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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축일 (聖人)

1월 12일 성인들

by 세포네 2006. 1. 12.

로가토(1.12)

모데스토(1.12)

조티코(1.12)

카스툴로(1.12)

신분 : 순교자

연대 : 연대미상

 

   성 조티쿠스(Zoticus), 성 로가투스(또는 로가토), 성 모데스투스(Modestus) 그리고 성 카스툴루스(Castulus)는 아프리카에서 40명에서 50명에 이르는 군인들이 순교할 때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마르가리타 부르져와(1.12)

 

신분 : 선교사, 설립자

연대 : 1620-1700년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의 트루아(Troyes) 출신인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20세 때에 카르멜회, 클라라회에 차례로 입회를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1652년에 그녀는 캐나다의 빌 마리에 정착중인 프랑스 관리가 자신의 식민지 내의 학교선생을 원하자 그에 동의하고 1653년 퀘벡의 몬트리올(Montreal)에 도착하였다. 그 후 4년 동안 '비교회법적인 수련기'를 마친 그녀는 1658년에 개교한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이 학교는 점차 발전을 거듭하였고, 또 그녀는 '마리아회'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활약하였지만 이로쿼이(Iroquois) 전쟁으로 인하여 잠시 귀국하였다. 그 후 재차 입국한 그녀는 가장 버림받고 가난한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1676년에는 노틀담 수녀회의 법적 설립이 퀘벡의 주교로부터 인가되었다. 그러나 1863년에는 수도원이 화재로 불탔으며 2명의 수녀를 잃는 비극이 있었고, 또 담당 주교와의 견해 차이가 심각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노틀담 수녀회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73세가 된 성녀 마르가리타는 건강과 기력이 점차 쇠하자 은퇴하여 여생을 지내다가 1700년 1월 12일에 선종하였다. 그녀는 1950년 시복되었고, 1982년 4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마르티노(1.12)

신분 : 수사

연대 : 1203년

지역 : 레온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에스파냐 북부 레온에서 태어났다. 그는 산 마르셀로(San Marcelo)에서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한 다음 레온의 성 이시도루스(Isidorus) 수도원으로 옮겼다. 그는 다작의 금욕주의적 저자이다.

 

베네딕토 비스코프(1.12)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628-690년

 

  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국왕 오스위의 궁중 관리이자 귀족 출신인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Benedictus Biscop, 또는 베네딕토)의 본래 이름은 비스코프 바두칭(Biscop Baducing)이었다. 그는 25세 되던 해에 궁중을 떠났다. 그는 653년에 로마(Rome)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성서 연구와 영적인 일에 헌신하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두 번째의 로마 순례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그는 프랑스의 레랭(Lerins)에서 수도자가 되었으며 2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세 번째로 로마를 순례했을 때 교황 성 비탈리아누스(Vitalianus, 1월 27일)가 마침 캔터베리(Canterbury)의 신임 대주교로 선임된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를 수행토록 명하여 이를 성공리에 마쳤다.

   성 테오도루스는 그를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였고, 2년 후에 그는 성인들의 유해, 종교 예술품, 회화, 원고 등을 수집하기 위하여 로마로 귀향하였다. 674년에 그는 웨어(Wear) 강 입구에 수도원을 세워 성 베드로에게 봉헌하였다. 이 건물은 그 당시 영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법으로 지었는데, 프랑스의 장인들이 지어 지금도 유명한 웨어마우스(Wearmouth) 수도원이 되었다. 그리고 682년에는 타인(Tyne) 강에서 6마일 거리에 두 번째 수도원을 짓고 성 바오로에게 봉헌하니 이곳이 자로우(Jarrow) 수도원이다.

   그는 또 위의 두 수도원 수도자들에게 성무일도를 노래하고 그레고리안 성가를 익히도록 음악 전문가를 초빙하였다. 그의 지도하에 두 수도원은 학문과 로마 전례의 중심지로 변하게 되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3년을 중풍으로 침대 위에서 지내다가 1월 12일에 운명하였다. 그의 전기는 성 베다(Beda)가 썼다. 그는 베네트 비스코프(Benet Biscop)로도 불린다.

 

빅토리아노(1.12)

신분 : 수도원장

연대 : 558년

지역 : 아산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던 성 빅토리아누스(또는 빅토리아노)는 아라곤(Aragun)의 아산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그의 사후 40년경에 성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 12월 14일)는 그의 성덕과 기적 그리고 수도원 규칙에 대한 그의 명성 등을 모아 저술하였다. 그러나 자세한 그의 이력은 알 수 없다.

 

아르카디오(1.12)

신분 : 순교자

연대 : 302년경

지역 : 마우레타니아

 

   성 아르카디우스(또는 아르카디오)는 발레리아누스 혹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카이사레아(Caesarea)의 마우레타니아에서 순교한 듯 보인다. 그는 아마도 학덕이 있는 지체 높은 사람인 듯한데, 박해가 임박할 때에 그 지방의 산중에 들어가 은수생활을 하였으나 비밀에 붙이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총독이 군인들을 산속으로 보내어 체포하여 심문관에게 넘겼고, 심문관은 아르카디우스에게 신상 앞에 희생을 봉헌하라고 요구하였다. 그가 완강히 거부하자 형리들이 그의 손을 잘랐으며, 길거리로 끌어내어 공개적으로 참수시켰다. 이때 성 아르카디우스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당신의 지혜를 제게 가르치소서.”

