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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월 21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 21.

메인라도(1.21)

 

신분 : 은수자, 신부, 순교자

연대 : 861년

지역 : 아인지텔른

 

   성 메인라두스(Meinradus, 또는 메인라도)의 이름은 스위스 취리히 호수 근방에 있는 아인지델른의 성 메인라두스 수도원과 관련이 있다. 이곳은 천여 년 이상 순례의 중심지이며 또 엄청난 규모의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성 메인라두스는 라이헤나우(Reichenau) 수도원 섬의 수도자였는데, 836년경에 은둔소에서 살다가 지금의 수도원이 서 있는 곳으로 왔다. 그러나 861년에 그는 강도들에 의하여 살해당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순교자로서도 공경을 받는다. 그가 최초로 은둔자 생활을 하던 곳에 베네딕토 수도원이 세워졌는데, 거대한 성당 안에 있는 동정 성모 마리아상은 이 성인의 작품이라고 전해온다.

 

브리지다(1.21)

신분 : 동정녀

연대 : 6세기

지역 : 킬브라이드

 

   성녀 브리지다는 아앨랜드의 리즈모어(Lismore) 교구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아일랜드의 수호성녀인 킬데어(Kildare)의 브리지다(2월 1일)와 친구 사이로, 킬데어의 브리지다는 적어도 한 번 이상 킬브라이드를 방문하였다. 그녀는 또한 브리가(Briga)로도 알려져 있다.

 

아우구리오(1.21) (부제)

에울로지오(1.21) (부제)

프룩투오소(1.21) (주교)

신분 : 순교자

연대 : 259년

지역 : 타라고나

 

   에스파냐 타라고나 지방의 주교인 성 프룩투오수스(Fructuosus)는 성 아우구리우스(또는 아우구리오) 부제, 성 에울로기우스(Eulogius) 부제와 함께 발레리아누스 황제와 그의 아들인 갈리에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그들은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에 체포되어 집정관 앞으로 끌려갔다. 심문은 간단했다. 왜냐하면 죄수들은 하느님 한 분만을 섬긴다는 말 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화형 선고를 받았다.

   형장으로 끌려가던 중에 신분을 숨긴 펠릭스(Felix)라는 신자 군인이 성 프룩투오수스에게 다가가서 기도를 청하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나는 동방과 서방의 모든 보편 교회를 내 마음 안에 품고 있습니다. 언제나 가톨릭 교회 안에 머물면 당신은 내 기도의 한몫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신자들을 위로하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알바노 바르톨로메오 로(1.21)

신분 : 순교자

연대 : 1583-1642년

지역 : 영국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베리(Bury)에서 태어난 성 알바누스 바르톨로메우스 로(Albanus Bartholomaeus Roe, 또는 알바노)는 케임브리지(Cambridge)에서 공부하던 중에 어느 가톨릭 신자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의 두에(Douai)에서 공부하였으나 규칙을 어겨 쫓겨나자 디외루아르드(Dieulouard)에서 베네딕토 회원이 되었다. 이때 그에게 '알바누스'라는 수도명이 부여되었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됨과 동시에 영국 선교사가 되어 파견되었으나, 4개월 후인 1618년에 체포되어 1623년까지 감옥에 갇혔으나 에스파냐 대사의 협조로 추방령을 받고 두에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영국 선교에 대한 열정 때문에 재차 입국했다가 17년 동안이나 감옥생활을 하던 중 토마스 레이놀즈(Thomas Reynolds, 1월 21일)와 함께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에드워드 스트란샴(1.21) (복자)

신분 : 순교자

연대 : 1586년

 

   에드워드 스트란샴은 영국 옥스퍼드(Oxford) 근교에서 태어나 세인트존스 대학에서 공부하여 문학학사가 되었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기 위해 프랑스의 두에(Douai)와 랭스(Reims)로 갔으나 건강에 나빠져서 귀향하였다가 다시 랭스로 갔다. 그는 1580년에 수아송(Soissons)에서 사제로 서품되었고, 그해 여름에 다른 사제와 함께 영국 선교 길에 올랐다.

   그는 1583년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인 활동을 하였는데, 옥스퍼드 대학에서만도 12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그는 체포의 위험을 느끼고 프랑스에서 2년 동안 머물렀는데, 또 다시 건강이 악화되어 영국으로 잠시 돌아왔다가 비숍게이트 스트리트의 어느 집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에 체포되었다. 그는 6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한 뒤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에피파니오(1.21)

신분 : 주교

연대 : 496년

지역 : 파비아

 

   성 에피파니우스(또는 에피파니오)의 성덕과 기적에 관한 명성은 그 당시 로마 황제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뛰어난 웅변과 사랑으로 수많은 야만인들을 유순하게 만들었고, 전투에서 포로로 체포된 사람들과 그 아내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였으며, 여러 가지 악법을 폐지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놀라운 애덕으로 아사 직전의 국민들을 기근에서 구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안테미우스 황제와 국왕 유릭에게 교회의 대사로 파견되어 전쟁을 억제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이탈리아 왕 오도아케르(Odoacer)에 의해 파괴된 파비아를 재건하였으며, 곤데발드와 고데지실루스에 의하여 포로가 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직접 부르고뉴(Bourgogne)로 갔으나 돌아오는 길에 추위와 열병으로 운명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48세였지만 수많은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사랑의 순교로 단정하였고, 그에 대한 흠모의 정은 성 에피파니우스의 사망 후에도 끊이질 않아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였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붙여진 이름도 많았는데 ‘평화의 수호자’, ‘이탈리아의 영광’, ‘주교들의 빛’ 등이 대표적인 칭호이다. 성인의 유해는 작센(Sachsen)의 힐데셈으로 옮겨 안장되어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파비아의 성녀 호노라타(Honorata, 1월 11일)와는 남매 사이이다.

 

토마스 레이놀즈(1.21) (복자)

신분 : 신부, 순교자

연대 : 1642년

지역 : 영국

 

   영국 옥스퍼드(Oxford)에서 태어난 토마스 레이놀즈의 본 이름은 토마스 그린(Green)이나 당시 박해 중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레이놀즈(Reynolds)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랭스(Reims),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와 세비야(Sevilla)에서 사제 수업을 받은 후 1592년 사제품을 받고 영국 선교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거의 50년 동안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성 알바누스 바르톨로메우스 로(Albanus Bartholomaeus Roe, 1월 21일)와 함께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사지가 잘리는 참혹한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다.

 

파트로클로(1.21)

신분 : 순교자

연대 : 259/275년경

지역 : 트루아

 

   성 파트로클루스(또는 파트로클로)는 프랑스 트루아의 사람으로 매우 부유하고 친절하며, 대단히 자비로운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에 체포되었고, 지방총독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다가 결국 세느(Seine) 강에 던져졌다. 그러나 간신히 목숨을 구한 그는 다시 체포되어 결국 트루아에서 참수되었다. 그는 그에 대한 순교록이 발견된 후 높은 공경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960년에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의 조에스트(Soest)로 이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푸블리오(1.21)

신분 : 주교, 순교자

연대 : 112년경

지역 : 아테네

 

   지중해 몰타(Malta) 섬의 집정관이던 성 푸블리우스(또는 푸블리오)는 사도 바오로(Paulus)가 죄수로서 로마(Rome)로 끌려가던 길에 사도를 영접했던 인물이다. 이때 바오로 사도는 그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그의 부친이 앓던 열병을 고쳐주었다. 전승에 의하면 푸블리우스는 후일 몰타의 초대주교로 임명되었고,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아테네의 주교로 봉직하던 중 트라야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순교하였다고 한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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