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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4) 주님 부활 (하)

by 세포네 2018. 7. 31.

그리스도 부활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자 완성

 

▲ 아나스타시스, 11세기, 시나이 산 성 가타리나 수도원, 이집트

 

5세기부터 13세기 고딕 시대 이전까지 보편적으로 그린 주님 부활 도상(圖像)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빈 무덤을 주제로 한 도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저승에 가시어 죽은 이들을 구해내시는 장면으로 주님 부활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화가들이 주님의 부활을 직접 묘사하지 않은 이유는 주님의 부활 시점과 그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 화가들은 르네상스 시대 작가들과 달리 주님 부활의 순간을 절대로 상상해 그리지 않고 오로지 복음서와 교회 전승 내용에 따라 주님 부활을 묘사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는 부활 도상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후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후 죽은 자를 대표하는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는 부활 도상을 아나스타시스’(αναστασις)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부활이라는 뜻입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때때로 지옥에 내려가신 예수 그리스도’,저승에 내려가심이라고 부릅니다.

 

교회가 주님 부활 도상으로 이 모습을 즐겨 사용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잠든 이들의 맏물로 일으켜지셨기 때문입니다.(1코린 15,20) “‘잠든 이들의 맏물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이들의 부활을 시간적으로뿐 아니라 인과적으로도 연결시킵니다. 맏물이 있으면 그다음에 다른 소출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부활 다음에는 그리스도 안에 죽은 이들의 부활이 따르리라는 것입니다.”(200주년 신약성서 주해902)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며 완성의 보증입니다.(2코린 1,22; 5,5 참조)

 

이 도상은 또한 나는 부활이요 생명”(요한 11,25)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고백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죽은 이를 깨우는 생명의 목소리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요한 11,26)

 

주님 부활 도상이 이렇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초대 교회 시기에는 고래 뱃속에 사흘간 갇힌 요나’,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에제키엘의 환상’,화덕 속의 세 젊은이등으로 부활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도상은 주로 부활을 희망하는 죽은 이들의 관과 무덤인 카타콤바의 벽화로 장식됐습니다.

 

아나스타시스 도상은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성미술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지배자인 하데스와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상징하는 승리자요 해방자인 로마 황제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게 미술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현존하는 아나스타시스 성미술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8세기 제작된 로마 포룸 로마눔에 있는 산타 마리아 안티쿠아 성당의 벽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많이 훼손되어 지면에서는 11세기에 그려진 이집트 시나이 산 성 가타리나 수도원의 아나스타시스 작품을 소개합니다.

 

주님 죽음과 부활이 있기에 인간 구원 가능

 

이 그림의 중심인물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신 분답게 위풍당당하게 서 계십니다. 왼손으로 십자가를 잡고 있는 주님의 표정에는 진지함과 위엄, 굳은 의지와 결단, 승리의 자신감이 서려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발에는 십자가 수난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토마스 사도를 비롯해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바로 그 상처입니다. 이 거룩한 십자가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던 바로 그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홍색과 흰색 옷을 입고 계십니다. 분홍색은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흰색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세례 예식 때 세례를 받는 이들이 흰옷을 입는 전통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분과 함께 부활했습니다”(로마 6,4 참조)라고 선포합니다.

 

주님의 두 발 아래에는 악마가 짓눌려 굴복하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부서진 지옥문들과 열쇠, 자물쇠, 못들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청동 문을 부수시고 쇠 빗장을 부러뜨리셨다”(시편 107,16)는 시편 노래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옥을 해방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 오른편에는 아담과 하와가, 왼편에는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구약의 왕들이 죽음에서 깨어나 무리를 지어 서 있습니다. 부활한 이들은 모두 얼굴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구약의 왕들 가운데 맨 앞줄에 있는 다윗과 솔로몬은 두 손을 주님께로 향하며 자신들을 일으켜 세워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신 분이 바로 이 분이심을 알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것임을 예언했고, 솔로몬은 왕이신 그리스도를 예시해 주었기에 맨 앞줄에 서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첫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백발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모습입니다. 하와는 주님께 공경의 예를 갖춰 손을 옷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아담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입으신 것과 똑같은 옷 색깔을 안과 밖이 다르게 입고 있습니다. 하와는 파란색 속옷과 진홍색 겉옷을 입고 있습니다. 파란색은 인성을 상징한다고 여러 번 설명했습니다. 진홍색은 그리스도의 승리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이 도상에서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아담을 무덤()에서 꺼내시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손수 아담의 손목을 잡아 끌어올리시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죽음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셔야만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 강생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 모두의 부활도 가능하게 됐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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