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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월 28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 28.

글라스티아노(1.28)

신분 : 주교

연대 : 830년

지역 : 파이프

 

   스코틀랜드의 파이프 지방에서 태어난 성 글라스티아누스(Glastianus, 또는 글라스티아노)는 파이프 교구의 주교로서 픽트(Pict) 사람들과 스코틀랜드 사람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종식을 중재하였고, 픽트 사람들이 점령되었을 때 그들의 권익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레오니데(1.28)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

 

   성 레오니데와 동료 순교자들은 이집트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하였다. 이들은 성 필레몬(Philemon, 3월 8일)과 성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3월 8일)와 관련이 있다.

 

레우치오(1.28)

칼리니코(1.28)

티르소(1.28)

신분 : 순교자

연대 : 251년

 

   성 티르수스(Thyrsus), 성 레우키우스(또는 레우치오)와 성 칼리니쿠스(Callinicus)는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ia)의 아폴로니아(Apollon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옮겨졌다가 그 후에 에스파냐와 프랑스로 모셔졌다. 그 이유는 성 티르수스가 모자라빅(Mozarabic) 전례의 성무일도에 등장하고, 또한 그가 고대 프랑스 바스 알프(Basses Alpes)의 시스테롱(Sisteron) 주교좌 성당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이다.

 

루지에로(1.28)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237년

지역 : 토디

 

   토디의 루지에로의 생애는 거의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1216년에 천사적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로부터 직접 수도복을 받은 초기의 작은 형제회 회원이란 사실 뿐이다. 그는 필립바 마레리아(Phillippa Mareria, 2월 16일)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리에티(Rieti)에 클라라회 수도원을 세우고 지도할 때 영적 지도자로 활약했고, 1237년 1월 5일에 토디에서 선종했다.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그에 대한 공경은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로제르(Roger)로도 불린다.

 

리카르도(1.28)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1169년

지역 : 보첼르

 

   영국 사람인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시토회 수도승이었다. 그는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8월 20일)에 의해 프랑스의 캉브레(Cambrai) 근방 보첼르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바울리노(1.28)

신분 : 주교

연대 : 726-804년

지역 : 아퀼레이아

 

   학자로도 존경받던 성 바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는 776년부터 샤를마뉴(Charlemagne)의 궁중 관리로 있으면서 요크(York)의 알퀴누스(Alcuinus, 5월 19일) 등과 가까이 지낸 유명 인사였다. 787년 그는 자기 고향 근교인 이탈리아 아퀼레이아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매우 활동적인 성품을 지녔던 그는 많은 교회를 세웠고, 아바르족(Avar, 5-9세기에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앙유럽에서 활동한 몽골계 유목민족)을 위해 선교사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시와 찬미가 등의 저술 활동도 하였다. 17세기 이전까지는 그의 축일을 그가 사망한 날인 1월 11일에 기념하였다.

 

발레리오(1.28)

신분 : 주교

연대 : 315년

지역 : 사라고사

 

   에스파냐 사라고사의 주교인 성 발레리우스(또는 발레리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추방당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살아남아서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칙령이 반포된 후 자신의 교구로 되돌아왔다. 사라고사의 성 빈첸시오(Vincentius, 1월 22일)는 그의 부제였다.

 

베드로 토마스(1.28)

신분 : 주교

연대 : 1305-1366년

지역 : 코스탄티노풀

 

