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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7) 주님 승천 <하> 중세 시대

by 세포네 2018. 8. 19.

‘주님 승천’을 주제로 한 성미술 작품을 고대와 비잔틴 시대로 나눠 두 회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에는 중세 시대 서방 교회의 ‘주님 승천’ 성미술 작품을 소개합니다. 10세기 말에 시작해 12세기에 꽃을 피웠던 로마네스크 성당의 조각상과 12세기 말부터 15세기까지 번성했던 고딕 성당의 프레스코입니다.

 

프랑스 생 세르냉 대성전 주님 승천

로마네스크 시대를 연 사람은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입니다. 910년 프랑스 남부 클뤼니(Cluny)에 세워진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교회와 전례 쇄신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아름다움은 하느님 나라를 예감케 한다”는 표어 아래 성미술 발전에 이바지합니다. 특히, 고대 로마 시대 바실리카 건축 양식에 기초해 웅장한 성당을 짓고, ‘우상숭배’로 여겨졌던 조각을 되살려 성당 안팎을 치장했습니다. 이를 19세기 프랑스 고고학자 아르시스 드 코몽(Arcisse de Caumont, 1802~1873)이 ‘로마 예술’이라 하여 ‘로마네스크’라 이름 붙인 것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에서 시작한 로마네스크 성당은 12세기 초에 1450여 개에 이를 만큼 유럽 전역에 퍼져갔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로마네스크 성당이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야고보 사도 순례길에 집중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네스크 성당은 야고보 사도 무덤까지 가는 순례길에 순례자들을 위해 마을이 형성되고, 그 마을에서 수도자들이 순례자들을 돌보기 위해 지은 성당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도자들은 로마네스크 성당 입구를 ‘최후의 심판’ 조각상으로 즐겨 장식했습니다. 때때로 ‘주님 승천’의 조각상으로도 성당 입구를 꾸몄습니다. 주님 승천과 재림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 11)라는 천사의 말대로 연결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수도자들이 최후의 심판 장면을 보여주는 주님 승천과 재림 조각상을 성당 입구에 장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앞서 9세기 말부터 100여 년 동안 종말을 경험했습니다. 노르만족과 마자르족, 무슬림의 사라센족들이 유럽 전역으로 쳐들어와 살육과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절망한 유럽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실 구원의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야고보 사도의 순례길을 조성하고, 그 길 위에 하느님 나라를 감각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성당을 짓고 주님 승천과 재림의 조각을 장식한 것입니다.

‘주님 승천’ 상을 입구에 처음으로 장식한 곳은 프랑스 툴루즈의 생 세르냉 대성전(L’eglise St. Sernin) 입니다. 생 세르냉 대성전 남쪽 ‘미겔빌레의 문’(Porte des Miegeville) 위 반원형 팀파눔(성당 정문 상부의 삼각형 또는 반원형 공간 장식)에 돋을새김으로 주님 승천 도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도상은 승천하시는 주님과 그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양팔을 펼치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승천하십니다. 주님의 두 발은 구름 위에 떠 있습니다. 승천 후 주님께서는 성부 오른쪽에 앉으십니다. 그래서 조각가는 거울 효과(좌우가 뒤바뀜)를 줘 성당에 들어오는 이들이 주님께서 하늘 오른편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몸을 살짝 틀어놓았습니다.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는 것은 천주성의 영광과 영예를 입으신 분이 하느님 나라와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민족과 나라를 영원히 통치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지상 세계는 포도 덩굴로 구분됩니다. 지상의 사도들은 구름 위로 올라가신 주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 도상에는 사도들만 등장합니다. 고대와 비잔틴 시대 도상과 달리 성모 마리아는 빠져 있습니다. 사도 수도 열둘입니다. 사도 무리 중 맨 가운데 자리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 사도가 있습니다. 오른편은 아마도 바오로 사도인 듯합니다. 얼굴에 더부룩하게 수염이 나 있고 성경을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요한 사도는 수염이 없는 젊은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 양쪽 끝단에는 두 천사가 두루마리를 펼쳐 보이며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사도 1,11)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님 승천 조각을 입구에 장식한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성당은 생 세르냉 대성전 외에도 스페인 레온의 산 이시도르 성당, 프랑스 앙굴렘 대성당 등이 있습니다.

▲ 조토가 그린 주님 승천 프레스코. 성경 원문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조토의 주님 승천

조토(Giotto di Bon done, 1266~1337)는 인간의 감정을 무시하는 중세의 전통 회화 요소들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미술사학자들은 조토를 르네상스의 문을 연 ‘서양 회화의 아버지’라고 평합니다.

조토는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가 이탈리아 파도바에 있는 자신의 저택 옆에 지은 ‘산타 마리아 델라 카리타’(Santa Maria della Carita) 경당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의 생애를 주제로 1304~1306년 프레스코 작품을 남깁니다. 이 경당은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할 만큼 악명 높았던 고리대금업자인 부친 레지날도 스크로베니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지은 경당이었기에 원래 이름보다 ‘스크로베니 경당’ ‘아레나 경당’으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 경당에 조토가 그린 ‘주님 승천’ 프레스코는 성경 원문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프레스코 역시 주님 승천과 그 승천을 목격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제자들의 모습으로 나뉩니다. 구름을 딛고 하늘 오른편으로 승천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생생하리만큼 역동적이고 사실적입니다. 주님뿐 아니라 성모님과 사도들, 천사들의 표정과 옷 주름, 바람의 묘사는 조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두 손은 벽화 프레임을 뚫고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흰 옷자락은 바람에 일렁입니다. 천사들과 구약의 성조와 왕들, 예언자들이 승천하시는 주님의 양옆에 늘어서서 환호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는 흰옷을 입은 두 천사 양편으로 성모님과 사도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어 승천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사도들의 수가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 이스카리옷을 제외한 11명이라는 점입니다. 마티아가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기 이전, 또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가 주님께 부름을 받기 이전에 주님 승천이 있었다는 성경의 시점을 조토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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