 

안토니오 마리아 푸치(1.12)

 

신분 : 신부

연대 : 1819 -1892년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푸치(Antonius Maria Pucci, 또는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피스토이아(Pistoia)의 포지오네(Poggione) 출신으로 어느 가난한 농부의 일곱 자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고,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마음이 유순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던 그는 특히 본당 일에 열성이었다. 1837년 그는 피렌체(Firenze)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그때 안토니우스 마리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평수사이던 그는 매우 정직하고 모범적인 생활 태도로 말미암아 동료들 가운데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기도와 순종이었고 그 다음이 공부였다.

   이윽고 그는 1843년에 사제가 되자 조그마한 어항인 비아레조(Viareggio)의 본당신부가 되어 일생을 그곳에서 지냈다. 주민들은 그를 '작은 거인'으로 불렀다. 그는 본당의 요구가 있으면 무슨 단체든지 조직하였지만, 항상 거룩한 사랑의 생활이란 목표를 뚜렷하게 심어주었고, 자신이 먼저 모범적인 삶을 보임으로써 신자들도 본받게 헸기 때문이었다. 1854년과 1866년 두 차례에 걸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의 사랑은 더욱 돋보였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직접 간호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어린이와 청년들의 교육을 위한 봉사대를 발족시켜 본당사목의 본보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주민들의 사제'였다. 그는 1962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에우트로피오(1.12)

티그리오(1.12) (신부)

신분 : 순교자

연대 : 404년

 

   성 티그리우스(Tigrius)는 사제였고, 성 에우트로피우스(또는 에우트로피오)는 독서직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아르카디우스 황제 때 대성당과 시 의회 건물의 방화 혐의로 고발되었다. 이것은 그 도시의 지도자인 옵타투스가 우상 숭배자였고 또 그리스도교를 극도로 증오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처단하기 위한 계략이라고 한다. 원래 성 티그리우스는 해방된 노예였으며 그의 인품과 애덕으로 인하여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엘레드(1.12)

신분 : 수도원장, 저술가

연대 : 1110-1167년

지역 : 리보

 

   영국의 헥삼(Hexham) 출신인 성 아일레드(Aelred, 또는 엘레드)는 에텔레드(Ethelred)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신심 깊고 영적인 스코틀랜드의 다윗 왕의 궁중에서 일하는 집사장이었다. 그는 궁중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욱 엄격한 생활을 염원하여 24세 되던 해에 스코틀랜드를 떠나 영국 요크셔(Yorkshire)의 리보에서 시토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1142년 링컨셔(Lincolnshire) 리버스비의 시토 수도원의 원장으로 피선되어 5년을 봉직하다가 다시 리보 수도원의 원장으로 되돌아 왔다.

   설교와 엄격한 생활로 뛰어난 덕행을 쌓았던 그는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여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는 “영적 우정에 관하여”란 저서를 펴냈으며 수많은 설교집과 기도문을 만들었다. “사랑의 거울”이란 책은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다룬 책으로 아주 유명하다.

 

요한(1.12)

신분 : 주교

연대 : 494년

지역 : 라벤나

 

   라벤나의 주교(452-494년) 성 요한(Joannes)은 훈족의 왕인 아틸라(Atila)의 분노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동고트족(Ostrogoths)의 왕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에 의해 도시가 점령되었을 때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였다.

 

조티코(1.12)

신분 : 순교자

연대 : 120년경

지역 : 티볼리

 

   이탈리아 티볼리의 순교자인 성 조티쿠스(또는 조티코)는 성녀 심포로사(Symphorosa, 7월 18일)의 남편인 성 게툴리우스(Getulius, 6월 10일)와 같은 인물로 여겨진다.

 

체사리아(1.12)

신분 : 수녀

연대 : 529년경

지역 : 아를

 

   프랑스 아를의 주교인 성 카이사리우스(Caesarius, 8월 27일)가 512년경에 동정녀와 과부들을 위한 큰 수녀원을 세우고, 그의 동생인 성녀 카이사리아(또는 체사리아)를 초대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녀는 즉시 200명이 넘는 회원들을 위하여 규칙을 만들고, 젊은이들의 교육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데 전념하였다. 이때 수녀들은 고유한 복장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이 수녀회의 성당 장식은 순수한 목재나 천만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였다.

   또 어떤 수녀들은 필사본 제작을 하였다. 수녀들은 매일 두 시간씩 공부하였고, 고기로 만든 음식은 금물이었으나 환자에게는 허용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목욕은 허용하되 남용하지 말도록 하였고, 사순절에는 허가받을 수 없었다. 원장과 그 보조자들만이 집안일에서 면제될 수 있었으며, 봉쇄가 철저하고 영구적이었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는 이런 수도생활을 영위하고 지도하는 성녀 카이사리아를 일컬어 '복되고 거룩한 여인'이라 하였으며, 성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 12월 14일)도 더 할 수 없는 말로 그녀를 칭송하였다.

 

타시아나(1.12)

신분 : 순교자

연대 : 230년경

 

  동방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는 성녀 타티아나(또는 타시아나)는 230년경에 로마(Rome)에서 순교한 교회의 봉사자였다. 그녀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학자들은 성녀 마르티나(Martina, 1월 30일)나 성녀 프리스카(Prisca, 1월 18일)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 역시 부족하다.

 

프로보(1.12)

신분 : 주교

연대 : 591년경

지역 : 베로나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인 성 프로부스(또는 프로보)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가톨릭 굿뉴스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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