   성 베드로 토마스(Petrus Thomas)는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Gascogne)의 브레이유(Breil)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성당도 없었지만, 다행히 카르멜회와 연관을 맺게 되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콩동에서 수련을 시작하였다. 1342년 그는 카르멜회의 총경리가 되었다. 이 직책 때문에 그는 아비뇽(Avignon)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교황이 머무는 곳이라 즉시 그의 성덕이 고위성직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는 설교에도 매우 뛰어났으므로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의 장례식에서 강론하도록 초청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제노바(Genova), 밀라노(Milano), 베네치아(Venezia)의 교황대사로서 힘든 정치적 문제들을 원만히 타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그는 1354년에 파티(Patti)와 리파리(Lipari), 1359년에 코론(Coron), 1363년에 칸디아(Candia)의 대주교 그리고 1364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명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교황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를 위해서 세르비아, 헝가리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여행하면서 투르크족에 대항할 십자군을 조직하였다. 136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공격하는 원정대에 참가하여 화살을 맞고 심한 부상을 당한 그는 3개월 뒤에 키프로스(Cyprus)에서 운명하였다. 그래서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는 지방도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608년에 승인되었다.

 

아마데오(1.28) (복자)

신분 : 주교

연대 : 1110-1159년

지역 : 로잔

 

   프랑코니아(Franconia)의 왕가 출신인 아마데우스(또는 아마데오)는 1110년에 도피네(Dauphine)의 샤트(Chatte) 성에서 태어났다. 그가 8살이 되었을 때 그의 부친인 클레르몽(Clermont)의 아마데우스(1월 14일)가 본느보(Bonnevaux)의 시토 수도원에 입회하자, 그 역시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얼마 후 부친과 함께 클뤼니(Cluny) 수도원으로 옮겨갔다. 그 후 1144년 그는 교황 루키우스 2세(Lucius II)에 의하여 스위스 로잔의 주교로 임명되어 교구 발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특히 그의 설교는 당대의 명성을 얻기에 충분하였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적인 공경은 이미 18세기 초에 시작되었고, 1903년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승인되었다.

 

안토니오(1.28) (복자)

신분 : 수사

연대 : 1260-1350년

지역 : 아만돌라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아스콜리피체노(Ascoli Piceno) 근교에서 태어나 1306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에 입회하였다. 그때 톨렌티노(Tolentino)의 성 니콜라우스(Nicolaus, 9월 10일)는 그를 일컬어 수도생활의 귀감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는 특히 인내심이 뛰어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며, 그의 전구로 이루어진 기적들이 수없이 보고되어 있을 정도로 덕이 높았다. 그는 9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59년에 승인되었다.

 

안티모(1.28)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8세기

지역 : 브랑톨

 

   성 안티무스(또는 안티모)는 769년 샤를먀뉴(Charlemagne)에 의해 설립된 브랑톰 수도원의 초대원장 중의 한 명이었다. 그 수도원은 817년 노르만족의 침공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야고보(1.28) (복자)

신분 : 자선가, 순교자

연대 : 1304년

 

   야고보(Jacobus)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키우시(Chiusi) 부근의 치타 델레 피에베(Citta delle Pieve)에서 어느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제가 될 마음을 굳히고 엄격한 생활부터 시작하였다. 고향 근방의 폐허화된 어느 성당을 수리하면서부터 그는 병자들을 돌보려는 마음을 굳히고 집을 수리하여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재산과 법률 지식을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선기금을 부정하게 착복한 키우시의 주교 때문에 구호소가 점점 황폐화되어 가는 것을 보고 그 기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일반법정과 교회법정 모두에 키우시 교구의 주교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으나, 결국 그 주교가 보낸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야고보(1.28)

신분 : 은수자

연대 : 6세기

 

   로마 순교록은 팔레스티나(Palestina)에서 은수자로 기억되는 성 야고보(Jacobus)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신앙을 배반한 후 참회하기 위해 무덤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고, 기적으로 유명해졌으며, 하느님께로 나아간 은수자였다.

 

에지디오(1.28) (복자)

신분 : 은수자

연대 : 1443-1518년

지역 : 로렌자나

 

   이탈리아 나폴리(Napoli)의 로렌자나에서 태어난 에지디우스(또는 에지디오)는 노동자 부모로부터 열심한 신앙을 물려받았으며, 그 역시 어려서부터 농장 노동자로 생활하였다. 어린 시절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장성한 뒤에 고독한 분위기 속에서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성모의 소경당 근교에서 은수자로서 정착하였다. 그는 기도에만 몰두하였고 새와 짐승들이 그의 친구였다. 그 후 그는 작은 형제회의 평수사로 들어갔지만 그전처럼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는 자주 탈혼을 경험하였고,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죽은 지 6개월 동안 시신이 썩지 않았고, 무덤에서도 로사리오를 손에 잡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었으며, 성체조배를 하는 듯 보였다고 한다. 그는 질(Giles)로도 불린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80년에 승인되었다.

