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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월 31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 31.

니체타(1.31)

신분 : 주교

연대 : 1107년경

지역 : 노브고로트

 

  키예프(Kiev) 출신인 성 니케타(또는 니체타)는 젊은 나이에 그 지방의 동굴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독수자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경험 많은 노원장의 충고마저 마다하고 무리하게 행동함으로써 유혹에 빠진 적이 있었다. 천사를 가장한 사탄이 출현하여 기도 대신에 독서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읽기 시작한 것은 구약성서였다. 그는 상당한 지식을 갖추게 되자 이제 마음이 교만해져서 백성들에게 충고하며 가르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끝내 꽃피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성서 지식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늦게나마 깨달은 그는 겸손하게 죄과를 뉘우치고 다시금 기도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는 1095년에 노브고로트의 주교로 간택될 정도로 덕이 높아졌다. 그는 항상 기도만을 가르치고 기도만 할 정도로 기도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기도의 모범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는 12년간 주교직을 수행했는데, 그의 유해는 후일 '거룩한 지혜' 성당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루도비카 알베르토니(1.31)

신분 : 과부, 3회원

연대 : 1474-1533년

 

   셩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아(Ludovica Albertonia)는 태어나자마자 부친을 여의었고, 모친은 재혼하였기 때문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원래 좋은 집안 딸이었으므로 같은 귀족이자 부유한 집안 아들인 야고보 데 치타라(Jacobus de Citara)와 결혼하여 세 딸을 두었으나 그만 남편이 사망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성녀 루도비카는 작은 형제회 3회 회원의 수도복을 입고 기도에만 전념하였다. 특히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묵상을 좋아하였으며, 그 나머지 시간에는 병자를 돌보거나 로마(Rome)에 있는 일곱 개의 대성당을 조배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녀는 철저히 가난하게 살았고 겸손의 덕을 닦았다. 그래서 그녀는 참으로 평화스런 나날을 보냈고,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가끔씩 탈혼의 은혜를 내려주셨다. 특히 공중에 떠 있는 은혜를 받았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671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승인되었다.

 

마르첼라(1.31)

 

신분 : 과부

연대 : 410년경

지역 : 로마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모든 성인과 로마 부인들의 영광”이라고 칭송했던 사람이 바로 성녀 마르첼라이다. 그녀는 7개월간의 결혼생활 끝에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 후 집정관 케레알리스(Cerealis)의 구혼을 거절하고 동방 은수자들의 생활을 본받으려고 결심하였다. 그녀는 고기와 술을 끊고 주로 독서에 열중하면서 순교자의 성당을 방문하며 기도하였다. 그녀의 표양으로 감동된 여러 부인들, 특히 귀부인들이 그녀의 지도를 받으려고 모여들자 단 기간 내에 로마에 이런 공동체가 여러 개 생기게 되었다. 그녀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성 히에로니무스의 지도를 받곤 하였다. 그녀는 410년 로마를 약탈하러 온 고트족에게 붙잡혀 그녀의 막대한 재산을 숨겨둔 곳을 찾으려는 그들로부터 큰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그녀가 이미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 것이 알려졌을 때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사랑하던 제자인 성녀 프린치피아(Principia, 5월 11일) 때문에 곤경에 처한 일도 있었지만, 결국은 그녀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

 

마르티노(1.31)

신분 : 순교자

연대 : 1156년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Coimbra) 근교에서 태어난 성 마르티누스 마누엘(Martinus Manuel, 또는 마르티노)은 시우레(Siure) 성당의 수석사제로서 헌신하던 중 사라센인들에게 체포되어 에스파냐 코르도바(Curdoba)의 감옥에 갇혔다. 그곳에서 혹독한 취급을 받은 그는 결국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메트라노(1.31)

신분 : 순교자

연대 : 250년

지역 :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성 메트라누스(또는 메트라노)의 주교이자 동시대 사람인 알렉산드리아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1월 17일)는 데키우스 황제 때 일어난 메트라누스의 순교 사실 전말을 생생하게 남겨놓았다. 그는 메트라스(Metras)로도 불린다.

