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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3월 2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3. 2.

가롤로(3.2)

 

신분 : 순교자

연대 : 1127년

 

  플랑드르(Flandre)와 아미앵(Amiens)의 백작인 카롤루스(Carolus, 또는 가롤로)는 매우 현명하고 자비롭게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란 칭호를 얻었다. 그의 부친은 덴마크의 왕 성 카누투스 4세(Canutus IV, 1월 19일)이다. 그는 불과 5세 때에 플랑드르의 백작 작위를 받았고, 그 후 장성하여서는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십자군에도 참가하여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는 항상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가장 중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당으로 맨발로 미사에 참례하러 가던 중에 그에 대한 불길한 음모가 싹트고 있었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위험 중에 있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다. 만일 우리가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참으로 의롭게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시편 150을 외웠다. 그는 성당의 제대 앞에서 인간들의 추악한 악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통회하던 중 자객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자객은 그의 조카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는 높은 직책을 수행하였으나 항상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으므로 이를 시기한 사람들에 의해 살해된 것이었다. 그의 유해는 벨기에의 브뤼헤(Bruges)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고,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83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바실레오(3.2)

요비노(3.2)

신분 : 순교자   

연대 : 258년

 

   성 요비누스(Jovinus)와 성 바실레우스(또는 바실레오)는 갈리에누스와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Rome)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라티나 가도(Via Latina)에 묻혔다.

 

바오로(3.2)

세쿤딜라(3.2)

야누아리아(3.2)

헤라클리오(3.2)

신분 : 순교자

연대 : 305년

 

   성 바오로(Paulus)와 성 헤라클리우스(Heraclius)는 4세기 초 로마의 박해 때 티베르(Tiber)강 어귀의 항구도시인 포르토 로마노(Porto Romano)에서 순교하였다. 성녀 세쿤딜라(Secundilla)와 성녀 야누아리아(Januaria)도 그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조아반(3.2)

신분 : 주교

연대 : 570년

지역 : 레옹

 

   성 조아반은 영국에서 태어나서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로 가서 그의 삼촌인 레옹의 성 바오로(Paulus, 3월 12일)에게 영성지도를 받았다. 수도자가 된 그는 성 바오로 주교를 보좌하다가 그의 후계자가 되어 주교직에 올랐다. 적어도 브르타뉴에 있는 두 개의 성당이 성 조아반에게 봉헌되었다.

 

체아다(3.2)

신분 : 수도승, 주교

연대 : 673년경

지역 : 머시아

 

   영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서 태어나 차드(Chad)로도 불리는 성 체아다와 그의 동생 성 체드(Cedd, 10월 26일)는 린디스파른(Lindisfarne)에서 성 아이다누스(Aidanus, 8월 31일)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은사인 성 아이다누스가 운명하자 성 체아다는 아일랜드의 성 에그베르투스(Egbertus, 4월 24일)와 함께 수년을 생활하다가 동생 성 체드가 세운 요크셔(Yorkshire)의 라스팅햄(Lastingham)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잉글랜드(England)로 돌아갔다. 그 다음 해에 성 체아다는 오스위(Oswy) 왕에 의하여 요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교구 내에 여러 개의 수도원과 피정의 집을 세워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데 같은 교구인 요크의 주교로 임명된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와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669년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가 된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는 성 체아다를 머시아의 주교로 임명하였고, 이 모든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성 체아다는 그의 주교좌를 리치필드(Lichfield)로 정했다. 그는 여러 수도원을 설립하고 활발히 복음을 전하며, 이교도인 머시아인들에 의해 수없이 순교한 순교자들의 순교지에 주교좌 성당을 건립하였다. 그는 리치필드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유해는 버밍엄(Birmingham)에 안치되었다.

 

헨리코 수소(3.2)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295-1366년

 

   헨리쿠스 수소(Henricus Suso, 또는 헨리코 수소)는 유명한 도미니코 회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의 뛰어난 제자로,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콘스탄츠(Konstanz)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베르크(Berg)의 헨리쿠스 백작이고, 그의 어머니는 수소 가문의 성녀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실제 이름은 하인리히 폰 베르크(Heinrich von Berg)였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수소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3세 때에 콘스탄츠의 도미니코회에 들어갔고, 서원한 후에 쾰른(Koln)으로 가서 에크하르트의 지도하에 수학하였다. 그는 ‘영원한 지혜’의 종이 되었고, 놀라운 현시를 보았으며, 예수 성명을 특히 공경하고, 천주의 모친께 남다른 신심을 지녔기에 가끔 ‘신비가’란 소리를 들으면서 생활하였다. 그 후 그는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매우 아름다운 신심서적을 저술하였는데, “영원한 지혜서”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183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가톨릭 구슈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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