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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2월 7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2. 7.

라우렌시오(2.7)

신분 : 주교

연대 : 546년

지역 : 시폰토

 

   성 라우렌티우스 마조라누스(Laurentius Majoran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시폰토의 주교로서 492년부터 선종할 때까지 50년을 넘게 교구를 돌보았다. 그는 이탈리아 가르가노(Gargano) 산 위에 성 미카엘(Michael) 성당을 건립하였다.

 

루카(2.7)

신분 : 은수자

연대 : 946년경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의 별명은 '타우마투르구스'(Thaumaturgus,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며 그리스 출신이다. 그러나 출생지는 아이이나(Aegina) 섬이고, 사라센인들의 침공으로 그리스 중북부 지역인 테살리아(Thessalia)로 이주하여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열심하고 순종 잘하는 소년이었고, 양떼를 돌보거나 들일을 거들며 살았다. 그는 가끔 걸인을 먹이기 위해 자신이 굶거나 자기 옷을 벗어 헐벗은 이에게 주곤 하였다. 그 때문에 부친의 분노를 산 적이 많았다고 한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들일을 그만두고 수도자가 되려는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으나 군인들에게 붙잡혀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성 루카에게 묻기를 너는 누구냐 하자, “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또다시 수도자가 되려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래서 그는 코린토스(Corinthos) 교외의 요안닛사(Joannitsa) 산에 은둔소를 짓고 은수자로서 18년을 살았다.

   그는 항상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살았지만 때로는 유혹과 밤새도록 씨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기적을 행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통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다. 그가 임종한 자리는 나중에 성당이 되었는데 소테리온(Soterion)이라 부른다. 소테리온은 기적의 장소라는 뜻이다.

 

리체리오(2.7)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236년

 

   이탈리아 마르케(Marche) 지방의 무치아(Muccia) 태생인 리체리오는 부유한 집안의 자손으로 볼로냐(Bologna)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여기서 팔레로네(Falerone)의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9월 6일)를 만났는데,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가 1222년에 볼로냐에서 행한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고 페레그리누스와 함께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리체리오는 사제품을 받았고 성 프란치스코의 사랑받는 동료가 되었으며 마르케 지방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놀라운 금욕과 고행을 실천하였으며 덕이 출중하였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속에서 리니에리(Rinieri)로 불리고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36년에 승인되었다.

 

리카르도(2.7)

신분 : 왕

연대 : 720년

지역 : 영국

 

   720년 봄 일단의 순례단이 로마(Rome)와 예루살렘 성지를 향하여 떠났는데, 이들은 웨식스(Wessex)가의 사람들로서 부친의 이름은 모르고 그 아들들은 성 빌레발두스(Willebaldus, 7월 7일)와 성 비네발드(Winebald, 12월 18일)였다. 그들은 센(Seine) 강을 따라 루앙(Rouen)에 상륙하여 프랑스의 성지를 둘러보고 로마에 도착했는데, 이때 그들의 아버지는 루카(Lucca)에서 운명하여 성 프리지디안 성당에 묻혔고, 그의 아들 성 빌레발두스는 바이에른(Bayern)의 아이크슈태트(Eichstatt)의 초대주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주교의 부친이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 '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영국의 왕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로마 순교록에는 '영국의 왕 리카르두스'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세(2.7)

신분 : 주교, 은수자

연대 : 372년경

지역 : 사라센

 

   '사라센의 사도'인 성 모세(Moyses)는 아랍 사람으로 오랫동안 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의 사막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이 지방은 주로 사라센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땅으로 별을 섬기는 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주교 루키우스(Lucius)는 그를 주교로 축성하여 선교 사업을 주도하기를 희망하였으나 그가 아리우스파(Arianism)에 속한 주교였기 때문에 성 모세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 후 성 모세는 정통교리를 따르는 주교가 되었는데, 그의 주요 업적은 로마인과 사라센인 간의 평화를 유지시킨 것이다. 사라센이란 말은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시로-아라비아(Syro-Arabia) 사막의 유목민에게 붙인 이름이다.

