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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월 20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 20.

네오피토(1.20)

신분 : 소년, 순교자

연대 : 310년

지역 : 니케아

 

   성 네오피투스(또는 네오피토)는 15세 이하의 소년으로 갈레리우스 황제 때 니케아에서 순교하였다.

 

데시데리오(1.20)

신분 : 주교

연대 : 1194년

지역 : 테루안

 

   성 데시데리우스(또는 데시데리오)는 프랑스 테루안의 제33대 주교로서 생오메르(Saint-Omer) 근교에 시토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1169년 주교로 착좌한 그는 임종을 앞두고 스스로 주교좌에서 물러나 캉브롱(Cambron)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죽음을 준비하였다. 그는 애덕 실천과 기도생활에서 특출하였다고 한다. 그는 디디에르(Didier)로도 불린다.

 

마우로(1.20)

신분 : 주교

연대 : 946년

지역 : 체세나

 

   로마사람 성 마우루스(또는 마우로)는 교황 요한 9세(Joannes IX)의 조카로 사제가 된 후 926년에 라벤나(Ravenna)에 있는 클라세(Classe)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후에 수도원장이 되었다. 934년 그는 체세나 교구의 주교로 성성되었다. 그는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작은 방을 만들고 그곳에서 기도시간을 보냈다. 성인의 사후 그 작은 기도방은 산타 마리아 델 몬테(Santa Maria del Monte)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성장하였다.

 

몰라가(1.20)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655년경

지역 : 페르모이

 

   아일랜드 출신의 성 몰라가는 웨일즈(Wales)의 성 다윗(David, 3월 1일)의 제자로 웨일즈 지방으로 가서 페르모이(Fermoy)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아일랜드 북부 코크(Cork) 근방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는다. 또한 그는 더블린(Dublin)의 발브리간(Balbriggan) 지방과도 연관을 갖고 있다. 성 몰라가는 라이킨(Laicin) 또는 몰라카(Molacca)로도 불린다.

 

베네딕토 리카솔리(1.20) (복자)

신분 : 은수자

연대 : 1107년경

지역 : 콜티보니

 

   베네딕투스 리카솔리(Benedictus Ricasoli, 또는 베네딕토)는 그의 부모가 설립한 발롬브로사 연합회의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그의 부모를 능가할 정도로 뛰어났으며, 콜티보니에서 제자들을 모아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러나 공동체 생활보다는 더욱 엄격한 독수생활을 할 목적으로 수도원에서 조금 떨어진 산에 움막을 세우고 홀로 지냈다.

   그는 예수 성탄 대축일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는 수도원에 머물면서 수도자들을 격려하고 권고하였다. 그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훌륭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열렬하고 또 엄격하였다. 그가 늘 하는 말은 “늘 준비하고 있어라. 사람의 아들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세상을 이탈한 수도자의 본보기로 공경을 받는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7년에 승인되었다.

 

에우스토키아 칼라파토(1.20)

신분 : 수녀, 설립자

연대 : 1434-1468년

지역 : 메시나

 

   시칠리아(Sicilia) 섬 지르젠티(Girgenti, 오늘날의 아그리젠토)의 마태오(Matthaeus, 2월 3일)가 메시나에서 설교할 때 칼라파토(Calafato)의 젊은 백작 부인인 마틸다(Matilda)가 그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후 자신의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작은 형제회의 재속 3회원이 되었다. 얼마 동안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나 하느님께 열렬히 기도드린 응답인지 딸 아이 하나를 갖게 되었는데, 어떤 행인이 백작 부인을 만나서 그 아이는 구유에서 낳아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너무나 귀엽고 아름다운지라 이름을 스메랄다(Smeralda)로 지었다.

   어릴 때부터 열심이던 이 아이는 아버지 베르나르두스(Bernardus)가 적임자를 골라 결혼 서명까지 하였으나 그녀 자신은 동정서원을 발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결혼 상대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부친이 사망하자 스메랄다는 바시코(Basico)에 있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수도원에서 클라라회 수도복을 받고 이름을 에우스토키아(Eustochia)라고 하였다.

   성녀 에우스토키아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가난 정신이 뛰어났고,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과 통회 정신이 극히 열렬하여 전 수녀회의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바시코에서 11년을 살고난 뒤 그녀는 더욱 엄격한 규칙을 원하였는데,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가 성 프란치스코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회 설립을 인가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몬테 베르지네(Monte Vergine)에 수도원을 세우고 회원을 모집하였으나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성녀 에우스토키아는 35세에 선종하였고, 1782년부터 공경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1782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8년 6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메시나에서 시성되었다. 그녀는 에우스토키움(Eustochium)으로도 불린다.

 

에우티미오(대)(1.20)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378-473년

 

   아르메니아(Armenia)의 밀리테네(Militene)에서 어느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대 에우티미우스(또는 에우티미오)는 그곳의 주교 밑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교구 내의 수도원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29세 되던 해에 자신도 예루살렘 교외의 파란(Pharan)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411년경에 그는 그곳을 떠나 동료들과 함께 예리코(Jericho) 근교의 어느 동굴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오므로 그는 이곳의 원장으로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를 임명하고 자신은 더 한적한 곳으로 물러났다.

   이곳에서도 많은 제자들이 생겼고 또 수많은 아랍인들이 포함된 개종자를 얻었다. 이리하여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유베날리스(Juvenalis)는 그를 주교로 축성하여 아랍 개종자들을 사목토록 배려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목에 그를 위한 수도원을 세워주었다. 그는 수많은 군중들에게 설교하여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미망인인 에우독시아(Eudoxia)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에우티미우스의 권고를 듣고 아리우스파(Arianism)에서 물러나 459년에 정통 가톨릭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사막에서 66년을 살다가 운명하였다.

 

페친(1.20)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665년

지역 : 포바르

 

   성 페킨(또는 페친)은 아일랜드 북서부 코노트(Connaught)에서 태어나 성 나티(Nathy, 8월 9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웨스트미스(Westmeath)의 포바르에 수도원을 세워 많은 수도자들을 양성하였다. 또한 그는 무서운 페스트를 아일랜드에서 몰아낸 위대한 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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