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아브라함. 본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다. 내 고향은 갈대아 우르. 문화가 발달하고 물질이 풍요한 곳이었지. 오늘날 파리나 뉴욕에 견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이 지시하신 새로운 땅으로 떠나라는 것이었어. 온 땅과 부모와 친구를 떠나라는 것, 그것은 나에겐 마치 죽음과 같은 것이었다. 솔직히 두렵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 나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거든. 그런데 하느님의 부르심은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있었어. 나는 수없이 ?왜? 하필 저입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러나 결국 하느님의 말씀만을 철썩 같이 믿고 시키는 대로 고향을 떠났지. 다행히 아들과 같은 조카 롯과 함께 떠나니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지. 고향을 막상 떠나고 나니 모든 게 힘들고 고통스러웠어.
네겝지방에 살 때 기근이 들어 식구들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처지여서 아내 사라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지. 사라는 파라오의 소실이 되었고 우리 가족 모두 목숨을 건졌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몹시 후회스럽고 비참하게 느껴져. 다른 남자 품에 안겨있는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난 차라리 죽고싶은 심정이었어.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하느님은 기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출해주셨어.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어. 내가 얼마나 믿음이 약한 존재인지를…. 왜 인생은 항상 한 걸음 늦게 진리를 깨닫게 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나는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느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회개를 했었지.
그 이후 아들과 같은 롯과 분쟁이 일어났어. 없이 살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재물이 많아지면서 싸움이 잦아졌어. 참으로 돈과 재물이란 이상한 거야. 하루아침에 인간관계를 파괴해버리니 말이야. 롯이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한 것 같이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 나중에 롯은 전쟁 때문에 하루아침에 재산을 날리고 포로가 되고 말았어. 사실 인생사에서 재산이란 그런 건가봐. 욕심을 부릴수록 재산은 더 멀리 도망가나봐. 나중에 나는 부하들과 함께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갔었지. 그때 포로로 잡혀있는 롯의 모습은 너무 비참했어. 나는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 눈물이 흘렀어.
지금 생각해보니, 내 일생에 또 한번 씻지 못한 큰 잘못이 있었어. 하느님이 약속하신 아들이 생기지 않는다고 초조한 나머지 하갈을 소실로 들인거지. 결국 하갈에게서 아들을 얻었지만, 나와 아내 사라, 하갈 모두에게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삶이 되고 말았어. 그때 나는 또 한번 가슴을 치며 깨달았어. 내 생각, 내 욕심대로 살려고 하면 점점 더 고통의 늪으로 빠진다는 것을…, 나에게 가장 큰 잘못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이때까지 받았던 시련은 아들 이사악 때문에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백살이 되어서 얻은 아들 이사악.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런 자식이었어. 그런데 하느님이 그 어린 이사악을 어느 날 제물로 바치라는 거야. 나는 수없이 외쳤어. ?하느님, 너무 잔인하십니다. 이사악을 주실 때는 언제고 왜 다시 그를 잡아서 바치라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내 일생의 가장 큰 시련이었어. 나는 이사악을 데리고 3일 동안 걸었어. 그 3일은 내 생애에서 가장 먼길이었고 긴 시간이었어.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어. 갈등과 고민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어. 이사악을 바치기로…. 아마 다른 사람이 보면 나를 미친놈이라고 그랬을거야. 그러나 나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한가지 분명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가 행복하길 원하신다는 거야. 지금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더 깊은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어. 하느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 거야. 이사악을 바칠 것을 결심한 순간 참 이상했어. 오히려 갈등과 번민이 걷히고 담담해졌어. 나를 여태까지 싸고 있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자유로움을 느꼈어. 세상에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세상을 넘어서는 그런 느낌 있지? 사실 아들 이사악도 내 소유가 아닌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어. 그분이 필요하시다니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평화로워졌어.
이사악을 바치는 순간 나는 사실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셈이었어. 후대 사람들은 나를 신앙의 성조(聖祖)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저 한 신앙인일 뿐이야. 오히려 평범한 신앙인의 모델이라고 할까. 신앙이란 끊임없이 완성을 향해 나가는 길이야. 마지막 순간까지도 죄인인 채 하느님께 나가는 길. 중요한 건 언제 어느 때라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라고 생각해. 하느님께 대한 믿음, 그것이 바로 나의 인생의 가장 큰 위로였고 힘이었지. 하느님을 떠나서는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을 뿐이지. 바람처럼 지나간 나의 짧은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작은 빛을 비추어주면 난 더 바랄게 없지….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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