 

빌리암 솔트무슈(2.7)

 

신분 : 수사, 순교자

연대 : 1593년

 

   야고보 살레(Jacobus Sales)는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 태생으로 부친의 도움으로 빌롱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가 17세 때에 수련자가 되었다. 그리고 빌리암 솔트무슈는 그 대학에 고용된 젊은이였으나 나중에 평수사가 되었다. 그 후 야고보는 파리(Paris)에서 수학하던 중에 인도 선교를 지망하였다. 그런데 야고보의 설교 능력과 지도력을 인정한 장상은 그를 보내려다가 취소하고 오버나스(Aubenas)로 파견하였다. 이때 빌리암이 야고보를 수행하였다. 이 지역은 캘빈파가 주도하는 지역이었다. 야고보의 선교가 매우 성공적인 조짐을 보이자 캘빈파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야고보 신부를 난자하였고, 빌리암은 그의 시신을 움켜잡은 채 운명하였다. 빌리암 솔트무슈는 윌리엄 솔트무슈로도 불린다. 그들은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다.

 

아나톨리오(2.7)

신분 : 주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카오르

 

   성 아나톨리우스(또는 아나톨리오)의 유해는 프랑스 베르됭(Verdun)의 성 미하이엘(Mihiel) 수도원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프랑스 카오르의 주교였다고 전해지나 그의 생애에 대해 확실히 기록되거나 알려진 것은 없다.

 

아다우코(2.7)

신분 : 순교자

연대 : 303년경

 

   이탈리아의 귀족 출신인 성 아다우쿠스(또는 아다우코)는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의 황제궁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수행하던 중 그리스도인임이 밝혀져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그는 황제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의 명에 따라 프리지아의 많은 신자들과 함께 화형을 당했다.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소도시 프리지아에는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군인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하였다. 군인들이 불을 질러 남녀노소 모두 죽었는데,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부르며 순교하였다.'

 

아우굴로(2.7)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303년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순교록 목록에 성 아우굴루스(또는 아우굴로)는 주교로 기록되어 있다. 그에 대한 다른 묘사는 그가 순교자로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런던(London)에서 순교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성인전 작가들은 보통 그를 노르망디(Normandie)의 성 아울레(Aule)와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그는 또한 아우구리우스(Augurius)로도 불린다.

 

안토니오(2.7)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381-1461년

지역 : 스트론코네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 스트론코네에서 프란치스코 재속 3회원이던 루이지와 이사벨라 비치의 아들로 태어난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순탄하게 프란치스코회 평수사로서 수도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12세였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던 이 소년은 스스로 엄격한 생활을 선택하고 또 자발적인 기도를 즐겨하는 작은 수도자였다. 26세 때에는 그가 피에졸레(Fiesole)의 수련장인 피렌체(Firenze)의 토마스 벨라치(Thomas Bellacci)를 도와드릴 만큼 크게 성장하였고, 그 후 그가 이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는 소위 프란치스코회 내부의 ‘영적인 형제’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또 사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0여 년 동안이나 선교활동에 가담하였다. 후일 그는 카르체리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30여 년 동안이나 극도의 고행을 통하여 겸손의 화신이라 불릴 만큼 높은 덕을 쌓았다. 그는 1461년 2월 7일 80세의 일기로 역사적인 수도원인 아시시(Assisi)의 산다미아노(San Damiano)에서 선종했다. 그는 1687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야고보 살레(2.7) (복자)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1593년

 

   야고보 살레(Jacobus Sales)는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 태생으로 부친의 도움으로 빌롱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가 17세 때에 수련자가 되었다. 그리고 빌리암 솔트무슈(William Saultemouche)는 그 대학에 고용된 젊은이였으나 나중에 평수사가 되었다. 그 후 야고보는 파리(Paris)에서 수학하던 중에 인도 선교를 지망하였다. 그런데 야고보의 설교 능력과 지도력을 인정한 장상은 그를 보내려다가 취소하고 오버나스(Aubenas)로 파견하였다. 이때 빌리암이 야고보를 수행하였다. 이 지역은 캘빈파가 주도하는 지역이었다. 야고보의 선교가 매우 성공적인 조짐을 보이자 캘빈파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야고보 신부를 난자하였고, 빌리암은 그의 시신을 움켜잡은 채 운명하였다. 빌리암 솔트무슈는 윌리엄 솔트무슈로도 불린다. 그들은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다.

