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김수환 추기경, "줄기세포 진위 논란 세계에 부끄러워"

by 세포네 2005. 12. 26.

성탄 특별대담에서 참담한 심경 드러내

 

◀ 김수환 추기경은 최근 우리 사회를 충격과 혼란 속에 몰아넣은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과 관련, "세계인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김 추기경은 16일 서울 혜화동 집무실에서 평화신문과 가진 성탄 특별대담에서 "서울대 측이 제기된 의혹을 조사 중이고 관련 여러가지 상황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추기경은 이야기 도중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떨구고, 두 차례나 말을 중단했을 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김 추기경은 "이번 사태는 특정인이나 단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며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우직한 자세"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정직하게 살았는지 진실을 외면하고 살았는지 되돌아 보자"고 호소하면서 "정직과 진실을 되찾는 것만이 진정한 치유책이자 수습책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대담 전문]

 

"어떻게 이런 일이.." 줄기세포 파문에 '눈물'

특별 대담 /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이윤자 편집국장

◀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이윤자 편집국장과 가진 성탄절 특별대담에서 황우석 교수 논문 진실공방, 사학법 개정안 통과에 따른 사학계 반발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세상이 시끄럽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끝 자락에서조차 갈등과 반목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기 예수님이 다시 오셨다. 온통 잿빛처럼 희뿌연 세상속으로 한 줄기 빛이되어 오신 아기 예수님, 과연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실까. 그 성탄절에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은퇴 후 격려와 사랑으로 많은 이들의 벗이 되어 주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어른이 없는 사회, 진정한 어른으로 갈 길을 밝혀 주는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복잡한 세상사속을 살아나가는 신앙인들의 삶의 지혜를 들어보았다.

          ------------------------------------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며칠 전 성탄시기가 상업주의로 얼룩지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셨듯, 캐럴 소리는 요란하지만 성탄의 참 의미에 대한 얘기는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십시오.
 
 "하느님 사랑이 가장 크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성탄입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지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죄로 당신을 거스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고자 외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선사하고,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그런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어둠이 닥쳐도 빛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구원계획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셨듯 용서와 사랑, 나눔을 실천하는 성탄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생명 문제가 올 연말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으로 한국 과학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국제사회의 신뢰도 추락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하겠습니까.
 
 "어제 저녁 TV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황우석 교수 연구성과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솔직히 속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하고 바랐습니다.

 전체 상황이 혼돈 속에 빠져들어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지만 '의혹 일부'가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세계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김 추기경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떨구었다. 침묵은 2~3분간 지속됐다. 추기경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뒤 떨리는 입술로 힘겹게 말문을 다시 열었다.)

 하느님은 한국인에게 좋은 머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머리를 좋게 쓰지 않고….(추기경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가톨릭은 애초부터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인간 생명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저 역시 4일 서울대교구 생명미사에 참례해 그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신문ㆍ방송에는 사기 행위와 관련된 뉴스가 너무 많아요.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기를 치다 붙잡힌 사람 얘기가 수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토를 주지 않으신 대신 똑똑한 머리를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척박한 땅에서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풍족하게 사는 것 아닙니까.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우직한 자세입니다. 우직한 사람은 정직합니다. 왜 한국인은 세계 무대에서 정직하지 못하다는 눈총을 받아야 합니까.

 논문에 관한 진실공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무엇을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를 황 교수 논문에 국한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부정직하게 살았는지, 또 진실을 외면하고 살았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게 바로 치유책이자 수습책입니다."



 ▲생명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배아줄기세포 대신 성체줄기세포라는 대안이 있습니다. 가톨릭계 병원에도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조혈모세포 이식은 이미 임상에서 난치병 환자에게 적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교회가 '그것 봐라. 우리가 옳지 않았느냐'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 역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불치병 치료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성체줄기세포 치료법은 환자 골수나 신생아 탯줄혈액(제대혈)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생명윤리 문제에서도 자유롭습니다. 현재 서울대교구는 이 연구에 100억원 지원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쪼록 가톨릭계 의료진이 힘을 합해 불치병 환자들의 기다림에 응답하는 결과를 내놓기를 기대합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가톨릭 교육계는 물론 국내 사학계 전반이 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설립 이념과 정신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교회는 개정 사학법 상정 단계에서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제 이름으로도 관계 기관에 그 뜻을 전달했습니다. 사학법 개정 목적은 사학비리 척결이라고 합니다. 물론 비리는 척결돼야 합니다.

