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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관현악곡 100선

관현악곡 100선 [57] 베를리오즈 / 로마의 사육제 서곡

by 세포네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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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Carnaval romain Overture, Op.9
                베를리오즈 / 로마의 사육제 서곡  
                Louis Hector Berlioz, 1803∼1869 

         



베를리오즈는 바그너와 함께 낭만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표제 음악’이라는 새로운 관현악곡의 유형을 창시했다. '근대 오케스트레이션의 아버지'라고도 불려지는 베를리오즈는 악기의 음색과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능했다. 그래서 '관현악기가 그의 손에서 다루어질 때는 갑자기 찬란하게 빛난다'는 칭송을 들었다.
이 곡은 본래 오페라「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제2막 서곡이었는데, 곡이 뛰어나게 아름다워서「로마의 사육제」라는 제목으로 독립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오페라의 제1막 마지막에서 연주되는 이탈리아의 민속무용음악, 즉 살타렐로의 테마를 가져와서 이 곡을 썼는데, 생기 발랄한 리듬의 활용과 천재적인 관현악법의 구사로 전체적으로 매우 세련되고 화려하다. 격렬한 짧은 서주에 이어 등장하는 잉글리시 호른의 선율은 오페라의 아리아 선율답게 화려하다. 전체적으로 이탈리아 스타일의 빠른 질주와 느리고 서정적인 아리아 조의 노래가 혼재하고 있고, 관현악기들의 독주와 합주가 어우러지면서 강렬한 리듬감으로 축제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Berlioz, Louis Hector 베를리오즈 (1803.12.11~1869.3.8)
프랑스의 작곡가. 남프랑스의 라코트생앙드레 출생. 17세 때까지 가정에서 일반교육을 받고, 그 후 파리에서 글루크의 오페라에 매혹되어 작곡가가 되고자, 르 쉬르에게 사사하였다. 1826년 파리음악원에 입학, 작곡법과 푸가를 공부하고 30년 로마상 콩쿠르의 대상으로 로마에 유학하였다. 그 사이 파리를 방문한 영국 셰익스피어극단의 여배우 해리에트 스미드슨을 짝사랑하여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1830)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고, 리스트, 쇼팽, 힐러, 넬바르, 뒤마(부친) 등과 교유하는 한편, 34년부터는 자작의 연주회와 작곡 등으로 정력 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시기의 작품에는 독주 비올라에 이탈리아의 추억을 상기시킨 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롤드:Harold en Italie》(34) 《레퀴엠:Requiem》(37), 오페라 《벤베누 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38), 그리고 독창과 합창이 곁든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 엣:Romeo et Juliette》(39) 등이 있다. 그러나 38년 《벤베누토 첼리니》의 상연 실패로 후반 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게 되었다.
파리에서 자작의 활동무대를 잃은 그는, 42년부터 국외로 나가 연주여행을 하게 되었다. 곧 1842~43년에는 독일 각지에서 연주를 하면서, 서곡 《로마의 사육제 Le Carnaval romain》(43)를 작곡하였으며, 《근대의 악기법과 관현악법》(44)이라 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그러다가 1845~46년의 프라하·부다페스트에서의 연주여행이 성공하자, 이에 힘입어 귀국 후 《파우스트의 겁벌(劫罰) La Damnation de Faust》(46)을 완성, 초연하였으나 이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18 47년 러시아와 영국에서 장기 체류할 예정으로 건너갔으나 이듬해 일어난 프랑스혁명(2월혁명)이 걱정되어 귀국하였으며 그의 《회상록》은 이 무렵 영국에서 착수되었다.
50년에는 ‘필하모닉협회’를 결성하여 혁명 후의 파리에서 적극적인 연주활 동을 추진하였지만, 이 역시 이듬해에 좌절되어 다시 국외 연주여행을 떠났다. 1854년 3부작 오 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L’Enfance du Christ》이 비로소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49년에는 완성 이후 연주장소를 얻지 못하였던 대작 《테 데움:Te Deum》이 만국박 람회 개막을 축하하여 연주되었으며, 56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회원으로 선출됨으로써 마침내 그는 생활의 안정을 얻었다.
만년에는 2부작 오페라 《트로이 사람:Les Troyens》의 작곡에 열중하였으나, 이 작품을 상연할 기회는 좀처럼 얻을 수 없었으며, 63년 제2부 《카르타고의 트로이 사람:Les Troyens a Carthage》만이 상연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희극 《베아 트리스와 베네딕트:B럂trice et B럑럅ict》(62)가 있다. 다년간에 걸친 연주여행은1867∼68년의 러시아 연주회를 끝으로 종지부를 찍고, 지병의 악화로 69년 3월 8일 파리에서 고뇌에 찼던 일 생을 마쳤다.
베를리오즈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프랑스에서 유일한 교향 곡 작곡가이었으며 ‘표제음악’이라는 새로운 극적인 관현악곡 스타일을 창시한 데 있다. 그리고 이 음악과 더불어 그의 새로운 ‘관현악법’은 이후의 많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 바그너와 더불어 명문가로 명성이 높으며, 자서전 《회상록》은 음악가가 쓴 전기문학 분야에서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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