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2.28)◀
신분 : 수도원장, 은수자
연대 : 460년
지역 : 콘다트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가 은수생활을 하기 위하여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에 위치한 쥐라(Jura) 산의
숲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35세였다. 그는 카시아누스(Cassianus)가 쓴 "사막 교부들의 생애"와 몇 가지 도구 그리고 종자들을 가지고
갔다. 그는 움막을 짓고 기도하면서 지냈고, 땅을 일구어 파종하고 독서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야수들과 사냥꾼들 때문에 이 첫 번째 은둔소는
파괴되었다. 이럴 즈음에 그의 형제인 성 루피키누스(Lupicinus, 3월 21일)가 합류하였다. 이 두 사람은 콘다트 수도원을 세웠고,
자매들을 위해서는 보므(Beaume) 수도원을 세워주었다. 이리하여 그들 주위에는 많은 제자들이 생겼으므로 성 로마누스가 원장으로 지도하게
되었다.
그는 기도시간 외에는 주로 노동을 하여 생계를 꾸렸으며, 육식은 금했지만 계란은 허용하였다. 그리고
의복은 동물의 가죽으로 손수 지어 입었다. 성 로마누스는 오늘날의 생모리스(Saint-Maurice)를 순례했고, 테반 지역의 순교성지를
둘러보기도 하였다. 한 번은 그가 스위스 주네바(Geneva)에 갔을 때 그곳의 주교와 시민들이 그를 열렬히 환영하여 스스로도 놀랐다고 한다.
생을 마감한 성 로마누스는 보므 수도원에 묻혔고, 성 루피키누스는 그보다 20년을 더 살다가 선종하였다.
▶루엘리노(2.28)◀
신분 : 주교
연대 : 6세기경
지역 : 트레귀에
성 루엘리누스(또는 루엘리노)는 성 투드발(Tudwal, 12월 1일)을 계승하여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 트레귀에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루엘린(Ruellin)으로도 불린다.
▶루피노(2.28)◀
▶마카리오(2.28)◀
▶유스토(2.28)◀
▶테오필로(2.28)◀
신분 : 순교자
연대 : 250년
성 마카리우스(Macarius)는 성 유스투스(Justus), 성 루피누스(또는 루피노),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와 함께 순교하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그릇을 만드는 도공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나 이탈리아의 로마(Rome)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빌라나(2.28)◀ (복녀)
신분 : 부인
연대 : 1332-1361년
지역 : 피렌체
빌라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상인인 안드레아 데 보티(Andreas de'Botti)의 딸로 13세 때에
집을 나와 수녀원으로 들어갔으나 부모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로소 디 피에트로(Rosso di Piero)와 거의
강제로 결혼하였는데, 이때부터 그녀는 세속을 즐기고 향락적인 여성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그녀가 거울을
보았는데, 자신의 모습이 마치 소름끼치는 사탄의 눈처럼 비쳤다고 한다. 두 번, 세 번 더 보았으나 자신의 몰골은 더욱 추악하게 보일 뿐이었다.
이때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죄스런 생활을 깨닫고 단순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도미니코회의 어느 신부에게
고백하였다.
그때부터 그녀는 도미니코회의 재속회원이 되었고, 그녀의 영적 생활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기도와 독서에 열중했는데, 특히 그녀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편지들과 성인전들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한 번은 걸인의 체험을 자기 것으로 할 요량으로 스스로 문전걸식을 하였다. 그녀는 가끔 미사나 영적 담화 도중에 탈혼에 빠졌고,
예언의 은혜를 비롯하여 초자연적인 은혜가 많음이 여러 형태로 드러났다. 사후 그녀의 유해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에 안장되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24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세라피온(2.28)◀
▶체레알리스(2.28)◀
▶카이오(2.28)◀
▶푸풀로(2.28)◀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이집트의 성 카이레알리스(Caerealis)는 성 푸풀루스(Pupulus), 성 카이우스(Cajus), 성 세라피온과 함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성 카이레알리스는 때때로 켈루루스(Cerulus) 또는 켈레리우스(Celerius)로도 불린다.
▶안토니아(2.28)◀ (복녀)
신분 : 과부
연대 : 1400-1472년
지역 : 피렌체
이탈리아 아브루치(Abruzzi)의 라퀼라(L'Aquila)에는 프란치스코 회원 3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데, 이들은 곧 시에나(Siena)의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 5월 20일), 라퀼라의 성 빈첸시오(Vincentius)
그리고 피렌체의 안토니아이다. 안토니아는 어려서 결혼하였으나 불과 몇 년을 살지 못하고 남편을 잃게 되자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살려고
결심하였다.
1429년 마르시아노(Marsciano)의 안젤리나(Angelina, 7월 15일)가 피렌체에
수녀회를 세우고자 두 명의 수녀를 파견했는데, 안토니아는 그 때 새 수도원의 첫 입회자였다. 안토니아는 안젤리나 원장의 지도를 직접 받았으며
성덕이 뛰어났다. 안토니아는 항상 엄격한 규율을 자원하여 실천함으로써 그녀를 사랑하는 이들이 날로 불어났다. 겸손과 인내가 그녀의 뛰어난
성덕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가난의 실천에 있어서는 성 프란치스코의 직제자로 칭송을 받았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47년에 승인되었다.
▶오스왈도(2.28)◀
신분 : 수도승, 대주교
연대 : 992년
지역 : 요크
성 오스왈두스(Oswaldus, 또는 오스왈도)는 영국에 정착한 덴마크 가문 출신으로 캔터베리의 성 오도(Odo, 7월 4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한 뒤 수도원 규칙들을 더 배우기 위하여 프랑스의 플뢰리(Fleury) 수도원에서 생활하였다. 962년 그는 우스터(Worcester)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성 둔스타누스(Dunstanus, 5월 19일)과 성 에텔볼두스(Ethelwoldus, 8월 1일)와 가깝게 지내면서 잉글랜드의 수도원 개혁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본당사제들의 기준을 마련했고, 재교육은 물론 사제 독신제도의 강화를 서둘렀다. 972년 그는 요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지만 우스터 교구에 그대로 머물렀다. 그는 신자들로부터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던 주교였다.
▶프로테리오(2.28)◀
신분 : 총대주교, 순교자
연대 : 457년경
지역 :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성 키릴루스(Cyrillus, 6월 27일)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성 프로테리우스(또는 프로테리오)는 알렉산드리아 정통 그리스도교의 지도자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디오스코루스(Dioscorus)에 의해 수석사제로 임명된 그는 그의 주교가 이단의 신학을 지지하기 시작했을 때 그를 반대하였다. 디오스코루스 주교는 451년 칼케돈(Chalcedon) 공의회에서 단죄되었고, 성 프로테리우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신학적으로 알렉산드리아는 성 프로테리우스를 지지하는 그룹과 디오스코루스와 그의 후임자인 엘루루스(Elurus)를 지지하는 두 개의 그룹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황제군이 이 문제를 진정시키기 위해 개입했을 때 엘루루스는 그 도시에서 쫓겨났고, 성 프로테리우스는 성당에서 살해되었다.
▶힐라리오(2.28)◀
신분 : 교황
연대 : 468년
이탈리아 사르데냐(Sardegna) 섬에서 태어난 성 힐라리우스(Hilarius, 또는 힐라리오)는 461년 교황 성 대 레오 1세(Leo I, 11월 10일)가 서거했을 때 부제였다. 그는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어 같은 해 11월 19일 교황좌에 올랐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개인적인 이력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재임 기간의 주요 업적은 교회규율의 강화 및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선교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힐라루스(Hilarus)로도 불린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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