은퇴 후 예전의 수도원으로 돌아가 살다가 선종하였다.

 

오윈(3.4)

신분 : 수도승

연대 : 680년

 

   한때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 6월 23일) 왕실의 집사였던 성 오윈은 잉글랜드(England) 라스팅햄(Lastingham)의 베네딕토 수도회에 들어가서 성 체아다(Ceadda, 3월 2일)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후에 성 체아다를 따라 리치필드(Lichfield)로 갔다. 그는 오웬(Owen)으로도 불린다.

 

지스틸리아노(3.4)

신분 : 증거자

연대 : 5/6세기경

지역 : 메네비아

 

  성 기스틸리아누스(Gistilianus, 또는 지스틸리아노)는 웨일스(Wales)의 성 다윗(David, 3월 1일)의 삼촌으로 성 다윗이 세운 메네비아 수도원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카이오(3.4)

신분 : 순교자

연대 : 254년

 

   로마 제국 왕궁의 관리였던 성 카이우스(Cajus, 또는 카이오)는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27명의 동료들과 함께 익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펠릭스(3.4)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038년

지역 : 뤼

 

   프랑스 북서부의 브르타뉴(Bretagne)에서 태어난 성 펠릭스는 은수자로 살다가 플뢰리(Fleury)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뤼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플라치다 비엘(3.4) (복녀)

신분 : 동정녀

연대 : 1815-1877년

 

   에우랄리아 빅토리아 자클린 비엘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Normandie)의 어느 마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17세 때까지 농사일을 거들며 집안의 온갖 일을 다 하며 자랐다. 한 번은 그녀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Maria Magdalena Postel, 7월 16일)의 공동체에 살던 숙모를 방문하여 큰 감명을 받고 그곳의 수녀가 되었다. 이때 플라치다(Placida)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당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 원장은 80세의 고령이었는데, 이 젊은 수련자가 수련을 마치자 자신이 지도하던 대수도원의 후임자로 선정하였다. 그래서 플라치다는 아르장탕(Argentan)에서 정규 학교를 다니는 등 여러 가지 준비를 하여 마침내 큰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우선 그녀는 5년 동안 수련장을 맡았고, 그 다음에는 생소뵈르르비콩트(Saint-Sauveur-le-Vicomte)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파리(Paris)로 파견되었다.

   1846년 7월 16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 원장이 서거하자 그녀는 수녀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숙모가 시기하고 질투하는 통에 큰 곤욕을 치렀다. 플라치다 원장은 30여 년 동안이나 수도회를 지도 운영하였는데, 보르도(Bordeaux)의 대주교인 귀베르 추기경은 이런 말을 하였다. “프랑스 전역에서 이 수녀만큼 뛰어난 수도자는 없다.” 그녀의 개인생활은 극히 단순하였으나 초자연적 은혜가 많았다. 그녀의 재임 기간에 프랑스 내의 자비의 그리스도인 학교 수녀회의 회원 수는 150명에서 1,000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그녀는 1951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다.

 

하드리아노(3.4)

신분 : 순교자, 선교사, 주교

연대 : 875년경

지역 : 아일랜드

 

   9세기에 스코틀랜드 연안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덴마크인들이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또는 하드리아노)를 비롯한 일단의 동료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성 하드리아누스는 왕손으로서 헝가리의 판노니아(Pannonia)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로 활약하였다. 선교열에 불타오른 그는 클로디온, 카이우스, 스톨브란드 그리고 모난 등 많은 동료들을 대동하고 스코틀랜드로 갔다. 이때 그들이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덴마크인들의 공격을 받아서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그는 아일랜드의 선교사로 기록되어 있다.

 

훔베르토(3.4)

신분 : 증거자

연대 : 1136-1189년

지역 : 사보이아

 

  훔베르투스(Humbertus, 또는 훔베르토)는 이탈리아의 토리노(Torino) 근방 아비글리아나(Avigliana)에서 사보이아의 아마데우스 3세(Amadeus III) 백작과 빈(Wien)의 마틸다(Matild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신앙 교육을 받아 기도생활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그는 은수자가 되려는 소망을 희생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흔히 자기도취에 빠진 그런 세속의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권력의 의미를 잘 알고 백성들의 염원을 이해하는 통치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만년에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현직에서 은퇴하여 시토회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38년에 승인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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