 

오도(1.28)

신분 : 주교

연대 : 801-880년

지역 : 보베

 

   프랑스의 보베에서 태어난 성 오도는 한때 군인이 될 사명감을 강하게 느꼈으나, 곧 이를 포기하고 피카르디(Picardy) 지방의 코르비(Corbie)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아들을 가르칠 정도로 학덕으로 유명한 수도승이었고, 851년에는 성 파스카시우스 라드베르투스(Paschasius Radbertus, 4월 26일)를 계승하여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861년에 그는 자기 고향 교구의 주교가 되었고,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북부 프랑스 지역에 있는 교회의 개혁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와 랭스(Reims)의 대주교인 힌크마르(Hincmar) 사이의 중재자로도 활약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요한(1.28)

신분 : 신부, 수도원장

연대 : 425-539년경

지역 : 레오마이

 

   프랑스 수도생활의 개척자로서 공경을 받는 성 요한(Joannes)은 랑그르(Langres) 교구의 디종(Dijon)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레오마이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했는데 제자들이 모여들자 몰래 그곳을 떠나 레랭(Lerins)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그 후 그의 고향 주교의 명으로 무티에생장(Moutier-Saint-Jean) 수도원을 설립하기 위해 레오마이로 되돌아왔다. 그가 오랫동안 그 수도원을 지도하는 동안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율리아노(1.28)

신분 : 주교

연대 : 1127-1208년

지역 : 쿠엥카

 

   에스파냐 부르고스(Burgos)에서 태어난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최초로 자신을 봉헌한 성인이다. 에스파냐 중부 뉴 카스티야(New Castilla)의 쿠엥카에서 알폰소 9세(Alphonso IX) 왕에게 재차 붙잡혔을 때 그는 그 도시의 주교로 내정되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그의 열망 때문에 성 율리아누스는 그의 남은 시간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직접 그의 손으로 번 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그는 비를 청할 때 간구하는 성인이며, 뉴 카스티야의 쿠엥카 교구의 수호성인이다.

 

율리아노 모느와르(1.28) (복자)

 

신분 : 선교사

연대 : 1606-1683년

지역 : 브르타뉴

 

  프랑스의 렌(Rennes) 교구 태생인 율리아누스 모느와르(Julianus Maunoir, 또는 율리아노)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하여 1625년에 예수회원이 되었다. 1637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캐나다의 선교사로 보내주기를 원했으나 오히려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그 지방의 언어를 습득한 후 매우 효과적인 신앙 부흥 운동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였다. 모두가 그의 방법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브르타뉴 지방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였다. 결국 그곳의 주교와 교구사제들도 그의 노력에 동참하여 큰 결실을 거두었다. 그는 1951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다.

 

칸네라(1.28)

신분 : 동정녀

연대 : 530년

지역 : 스캐터리

 

   성 세난(Senan, 3월 8일)의 친구로 알려진 성녀 칸네라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녀는 아일랜드의 밴트리(Bantry) 근교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선종한 후에는 성 세난의 섬으로 알려진 스캐터리 섬에 묻혔다. 그녀가 수도생활을 위해 홀로 강을 건너 성 세난을 찾아왔던 일로 해서 그녀는 선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기도 한다. 그녀는 킨네라(Kinnera)로도 불린다.

 

플라비아노(1.28)

신분 : 순교자

연대 : 304년

지역 : 치비타베키아

 

   로마(Rome) 장관의 부관이었던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라비아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치비타베키아에서 순교하였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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