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나(1.30)◀
신분 : 동정 순교자
연대 : 228년
지역 : 로마
성녀 마르티나의 전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녀는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222-235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1634년 그녀의 유해가 폐허가 된 기념 성당에서 발견되자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는 지하 성당을 겸비한 이 옛 성당을 복구하였다.
▶마티아(1.30)◀
신분 : 주교
연대 : 120년
지역 : 예루살렘
이스라엘 사람인 성 마티아는 예루살렘의 주교로서 로마 정부의 압제와 로마의 점령에 저항하는 유대인들의 반란이 극심한 격동기에 자신의 교구를 다스렸다.
▶무치아노(1.30)◀
신분 : 수사, 교사
연대 : 1841-1917년
성 무키아누스 마리아 위오(Mucianus Maria Wiaux, 또는 무치아노)는 1841년 벨기에의
멜레(Mellet)에서 신심이 매우 깊은 대장장이와 여인숙 주인이었던 신심 깊은 부인의 여섯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15세인 1856년
나무르(Namur)에서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에 입회하여 세례명인 루도비쿠스(Ludovicus) 대신 로마 순교자인 무키아누스라는 이름을
수도명으로 받았다. 그는 1858년 히메이(Chimay)와 브뤼셀(Brussel)에 잠시 머물다가 말론(Malonne)의 대학으로 부임하여
58년 동안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삶의 전부를 보냈다.
그러나 성 무키아누스 수사에게 이 시간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교육 수도회에 몸담고 있었지만 자신은 재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번외 과목을 가르치고 특별한 교수
방법이 필요 없는 일들을 소임으로 맡았다. 비록 그는 책에 쓰인 지식을 전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가장 적은 재능을 그 능력의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은총을 받았다. 각 개인에게 있어 최고의 것을 끌어내는 능력은 성 무키아누스 수사가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의 삶에 있어서 온화함과 성스러움은 “항상 기도하는 수사”로 인정받는 탁월한 모범이었다.
성 무키아누스의
묘소를 참배하는 관습은 그의 선종 직후부터 생겼다. 벨기에에서 그는 하느님과의 중재자로 알려져 사후 20년도 지나지 않은 1936년부터
시성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1977년 10월 30일 동료 수사 성 미카엘 페브레스 코르데로(Michael Febres Cordero, 2월
9일)와 함께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9년 12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무키아누스의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벨기에의 빛, 그의 수도회의 빛”으로
선포하였다. 벨기에의 주교들은 성 무키아누스에 대해 그가 어떠한 신학적, 영적 명제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이름을 떠올릴만한 무엇도 남기지
않았지만, 일상적인 삶 안에서 그는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 사이에서 사도였으며, 매일의 업무를 성덕으로 이행하여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며
모든 이를 용서했다고 평했다.
▶바르사(1.30)◀
신분 : 주교, 증거자
연대 : 379년
지역 : 에데사
시리아(Syria) 에데사의 주교인 성 바르사는 아리우스파 발렌스 황제에 의해 리비아(Libya) 국경 지대의 서부 이집트로 추방된 후 이국땅에서 사망하였다
▶바르시메오(1.30)◀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250년경
지역 : 에데사
성 바르시메우스(또는 바르시메오)는 로마 순교록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예수님의 72제자 중의 한 명으로 성 유다 타데우스(Judas Thaddaeus, 10월 28일)로부터 이어지는 에데사의 세 번째 주교였다. 그가 순교한 때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재임 기간이었고, 교황 성 파비아누스(Fabianus, 1월 20일)가 교회를 다스리던 시대였다. 그는 많은 이교도들을 개종시켰을 뿐만 아니라, 많은 교우들과 함께 순교한 듯하다.
▶바틸다(1.30)◀
신분 : 왕비
연대 : 680년
잉글랜드(England) 태생의 성녀 바틸다는 641년에 해적들에게 끌려가서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
2세(Clovis II)의 궁중 시종장의 하녀로 팔려갔다. 몇 년 후 그녀의 미모와 탁월한 능력이 눈에 띄게 되어 왕이 그녀를 아내로 삼게
되었다. 이때가 649년이다. 그녀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은 모두 왕이 되어 클로테르 3세, 칠데릭 3세 그리고 티에리 3세가
되었다.
655년에 클로비스 왕이 사망하자 그녀는 섭정이 되어 현명하고도 자비롭게 나라를 다스려 칭송을
받았다. 그녀는 수많은 노예를 해방시켰고, 궁성에서 먼 지역 주민들을 따뜻이 보살폈으며, 생드니(Saint-Denis), 코르비(Corbie),
셀레(Chelles) 등에 수많은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665년에 그녀는 수도원으로 은퇴하였다.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가 그녀를 시성하였다.
▶사비나(1.30)◀
신분 : 부인
연대 : 311년
지역 : 밀라노
성녀 사비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보는데 힘쓰고, 그들이 순교한 뒤에는 시신을 찾아 매장하였다. 그녀는 성 나보르(Nabor, 7월 12일)와 성 펠릭스(Felix, 7월 12일)의 무덤에서 기도하는 중에 선종하였다.