 하지만 소수의 비리를 전체 다수의 문제로 비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국내 중고등학교 3분의 1을 사학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사립대가 국립대보다 많습니다. 그 많은 사립학교들에서 2%가 비리에 관련돼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걸 사학 전체의 문제인양, 사학이 비리의 온상인양 몰아붙여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사학 전체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서면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2% 사학비리 문제가 얼마나 화급한 사안이길래 전체 목소리를 외면하고 법안을 통과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사학계는 많은 어려움에도 계속 투자해가면서 교육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 여당은 이런 사학계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모두가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의욕을 꺾어놓았습니다.

 앞으로 개방이사제 등이 시행되면 학교 당국과 교사, 교사와 전교조 사이의 갈등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교육 문제를 더 키워놓은 셈입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 삼간 태우는 격'이죠. 따라서 대통령이 사학계 의견을 존중해 법안 거부권을 행사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정치문제는 현안 가운데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아직도 당리당략 차원의 정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정치판이 나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정치인들도 우리 가운데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신뢰받는 정치인에 대한 기대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자녀와 학생에게 진실된 가치관을 심어줘야 합니다. 즉 진실한 인간을 길러 사회로 내보내야 합니다. 그런 교육 환경에서 정치인과 기업가가 나와야 합니다.

 세계인이 한국 사람은 정직하다고 인정하게끔 노력하는 것보다 더 큰 투자는 없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무역 규모가 50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또 자타가 인정하는 IT 강국이 됐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제사회 신뢰를 얻지 못하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제값을 받지 못합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견이 상충할 경우 합의점을 도출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에서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제각기 목소리가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치를 따져가며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또 상대방 얘기를 경청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되면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 사회에 갈등만 증폭될 뿐 시원스레 해결되는 일이 없는 이유는 합의점을 찾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토론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상대방 주장에 수긍할 줄 아는 포용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사회든 가정이든 위기가 닥치면 적절한 해법과 조언을 주고, 때로는 거침없는 질타로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른 없는 사회, 가장 없는 가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심각성은 이미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과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정치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신문을 읽으십시오.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해결 실마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산적한 현안들에 대한 의견은 제각기 다릅니다. 저 역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쓴 신문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세상사를 보고, 판단하고, 해법을 찾아봅니다. 원로의 말이라고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원로든 원로가 아니든 그가 진실된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사설이나 칼럼 등에 보면 사회 현안에 대한 해법이 어느 정도는 제시돼 있습니다. 실제 정치하는 사람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진실된 주장도 많습니다. 그런 주장을 적극 참고해서 사학법안 문제와 이번 황 교수 논문파동 문제를 풀어나가길 바랍니다.

 아울러 교회는 진실된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 합니다. 교회 매스컴은 신문ㆍ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려야 하고, 사제들은 강론대에서 진실을 외쳐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교회 성장세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통계 수치로 볼 때도 신자 증가율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야말로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교회도 부침(浮沈)하면서 성장합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죠.  

 현재의 침체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반성의 기회와 은총의 시간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성장했다고 자기 만족에 빠져 우쭐했습니다. 인간이든 공동체든 자기 만족에 빠지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현재 신자수의 3분의 1은 쉬는 상태이고, 3분의 1은 미사 참례에 소홀합니다. 나머지 3분의 1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숫자만으로도 미사시간에 좌석이 차니까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청소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청소년은 교회 미래이자 한국사회 미래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꼭 전해줘야 합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그들이 복음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난달 청년성서모임 대표자 연수에 참석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인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전국 10개 교구 말씀 봉자자들이 한데 모인 자리였는데 저는 그곳에서 교회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말씀 안에서 올바른 가치관과 정신을 키워가는 젊은이들이야 말로 교회와 사회의 희망입니다. 젊은이들이 한 마디 복음이라도 매일매일 접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오. 복음과 함께 사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현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 하느님 현존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 현존을 느끼면 신앙은 저절로 되살아납니다."