 

바울라 감바라 코스타(1.31) (복녀)

신분 : 부인

연대 : 1473-1515년

 

   바울라 감바라 코스타는 이탈리아의 브레시아(Brescia)에서 태어났고, 12세 때에 베나스코(Benasco)의 루이스 코스타(Louis Costa) 백작과 결혼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작은 형제회의 유명한 사제였던 키바소(Chivasso)의 안젤루스(Angelus, 4월 12일)의 도움과 자문을 받았으므로, 아내가 자기 집으로 오기 전에 먼저 안젤루스(Angelus) 신부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매일 첫 새벽에 일어나 아침기도와 로사리오를 바쳤고, 그 얼마 뒤에는 인근의 프란치스코 성당에 찾아가서 미사에 참례하였다. 오후가 되면 그녀는 성모소일과를 바쳤고, 저녁에는 밤기도와 로사리오 기도를 또 바쳤다. 그녀는 1488년에 첫아들을 낳았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는 15세였다. 이 젊은 아내는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걸인들에게 많은 음식을 나누어 줄만큼 사랑이 차고 넘쳤다.

   한편 남편은 행실이 나쁜 다른 젊은 여자를 사귀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나쁜 사건이 터졌다. 그 젊은 여자가 독살된 듯 죽어버린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바울라는 끝까지 인내하여, 오히려 남편을 감복시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녀의 자선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길을 가다가 걸인을 만나면 입고 있던 겉옷과 신발까지 벗어 주었으므로 가끔 맨발로 걸어가는 그녀를 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42세에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45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승인되었다.

 

빅토르(1.31)

사투르니노(1.31)

티르소(1.31)

신분 : 순교자

연대 : 250년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와 성 티르수스(Thyrsus) 그리고 성 빅토르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한 이집트 사람들이다.

 

아담난(1.31)

신분 : 수사

연대 : 680년경

지역 : 콜딩헴

 

  스코틀랜드 남동부 베릭셔(Berwickshire) 해안에 있는 콜딩햄 수도원은 남녀 수도자를 위한 이중 수도원인데, 그들 가운데 아일랜드 사람인 성 아담난이 가장 돋보인다. 한 번은 그가 동료들과 함께 수도원으로 돌아오던 중 수도원 건물 앞에 멈춰 서서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동료들을 둘러보면서 "이 모든 건물이 곧 불타 없어집니다"고 말하였다. 다른 수도자가 이 예언을 당시의 원장이던 성녀 에베(Ebbe, 8월 25일)에게 보고하였고, 성 아담난은 성녀 에베에게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설명하였고 그것은 사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98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아이다노(1.31)

 

신분 : 주교

연대 : 626년경

지역 : 페른

 

  성 아이다누스(Aidanus, 또는 아이다노)의 생애에 대한 기록들은 대개가 전설적인 자료에 의한 것이다. 메독(Maedoc)으로도 알려진 그는 아일랜드 북서부의 코노트(Connaught)에서 태어났으며, 출생과 어린 시절에 이상한 조짐들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 그는 렌스터(Leinster) 수도원에 머물렀는데, 그 후 성서를 공부하기 위하여 웨일스(Wales)의 성 다윗(Saint David) 수도원으로 갔다. 그는 그 수도원에서 몇 년을 머무르는 동안 작센(Sachsen)의 침공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물리쳐 유명하게 되었다. 아일랜드로 돌아온 후 그는 웩스퍼드(Wexford)의 페른에 수도원을 세웠고, 마침내 페른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기적 이야기들은 다분히 전설적인 것이지만, 그는 동물을 비롯하여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표현할 줄 아는 위인임에는 틀림없다.

 

에우세비오(1.31)

신분 : 순교자

연대 : 884년

지역 : 장크트갈렌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그는 다른 수많은 순례자들처럼 고향을 떠났다가 스위스의 유명한 장크트갈렌 수도원에서 수도복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포랄베르크(Vorarlberg) 교외 성 빅토르 산(Mount Saint Victor)의 은둔소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약 30년이 지난 후의 어느 날 인근 마을의 무신론자들이 몰려와서 큰 낫으로 그를 살해하였다.