▶세바스티아노 발프레(1.30)◀ (복자)
신분 : 신부
연대 : 1629-1710년
지역 : 토리노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베르두노(Verduno) 태생인 세바스티아누스
발프레(Sebastianus Valfre,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소년 때에 이미 사제가 될 결심을 했고, 남의
책을 베껴가면서 부모 몰래 공부하였다. 그가 토리노로 공부하러 갈 때 집에서 준 것은 조그마한 마차 1대 분의 포도주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1651년에 토리노의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었는데, 첫미사는 그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하여
고향 성당에서 지냈다. 그의 첫 임무는 어느 작은 성당의 책임자로서 신심생활을 지도하는 일이었다. 그 후 그는 수련장으로 임명되었고, 40세
때에는 원장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명성은 영혼의 지도에서 얻어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고해소에서 지낸 그는
자기 공동체 회원들뿐만 아니라 만인의 고해신부였다. 그는 영적인 직관력이 뛰어났고, 남의 마음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불신앙과 무관심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사르데냐(Sardegna)의 왕 빅토르 아마데우스 2세(Victor Amadeus II)는 그에 의하여 회개하였다. 한마디로 그의
생애는 진정한 사목자상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언한 날에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때 그의 나이는 81세였다. 그는 18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복되었다.
▶아그리피노(1.30)◀
신분 : 주교
연대 : 180년
지역 : 알렉산드리아
성 아그리피누스(또는 아그리피노)는 성 마르코(Marcus, 4월 25일)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9번째 주교였다.
▶아델렐모(1.30)◀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100년경
베네딕토 회원인 성 아델렐무스(또는 아델렐모) 성인은 프랑스 사람으로 군인 경력을 가졌다. 그는 로마(Rome) 순례 여행을 하던 중 세즈-디외(Chaise-Dieu) 수도원의 원장이던 성 로베르투스(Robertus, 4월 17일)의 영향을 받고 수도자가 되었다. 이윽고 그는 순례를 다 마친 후 입회하였고, 그 얼마 후에 원장으로 피선되었다. 그의 성덕과 학덕이 비범하다는 소문을 들은 카스티야(Castilla)의 왕후 부르고뉴(Bourgogne)의 콘스탄스가 그를 부르고스(Burgos)로 초빙하고, 남편인 왕으로 하여금 그를 위하여 수도원을 짓게 하였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무어인들의 개종사업에 적극 개입하여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르멘타리오(1.30)◀
신분 : 주교
연대 : 450년?
지역 : 앙티브
성 아르멘타리우스(또는 아르멘타리오)는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 앙티브의 첫 번째 주교였다. 프랑스 남동부 드라기냥(Draguignan)의 유서 깊은 성당이 그에게 봉헌되었다.
▶아르멘타리오(1.30)◀
신분 : 주교
연대 : 711년
지역 : 파비아
성 아르멘타리우스(또는 아르멘타리오)가 이탈리아 파비아의 주교직에 있는 동안 그의 주교좌는 밀라노(Milano) 대주교좌의 재치권으로부터 벗어나 즉시 로마 교회에 속하게 되었다.
▶알데군다(1.30)◀
신분 : 동정녀
연대 : 635-684
지역 : 모뵈주
메로빙거 왕족인 성 발베르투스(Walbertus, 5월 11일)와 성녀 베르틸리아(Bertilia, 1월 3일)의 자녀로 태어난 성녀 알데군디스(또는 알데군다)는 아이놀트(Hainault) 태생이다. 그녀는 양친의 결혼 권유를 뿌리치고 언니인 성녀 발데투르디스(Waldetrudis, 4월 9일)의 수도원으로 가서 살았다. 그 후 그녀는 모뵈주 근교의 어느 은둔소로 들어가서 일생을 기도와 고행 속에서 보냈다. 성녀 알데군디스는 유방암을 앓았는데,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큰 신뢰심을 보여 그녀의 성덕이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알렉산데르(1.30)◀
신분 : 노인, 순교자
연대 : 3세기
성 알렉산데르는 데키우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그는 덕망있고 명예로운 노인이었다. 일부 성인전 작가들은 그를 예루살렘(Jerusalem)의 성 알렉산데르(3월 18일)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 교회 미술에서 성 알렉산데르는 십자가의 고통을 당한 존경스런 초기 그리스도인으로 묘사된다. 그는 아마도 황제 앞에서 이교도의 제단을 짓밟거나 이교신상을 쓰러뜨린 것으로 보인다.
▶투디(1.30)◀
신분 : 동정녀
연대 : 5세기
웨일스(Wales) 태생의 성녀 투디는 영국 웨일스 남서부 디버드(Dyfed) 지방에서 공경을 받는 동정녀이다.
▶펠리치아노(1.30)◀
▶필리피아노(1.30)◀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지역 : 아프리카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또는 펠리치아노)와 성 필리피아누스(Philippianus)는 124명의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성 필리피아누스는 필라피아누스(Philappianus)로도 불린다.
▶하베릴라(1.30)◀
신분 : 동정녀
연대 : 1100년경
지역 : 메르로
성녀 하베릴라는 수도회에 입회하지는 않았지만 스위스 메르로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장의 지도하에 그 근방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녀는 하브릴리아(Habrilia)로도 불린다.
▶히폴리토(1.30)◀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250년?
지역 : 안티오키아
성 히폴리투스(또는 히폴리토)는 안티오키아에서 존경을 받는다. 로마 순교록에 있는 상세한 내용들은 로마(Rome)의 성 히폴리투스(8월 13일)의 이야기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가톨릭 굿뉴스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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