 
 ▲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교회에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신 바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아시아, 나아가 세계교회에서 그 몫과 역할을 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4번째 생신을 맞아 발간한 회고록 「일어나 갑시다」에서도 한국과 필리핀 교회의 역동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셨습니다. 아시아 복음화 사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현재 많은 이들이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무적 일입니다. 한 예로 박신언 몬시뇰과 주변 사람들이 북방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 옹기장학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취지가 좋아 선뜻 동참했습니다. 중국과 북한에도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 많은 선교회와 수도회들이 중국 등지에서 기술학교와 사회복지시설 등을 운영하며 간접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골롬반외방선교회의 경우 평신도 선교사를 양성해 해외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한일 주교 교류모임은 선교사목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단계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모두 아시아 복음화 노력의 일환입니다.

 조그만 것이라도 준비해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신앙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선교는 신앙의 본질이며, 선교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대대적 선교운동으로 예비신자를 많이 초대한 본당들에게 보듯 선교하면 성장합니다."

 
 ▲남북 화해와 통일은 한민족의 크나큰 과제입니다. 현재의 통일논의와 대북지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교회는 그동안 식량배분의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북녘 형제들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북녘 형제들에 대한 지원은 계속돼야 합니다. 아울러 햇볕정책도 북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합니다. 특히 인권개선 문제는 북한뿐 아니라 통일 한국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북에 압력을 가하라는 말이 아니라 민족적 동질감을 바탕으로 우리 의견을 전달해야 합니다.

 인권은 인간의 천부적 권리입니다. 인권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똑같이 누려야 할 기본권입니다. 법학을 포함해 어느 학문도 인권을 학문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천부적, 즉 하느님이 주신 권리라고 얘기하잖습니까.

 독일 통일 전 서독은 동독을 향해 인권 문제만큼은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 거론 자체를 터부시합니다. 통일을 위해서라도 인권개선 문제는 거론해야 합니다. 그것이 북한을 위하고, 미래 통일한국을 위하는 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통일이 된다면 인권 불모지에 살던 북녘 형제들이 우리와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갈등의 골이 깊을 것입니다. 아울러 통일보다 더 시급한 것은 남북 모두에서 인간 존엄성이 지켜지는 일입니다. 동포애 차원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는 정부가 강정구 교수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불구속 조사를 지시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아울러 배타적, 폐쇄적 민족지상주의를 내세운 성급한 통일논의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1위로 도약했습니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문제들이 많은데도 이같은 성장을 이뤄낸 것을 보면서 한국인 저력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저력이 사회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습니까.
 
 "저 역시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난 50년은 실로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6ㆍ25 전쟁으로 우리나라는 폐허나 다름없었습니다. 내다 팔 천연자원도 없었습니다. 또 오랫동안 군사독재 속에서 신음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민주주의 꽃을 피우고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기적 아닙니까.

 산업화 이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70달러였습니다. 그때 필리핀은 180달러, 태국은 220달러였습니다. 그런데도 벌써 1만 달러 고지를 넘어서고 2만 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간 교역규모가 5450억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멕시코를 제외한 남미 38개국 무역규모와 비슷하고, 아프리카 53개국 무역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국민이 피땀흘려 이룬 경제발전입니다. 정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저력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하느님은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인터뷰 서두에서 그 똑똑한 머리와 저력을 좋은 데 써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우리 장점을 살리려면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회가 메말라갑니다. 경제지표는 높아졌지만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고, 행복지수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모든 가치 중에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부족한 게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주된 원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나도 못 살고 상대방도 못 삽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고린토 1서 13장)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외아들이 우리 곁으로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닮는 길은 그분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올해 추기경님 삶의 지표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은퇴 이후 '사랑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는데 그걸 깜빡깜빡 잊는 것 같습니다. 다짐을 잊고 살다가 다시 정신차리기는 하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새해를 앞두고 평화신문 독자들에게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새해는 병술년 개띠해입니다. 제가 바로 개띠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이고 진리이신  하느님의 충견이 됩시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우리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새해에는 더욱 하느님께 충성하면서 삽시다. 그러면 분명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정리=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