 

요한(1.31)

치로(1.31)

신분 : 순교자

연대 : 303년경

 

   성 키루스(Cyrus)와 성 요한(Joannes)에 대한 기록은 신빙성은 부족하지만 높이 공경을 받아온 성인들이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태생인 성 키루스는 처음에 의사였다가 나중에 은수자가 되었다고 하며 성 요한은 아랍계로 군인이었다고 한다. 아타나시아(Athanasia)란 어느 신자 부인과 그녀의 세 딸이 신앙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들은 그 부인과 자녀를 찾아 위로하고 도와주다가 같은 죄목으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이집트 카노푸스(Canopus) 근방 메누티스의 이시스(Isis) 신전 예배를 분쇄하기 위하여 성 키릴루스(Cyrillus)가 성 키루스와 성 요한의 유해를 대신하여 모셨다. 이때부터 그곳은 유명한 성지가 되었다. 그 후 성 키루스와 성 요한의 유해는 로마(Rome)로 옮겨졌다.

 

울피아(1.31)

신분 : 동정녀

연대 : 750년

지역 : 아미앵

 

  성녀 울피아는 연로한 은수자인 성 도미티우스(Domitius, 10월 23일)의 지도하에 은수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두 성인 성녀는 생아쉘(Saint-Acheul) 지방에서 성모 성당을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냈다. 성 도미티우스가 일찍 일어나서 그녀의 움막 문을 지팡이로 두드리면 기도 시간이었다고 한다. 한 번은 개구리가 너무나 울어대서 성녀 울피아가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해 성인의 지팡이 소리도 못들은 채 잠을 잔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성인에게 요청하여 지팡이로 문을 두드리지 말도록 하고, 자기 스스로 기도시간을 정확히 지켰다고 한다. 그녀는 프랑스 아미앵의 수호성인처럼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도미티우스는 신부 또는 부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율리오(1.31)

신분 : 신부

연대 : 390년?

지역 : 노바라

 

  성 율리우스(또는 율리오)는 신부이고 그의 형제 율리아누스(Julianus)는 부제였다. 그들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승인하에 이교도들을 그리스도 교회로 인도하는데 헌신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율리우스는 지팡이를 쥐고 있는 연로한 사제로서 그의 망토 위에 올라 배를 타듯 뱀들이 가득한 호수를 건너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제미니아노(1.31)

신분 : 주교

연대 : 348년

지역 : 모데나

 

   성 게미니아누스(Geminianus, 또는 제미니아노) 부제는 요비니아누스주의(Jovinianism)에 맞서 용맹하게 대항했던 북부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갈리아 지방으로 유배를 가는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가 이탈리아를 지나갈 때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모데나 도시가 훈족의 침략을 받았을 때 그의 중재로 그 도시는 무사할 수 있었다. 교회미술에서 성 게미니아누스는 동정 마리아가 비춰진 거울을 들고 있는 주교로서 묘사되고 있다. 그는 모데나와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의 수호성인이다.

 

조티코(1.31)

치리아코(1.31)

타르시치오(1.31)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타르시키우스(Tarsicius), 성 조티쿠스(또는 조티코), 성 키리아쿠스(Cyriacus)와 동료 순교자들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트리패나(1.31)

신분 : 부인,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키지쿠스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 키지쿠스의 부인인 성녀 트리파이나(또는 트리패나)는 여러 방법으로 고문을 당한 후 성난 황소에게 던져져 그 뿔에 찔려 순교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는 황소와 함께 화로 근처에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때때로 성녀의 순교 장면에서는 샘이 솟아 여성들에게 우유를 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모유 수유하는 어머니들의 수호성녀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사비에르 비안키(1.31)

신분 : 신부

연대 : 1743-1815년

 

  이탈리아의 아르피노(Arpino)에서 태어나 나폴리(Napoli)에서 수학한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 비안키(Franciscus Xaverius Bianchi, 또는 프란체스코)는 부친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 바오로(Paulus)의 율수 성직 수도회(바르나바회)에 입회하여 불과 14세 때 삭발례를 받았다. 1767년에 사제로 서품된 그는 두 대학의 학장으로 소임을 다 하였고, 예언과 기적의 선물을 받았다고 세인들이 칭송하였다. 그의 수도회가 나폴리에서 추방당할 때 그는 건강이 너무 나빠 함께 가지 못하고 결국 나폴리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951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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