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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

[주교좌성당] 광주교구 임동대성당

by 세포네 200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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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교좌성당으로서의 웅장함을 잘 드러내고 있는 천장 높이 20m의 임동대성당 내부. 감실과 제대, 독서대는 모두 최봉자 수녀 작품이며, 왼쪽에 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의 문장과 사목표어 ‘말씀은 생명의 빛’(Verbum Lumen Vitae)이 새겨져 있는 주교좌가 있다. 
  2. 전통적 장방형 바실리카식 교회 건축 양식으로 설계된 임동대성당 전경.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지붕의 예수 성심상은 1987년에 설치됐다. 
  3. 성당 앞 마당에 꾸며져 있는 성모동굴과 연못.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5-11에 자리하고 있는 광주대교구 임동 주교좌 대성당
교구청과 맞닿아 있는 성당 구내는 담벼락이 없이 얕은 돌로 장식돼 시민 공원에 온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대성전 바로 옆에는 성모동굴과 연못이 있어 경건함과 포근함을 함께 느끼게 한다. 성당 구내를 지역민들의 휴식처로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담을 헐어 조경공사를 새로이 한 데 따른 것이다.

대지 2600평의 꽤 넓은 부지에 부속건물을 포함해 총건평 875평의 임동대성당은 콘크리트 슬라브 건물이다. 300평 규모의 성전은 외벽 전체가 한 덩어리의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어 웅장함을 느끼게 하며, 7층 높이(20m)의 성당 내부도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마감됐다.

“외관이 단순하면서도도 수려할 뿐 아니라 전통적 장방형 바실리카식 교회 건축 양식으로 설계된 성당”이라는 게 교회건축 전문가 김정신(단국대 건축공학) 교수의 평이다. 설계자는 건축사 박강평(현 예우종합건축사사무소 소장), 시공회사는 ㈜삼영건설산업이었다.

성당 안의 감실과 제대, 독서대는 모두 최봉자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작품이다. 이 감실은 성체등이 감실 안에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으로, ‘감실 안에 성체등을 밝힘으로써 예수께서 항상 현존해 계신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는 것이 제작자의 취지다. 그러나 언제 설치됐는지는 모르지만 감실 오른편에 또 성체등이 있어 제작자의 의도를 무색케 하고 있다.

제대와 독서대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최 수녀는 “천정 높이가 20m나 돼 중심을 잡기 위해 제대를 큰 화강암으로 만들었다”며 “제대가 그리스도의 몸이 축성되고 성찬례가 거행되는 거룩한 식탁임을 표현하고 중압감을 주어 건물 전체의 중심임을 드러내기 위해 시각적으로 강하게 보이는 처리법을 이용해 제대 표면을 단순하게 마감했다”고 말했다.

성당 내부 유리화는 최영심·루카스 훔멜브룬너(Lukas Hummelbrunner) 부부 작품이다. 제대 중앙의 유리화는 예수 일생을 5가지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맨 밑에서부터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 ‘예수의 거룩한 변모’ ‘제자들의 발씻김’ ‘최후의 만찬’ ‘부활하신 예수’ ‘알파요 오메가이신 예수’를 표현하고 있다. 제대에서 마주보이는 성가대 벽면에는 ‘성모의 일생’을 담은 유리화가 설치돼 있다. 17개의 벽 창문에는 바람과 물, 빛과 흙 같은 자연의 요소로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를 상징하는 형상화가 장식돼 있다.

제대 오른편에는 가로 3m, 세로 5m30㎝ 크기의 대형 십자가가 있는데 이 십자가는 지난해 12월29일에 설치됐다. 송일석(목포대 미술학과) 교수의 작품인 이 대형 십자가는 예수상만 2m나 된다. 송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고통이 얼굴에서는 물론 온 몸과 옷자락 주름에서까지 표현될 수 있도록 묵상하며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고 말한다.

임동대성당이 지어진 것은 지난 1983년으로, 1937년 광주지목구로 출발한 교구 역사에 비하면 주교좌성당의 역사는 대단히 짧은 편이다. 그 이전까지는 북동성당이 주교좌였다. 1970년대 후반 천주교 입교 신자들이 급증하자 북동성당은 건물이 노후하고 협소해 주교좌성당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래서 교구는 1979년 6월 대성당 건립 추진을 의결해 임동에 주교좌성당을 짓기로 했다.

임동은 원래 1967년 6월1일에 설립된 본당이다. 미국인 안셀모씨의 도움으로 마련한 3000여평의 대지 위에 초대주임으로 부임한 패트릭 브랜던(Patric Brandon) 신부가 1967년 4월 작은 성당을 지어 성전 봉헌식을 가졌다. 이 넓은 부지에 주교좌대성당을 짓기로 한 교구는 1980년 12월15일 착공식을 갖고 1983년 9월28일 당시 교구장 윤공희 대주교 주례로 축성식을 했다.

교구는 43년간 광주대교구에서 사목하면서 교구발전에 기틀을 놓은 제5대 교구장 고(故) 현 하롤드 대주교를 기념하는 성당으로, 또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성당으로 주교좌성당을 봉헌했다.

임동대성당은 또 외부 원조 없이 교구민들 힘만으로 지은 성당이기도 하다. 성전 건립 비용 9억여원은 전액 교구민들의 힘만으로 모았으며, 교구민들은 대성당 건립을 위해 ‘새 성전을 우리의 힘으로’라는 표어 아래 600만단이 넘는 묵주기도를 전 교구민이 바쳤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임동대성당은 2000년 11월 최창무 대주교가 제8대 광주대교구장으로 착좌하면서 몇가지 변모를 시작했다. 2001년 여름 교구청사 새단장 공사 때 교구청과 대성당을 분리해 왔던 담을 허물어 교구청과 일체감을 높였으며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등 지역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주교좌 성당의 면모를 새롭게 했다.

비록 화려하거나 오랜 역사를 지닌 주교좌성당은 아니지만 지난 20년 동안 교구 사목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온 임동대성당은 이제 열린 교회로서 지역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서도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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