 

에우제니아 스멧(2.7) (복녀)

신분 : 설립자

연대 : 1825-1871년

 

   에우게니아(또는 에우제니아) 스멧은 1825년에 프랑스의 릴(Lille)에서 출생하였고, 1856년에 파리(Paris)에서 거룩한 영혼들의 협력자회를 설립하였으며 1871년에 운명하였다. 그녀는 1957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다.

 

에지디오 마리아(성 요셉의)(2.7)

신분 : 수사

연대 : 1729-1812년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Puglia)의 타란토(Taranto) 출신인 성 요셉(Josephus)의 성 에지디우스 마리아(Aegidius Maria, 또는 에지디오 마리아)는 끈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곤란한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25세 때에 그는 성 베드로 알칸타라(Petrus Alcantara)의 작은 형제회에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다. 거기서 그는 문지기로 일생을 보내면서도 병자들에게 깊은 사랑을 전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서 큰 성덕을 쌓았다. 그는 나폴리(Napoli) 시내를 돌며 탁발을 하였으며, 그의 손에는 항상 애긍으로 얻은 음식들이 들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성 요셉에 대한 신심이 탁월하여 요셉 신심을 크게 전파하였다. 그는 사람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보였으나 하느님의 눈에는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질(Giles)로도 불린다. 그는 1888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율리아나(2.7)

신분 : 과부

연대 : 435년

지역 : 볼로냐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는 성녀 율리아나의 신심과 애덕을 높이 칭찬하였다. 성녀 율리아나는 사제가 되려는 남편을 위해 서로 합의하에 헤어졌다. 그 후 성녀 율리아나는 네 명의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양육하고,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며 살았다.

 

크리솔리오(2.7)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4세기

 

   아르메니아(Armenia) 출신의 성 크리솔리우스(또는 크리솔리오)는 북동부 갈리아(Gallia) 지방의 복음화를 위해 선교사로서 활동하였으며, 그곳에서 주교품을 받은 듯하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 오늘날의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의 유해는 벨기에의 브뤼헤(Bruges)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테오도로(2.7)

신분 : 군인, 순교자

연대 : 319년

지역 : 헤라클레아

 

   소아시아 지방 폰투스(Pontus)의 헤라클레아 주민인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는 리키니우스(Licinius) 황제군의 장군이자 폰투스와 인근 지역의 지방장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드러나 고문을 받고 리키니우스 황제의 명에 의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테오도루스는 가끔 '테오도루스 장군'이라고도 불리며 그리스인들이 '가장 위대한 순교자'라고 부르는 4명의 순교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아마세아(Amasea)의 성 테오도루스 티로(Theodorus Tiro, 11월 9일)와 동일인물로 보인다.

 

토마스 셔우드(2.7)

신분 : 순교자

연대 : 1551-1578년

 

   영국 런던(London)에서 태어난 토마스 셔우드는 프랑스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에서 공부하지는 않았으나, 런던에서 스스로 사제 수업을 해오던 차에 자기 집을 자주 드나들던 어느 가톨릭 신자 아들의 밀고에 의해 런던탑에 갇혔다. 6개월 후 그는 영국 교회에 대한 여왕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주 예수님, 저는 당신을 위하여 이 같은 고통을 받는 것도 부당합니다. 하오나 당신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저에게도 풍성하게 허락하소서." 그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다.

 

피델리스(2.7)

신분 : 주교

연대 : 570년

지역 : 메리다

 

   아시아 태생의 성 피델리스는 일단의 상인들과 함께 에스파냐로 가서 메리다에 정착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그 도시의 주교인 성 바오로(Paulus)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를 계승하여 메리다의 주교가 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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